추천음악 - Epitaph(묘비명) / King Crimson
킹 크림슨 (King Crimson)의 묘비명(Epitaph)입니다. 어렸을 때 이 긴 곡을 가사 내용도 모르면서 긴장하며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와 가사를 음미하고 보니 킹 크림슨이 우려하고 경고했던 바로 그러한 세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소위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아트 록의 선구자이며 록의 가치와 정신을 지켜낸 킹 크림슨의 데뷔 앨범 중 수록곡입니다. 오랜만에 가사를 EK라 읽으면서 곡을 듣습니다.
King Crimson - Epitaph
The wall on which the prophets wrote
Is cracking at the seams.
Upon the instruments if death
The sunlight brightly gleams.
When every man is torn apart
With nightmares and with dreams,
Will no one lay the laurel wreath
As silence drowns the screams.
Between the iron gates of fate,
The seeds of time were sown,
And watered by the deeds of those
Who know and who are known;
Knowledge is a deadly friend
When no one sets the rules.
The fate of all mankind I see
Is in the hands of fools.
Confusion will be my epitaph.
As I crawl a cracked and broken path
If we make it we can all sit back and laugh.
But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Yes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예언자들이 그들의 예언을
새겨 놓았던 벽에 금이 가고 있어요.
죽음이라는 사기 위에 햇빛은 밝게 빛납니다.
모든 사람들이 악몽과 꿈으로 분열될 때
아무도 월계관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침묵이 절규를 삼켜버리듯이,
내가 금가고 부서진 길을 기어갈 때
혼란이 나의 묘비명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뒤에 앉아 웃기나 할텐데,
울어야 할 내일이 두렵습니다.
운명의 철문사이에 시간의 씨앗은 뿌려졌고
아는자와 알려진 자들이 물을 주었어요.
어떤 법도 지켜지지 않을 때
지식은 죽음과도 같은것.
내가 볼때 모든 인간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에 쥐어져 있어요.
클래시컬 록으로의 초대, 프로그레시브 시대의 개막
우드스탁 제전으로 절정을 치달았던 록의 응집력은 70년대 개막과 함께 급격히 해체되면서 여러 다양한 '혼합형의 록'으로 가지를 치며 뻗어갔다. 저항정신의 음악적 총체라는 록의 정신은 70년대가 지나가면서 점차 소멸되었고 개인적인 일상사나 사랑을 노래하는 발라드 록이 미국 시장을 사로잡고 있었다.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시각도 달라져버린 당시의 록 청취자들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록이 요구되었다. 달갑지 않은 월남의 전쟁터에 끌려가고 켄트주립대학의 참상에 좌절하며 알타몬타의 비극에 위축된 그들은 실업률의 증가(69년 3.5%에서 70년 6.2%로), 달러시세의 폭락, 연방정부의 공공지출삭감 및 신용대출 제한 등으로 나타난 또 한 차례의 시련을 맞아야 했다. 암담한 사회현실과 경기침체의 공포가 그들을 엄습하면서 그들이 듣는 음악 스타일도 갑자기 바뀌어버렸다.
그들의 가라앉은 기분과 그에 따른 '보수적 정서'를 반영한 음악 가운데 하나가 클래시컬 록(classical rock)이었다. 포크, 컨트리 록, 재즈 록, 글램 록 등과 함께 록의 핵분열로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클래시컬 록은 그런 보수화의 분위기를 업고 각광받기 시작했다.
클래시컬 록은 말 그대로 록과 클래식을 합친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그 양식을 본격 선보인 록그룹은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이 이끈 영국그룹 킹 크림슨(King Crimson)이었다. 로버트 프립은 60년대의 불꽃이 꺼져가던 69년 말 클래식기타의 테크닉과 록 사운드를 결합한 매우 실험적인 앨범 <크림슨 왕의 궁전에서>를 발표했다.
그와 그렉 레이크(베이스), 마이크 가일즈(드럼), 이언 맥도널드(키보드), 피트 신필드(신서사이저)는 이 앨범으로 록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클래식이 무난히 서로 용해될 수 있음을 알리며 클래시컬 록의 패턴을 제시했다.
65만명의 관객이 운집한 런던 하이드 파크 공연에서 롤링 스톤스를 백업하며 음악계에 등장한 그들의 이 데뷔 앨범은 신선한 충격을 야기 시켰다. 클래식과 록의 절충이라는 단순한 묘사를 뛰어넘어 거기에는 명암, 고저, 깊이, 시적인 가사에 의한 '색채'가 존재했다. 청취자들은 그것이 컬러풀한 음악임을 느끼며 가장 앞서있는, 즉 진보된 사운드라는 사실 또한 확인했다. 그것이 이른바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이란 것이었다.
'묘비명'(Epitaph), '난 바람에게 말한다'(I talk to the wind), 그리고 타이틀곡 '크림슨 왕의 궁전에서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는 록 팬들의 진보적 사운드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 특히 '묘비명'은 심오한 가사와 웅장한 연주로 우리의 팝송 시대를 밝힌 다운타운의 음악다방을 강타했다. 당시 음악의 주요 전달자였던 디스크 자키들은 쇄도하는 이 긴 곡의 신청에 짜증을 낼 정도였다.
아무도 규칙을 마련해놓지 않을 때 지식은 치명적인 벗. 내가 본 인류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아귀에 있지. 내가 깨어지고 부서진 길을 따라 기어갈 때 혼란이 묘비명이 될 거야.
킹 크림슨은 여기서 미래의 정신적 타락에 대한 우려를 표출한다. 그 엄숙한 비관은 동시에 그들이 60년대를 깡그리 잊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들은 영국에서 싱글로 발표해 고전이 된 곡 '21세기 정진분열증 환자'(21th Century schizoid man)에서도 미래의 불안과 파괴를 비관적으로 묘사했다. 이 곡에서는 60년대 말 미국을 강타한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영향이 엿보이고 있지만 그들은 록의 정서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 남아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60년대 정서에 매달려 있었다. 두 발을 60년대 땅에 박고 두 손은 70년대를 향해 치켜 올린 것이었다.
그 70년대는 킹 크림슨의 시야처럼 외형적 진보와 부피 팽창 뒤에 갈등과 혼란이 숨어있었다. 프로그레시브록 의 선구자인 킹 크림슨은 다가올 70년대가 진보의 시대이면서 한편으로 긴장의 시대임을 간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