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서 / 김봉준 화백의 <우리 디자인의 정체성 어떻게 살릴것인가>에 대한 견해의 또 댓글...
= 김봉준화백님의 댓글로서의 강의 =
신화세계의 보편성과 특수성, 전통적 의례의 의미를 지금 시대 모두 다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생활문화로 계승하자는 게 아니고요. 신화적 세계관의 핵심인 '세계를 신성하게 이해하는 것'에서 오늘의 물질만능주의를 넘어 설 단서를 찾자는 것입니다. 무조건 과거 신화세계로 그대로 회귀하자는 것이 아니고 민족적 특수성에 나타나는 의례의 함의성을 이해하여 그 민족의 기질과 특징을 이해하자는 것이지요. 그래야 민족마다 지니는 집단무의식세계를... 이해하며 그래야 민족끼리 배타성을 줄일 수 있겠어요. 신화세계에 나타나는 신화소와 이미지와 상징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해석하면 민족적 특수성 넘어 인류적 보편성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이를 신화적 보편성이라고 하네요. 예를 들어 천사와 선녀의 이미지는 달라도 천상계와 인류가 이어진다는 관념은 공통적이니까요. 초월적 의례나 흑주술의 극단적 행위도 들어나는 현상이 뜨악스럽고 이질적이며 비합리적이라고 해도 그 행위의 숨은 상징을 해석한다면 그 부족의 집단무의식을 이해하는 데 더 할 나위없는 은유형식이기도 하지않을까요. 이 합리주의가 인류의 문화적 다원성을 이해하는 데 큰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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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준화백님의 댓글에 대한 댓글 (강미)=
와우 선생님 일찍 페북에 들어오셨나봐요~ 원주의 아침은 안개 속에서 깨어났던 것 같아요...LP&CD 카페를 하는 후배가 있답니다. 이제는 원주의 명물로 방송국에서 취재도 해갔더군요. 원주 특수학교에서 근무한 추억과 그 후배로 인해 가끔 후딱 원주를 다녀오곤 하지요...그럴 때 마다 이상하게 안개가 자욱했던 것 같아요...
녜 그래요...선생님... 제가 모든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자는 이론을 경계하는 것은 다양성으로 인해 오히려 그 다양성이 획일화 되고 소외되어 온 21세기의 문화 현상 때문이지요...즉 위에서 제가 예를 들었던 부두족의 제례에 필요한 의식에서는 피가 필요한데 (대부분 고대 의식에서 순결한 의미를 담은 희생 제물이 사용되었던 것에서) 그 동기를 찾아가 보면 그 동시대의 그 문화에서 힘의 논리에 의한 지배적 존재로서 희생제물이 피의 순결성으로 요구 되었다는 것이지요...그런데 현대 다양성 추구의 관점에서 상대적 문화주의가 보편적 민주주의라는 서구중심의 논리에 의해 그러한 제례 행위가 정당화되고 인정되고 있지요. 마치 그런 인식이 선진적인 문화인식으로 고정관념화 되구요...피그미족의 식인행위가 제례화 되고 그것은 그들의 생존을 위한 삶의 방식으로서 어쩔 수 없었다는 다양성의 부분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거기까지는 담보하지 못하는 이유가 인류 보편적 가치로서 생명에 대한 훼손은 그 어떠한 이유로도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화에 대한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는 논리도 다분히 강대국 중심의 지배문화에 근거한 경향이 많다는 것에서 조심스럽게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모든 예술 행위가 그 예술의 배경이 되는 문화의 신화성에서 보편적 정서의 근거가 된다면 그 신화적 무의식 세계의 차이를 구별해서 다양하게 표현한다는 경계를 잘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지요...이는 다원성과 다양성으로 무임승차할 수도 있을 보편성의 함정을 경계하면서 문화로서의 예술 행위가 실천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구요...
서구적 예술의 근거에서 벗어나 우리 문화의 뿌리에서 우리 예술 행위의 근거를 찾아서 민중 속으로 들어가자는 실천적 의미로 선생님의 실험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오랜만에 댓글을 올리려다 예술의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와 그 예술로서의 행위의 지평을 어디까지 확장해서 이해해야 하는가를 고민해 보았네요...선생님 덕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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