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 에세이(12) 오늘 새벽은 오랜만에 술에 취했습니다...이런 날은 misty
Jazz 에세이 (12) 오늘 새벽은 오랜만에 술에 취했습니다...이런 날은 ` Misty` 를 듣습니다.
1.
안개 낀 새벽이었습니다.
도시를 미워하고 있었는데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와서
새로운 방에서 바라본 도시의 아파트촌이 그리 추하지만은 않더군요.
나름대로 근사했습니다.
내 방에 머물러 내려다보는 아파트 주변 풍경으로 산이 들어왔기 때문이었을까요...
적당히 나와 멀어져 보여서 그랬을까요...
그때 그랬습니다. 바라보이는 것에 길들어지지 말자...
더 사랑하게 되는 것들을 경계하자...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그때 그랬습니다.
새 집으로 이사 와서...사랑이 무서웠습니다.
2.
생각해 보면 나는 항상 날마다 쌓여가는 먼지에 알러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먼지가 집안 여기저기 쌓이는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공연히 조금만
한가해지면 걸레를 들고 먼지를 찾아내어 닦았던 것 같습니다.
가득하지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을 굳이 찾아내서 구별하는 것을
끔찍하게 여겼으면서도 나는 왜 그런 행동을 멈추지 않았을까요...
3.
오늘 새벽은 오랜만에 술에 취했습니다.
그래도 딸이 외출한 빈 집을 잃어버리지 않고 찾아들어왔지요.
어두운 밤 문을 열고 돌아와 불을 켰을 때
파드득 떠는 형광등 불빛에 놀라 화들짝 바퀴 몇 마리 몸을 숨기고
개키지도 않은 이불과 듣다가 바닥에 팽개친 CD의 쟈켓과
며칠 전부터 읽지도 않아 여기저기 흩어진 몇 권의 잡지와
읽어야 되는데 중얼거리다가도 읽지 못해 던져둔 몇 권의 소설책과
공부를 해야 된다고 결심하고서도 결국 펴보지도 못하고 쓸쓸히
오래된 책이 되어가는 몇 권의 원서로 어지럽혀진 내 방...
그리고 내 낡은 외로움으로
사막처럼 새벽이 황폐해 보였습니다.
4.
내 방에서 내려다보는 아파트의 야경은 꽤 근사합니다.
안양천을 끼고 있어서 아파트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많은 가로수들이 전신주의 불빛을 받으며 서 있는데
바람이라도 불어 괴괴하게 출렁이면 스산한 그 모습이 자못 운치가 있습니다.
아파트촌의 불빛이 내 시야 밑으로 가만히 떨어져 내립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정신없이 흔들리는 불빛 밑으로
오늘밤 내가 마시다 남기고 온 술에 취한 듯 사람들이 물결처럼 빠져나갔고
내 집보다 놓은 커다란 빌딩,
저 너머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 위엔 꺼지지 않는 불빛들이
새벽이 오도록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인조의 빛과 인간의 먼지로 가득한 공기로 하늘 위에는 아무 것도 빛나지 않고
그 광경들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내 마음도 까마득히 침침하지만
내 방에서 가만히 내려다 본다면 그 모습들은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온 길을 다시 돌아가 아무 불빛 밑에서나
취하도록 술잔을 기울이고 싶도록...
5.
이 도시에 오늘 새벽
안개가 꼈습니다.
왠지 모르게 목이 칼칼하고
사는 게 부끄럽고 아무 것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어지러운 내 방처럼 무책임하게 방치한 내 일상이 사뭇 증오스럽습니다.
사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못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날은 재즈를 듣게 됩니다. 지금은 'Misty' 듣습니다...
Sarah Vaughan의 음성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