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총장님 밥 한 끼 먹읍시다. - 진보진영 최고의 흥행술사 '김여진'
진보진영 최고의 흥행술사 '김여진'
배우 김여진의 최근 행적을 지켜보면서 문득 '밥짓는 진보'를 떠올려 보았다. 올 1월초 홍대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농성 현장을 찾아나선 김여진씨가 가장 먼저 보여준 영상이미지는 시장에서 반찬거리를 사들고 청소부 아줌마들과 함께 밥 짓던 장면이었다. 그녀는 또 자신의 블로그에 홍대 총학생회장에게 전하는 '너에게..'란 글을 통해 '이제 그만 짐을 내려놓고 꼭 한번 밥 먹자'라며 따듯한 덕담을 남겼다. 그리고 마침내 조선일보 1월 21일자 지면에 '홍익대 총장님 같이 밥한끼 먹읍시다'란 광고를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실직위기에 내몰린 홍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아나선 김여진씨 머릿속에는 오로지 '밥' 생각뿐이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밥'이 곧 '생계'라는 상징성을 강렬하게 각인시켜준 배우 김여진이다. 평소 생활이 궁핍한 이웃형제를 찾았을 때 '밥은 먹었냐'는 안부인사를 가장 먼저 건네게 된다. 이것은 형식적 '예의'차원이라기 보다는 보편적 정서를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있는 '상식'일 뿐이다.
김여진씨가 진보적 성향의 시민인가에 대해 구태여 정치적 논리로 가늠하고 싶지 않다. 다만 노동 문제에 보수적 색깔을 보이는 조선일보에 광고를 낸 그녀의 의도적 선택을 통하여 의식의 단면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김여진 씨는 트위터(@yohjini)를 통해 "홍대 청소 노동자 분들이 광고가 실릴 거면 총장이 보는 신문에 실렸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어떻게 해야 총장이 대화의 장에 나올까가 가장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우문을 던저 본다. 과연 조선일보와 홍대 총장을 상통의 관계로 인식한 홍대 청소부 노동자들은 진보주의자들인가? '밥'을 떠올리며 이들을 돕고 나선 김여진씨는 진보주의자인가? 그렇다. 청소부 노동자들은 물론 김여진씨 또한 진보주의자가 맞다. 게다가 진짜 진보주의자들이다. 사회적 공정성과 통합을 담보로 한 서민대중의 온전한 삶을 염원하기 때문이다. 자칭 보수주의자들이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려는 보편적 인간 정서와 삶의 가치를 지향하는 까닭이다. '진보'라는 용어적 개념조차 모르는 이들이 자칭 보수주의자들과 상통할 수 없는 상대적 위치에 놓여졌기에 진보주의자로 규정지어질 뿐이다.
새로운 진보적 가치
조국 교수는 연초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류와 다른 ‘진보적 밥 만들기’의 모습을 대중에게 제시하지 못했다”면서 “삶의 문제, 밥의 문제로 가야 ‘이 사람들은 믿을 만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고 이명박 정부를 넘어설 수 있다”고 말한바 있다. 진보의 이념적 가치를 '밥'의 문제와 직결시켜 강조한듯 하다. '진보가 밥 먹여주냐'는 우문을 던저놓고 스스로 '그렇다 진보가 밥 먹여줄 수 있다'라고 현답을 내놓았던 조국 교수였다. 이같은 그의 주장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수긍했을지 정확히 헤아리기는 어렵겠지만 인터넷 누리꾼들의 반응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상당한 '시대적 공감대'를 이끌어 낸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야권정당 중심의 반MB 정치투쟁에 시큰둥했던 상당수 누리꾼들의 마음을 움직인 김여진의 아름다운 행실과 조국 교수의 해법제시에는 분명 일맥상통하는 '시대적 공감대'가 가로놓여져있다. 진보진영 정치권의 행태를 바라보며 뭔가 모를 답답함에 시달렸던 시민들이 막연히 웅얼거렸던 정치적 대안의 실체가 바로 '새로운 진보적 가치'였음을 이들의 롤모델 제시를 통해 확신하게 된다.
그렇다. '밥을 지어낼 수 있는 진보적 가치' 그리고 '그 밥을 나눌 수 있는 진보적 가치'가 우리 주권시민들 심중에 오래도록 담겨진 목마름이었고 묵은 체증이었다. 이명박 정권 3년 내내 주권시민은 무기력했으며, 대안을 제시해야 할 진보정당은 무능함으로 일관했다. 주저앉은 국민들과 함께 주저앉아 이명박에게 항의하는게 고작이었던 우리들의 야권정치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낙심만 더해갔다. 한편으로 안쓰럽고 또 한편으로는 야속했다. 사실 이같은 국민적 절망감은 과거 노무현 정권 중반기부터 심화되기 시작했다.
정치 낭인시절부터 '바보'라는 수식어를 꼬리표처럼 매달고 다녔던 노무현. 그는 대통령 자리에 올라섰음에도 여전히 '바보 노무현'에 다름 아니었다.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게끔 두손두발 꽁꽁 묶인것도 모자라 '말 많다'란 핀잔으로 입막음마저 강요받았던 '바보 노무현 대통령' 그때 그 시절부터 우리 주권시민들은 패배주의에 사로잡히며 무기력증에 시달렸던 것이다. 바보 노무현에 대한 기득권자들의 비아냥과 비웃음은 바로 우리 주권시민을 겨냥한 비열한 조롱에 다름 아니었다. 양극화로 도드라진 서민경제파탄을 풀지못한 책임을 물어 끝내 한나라당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살해당한 바보 노무현이었고 주권시민들이다.
대한민국 천지사방에서 수 많은 노동자와 서민들이 신음소리 한번 제대로 내뿜지 못한채 죽어갔다. 장래가 유망한 작가라고 칭찬받았던 최고은씨는 병환중에 변변한 밥 한끼 챙겨먹지 못하고 산송장처럼 시름거리다 끝내 목숨을 잃었다. 산재에 시달리다 무거운 삶의 질곡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노동자들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세상에서 우리 주권시민들의 존재감이란 그저 밥 세끼에 연연하는 비루하고 천박한 족속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들의 한끼 급식마저 자본논리에 짓눌려 희롱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여 마침내 우리 주권시민은 국가 생산성을 약화시키며 밥이나 축내는 거렁뱅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야권 정치세력은 거렁뱅이들의 공허한 자존심마저 쪽쪽 빨아먹으며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충족시키려 할 뿐이다. 지지해 달라 한다. 이뻐해 달라 한다. 자신들이 곧 대안이라고 큰소리 뻥뻥 친다. 국민들에게 밥 한끼 제대로 해먹일 능력조차 안되는 쪼다들 주제에 거룩한 '진보집권'을 꿈꾸다니, 후안무치하고 파렴치하다란 욕찌거리가 저절로 뿜어 나올 지경이다.
지금껏 진보진영 정치인 행세하면서 밥짓는 방법조차 모르는 위인들은 가짜 진보주의자들이다. 고로 현재 야권 정치세력은 예외없이 가짜 진보집단이라는 결론이다. 야바위 진보장사꾼들에 다름 아니다. 일개 여배우에 불과한 김여진씨 발톱의 때만도 못한 빈대벼룩이기생충에 불과할 뿐이다. 새로운 진보적 가치를 상상조차 못하는 무뇌아 좀비족이 제격일지도 모르겠다. 무척 궁금하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잔하고 나타나는 김여진"의 활약상을 바라보면서 자존심이 안상했는지 말이다. 명색이 정치밥 먹고 산다라는 국민행복배달 전문가들이 헛짓하는 동안에 정치무자격자에 불과한 김여진씨가 해결사 자청하며 종결자 노릇하는 상황이 심기불편하지 않았을까?
말로 한몫 잡으려는 진보진영 정치인들. 방향감각 상실한 진보진영 정당패거리들. 좌파사상 들먹이며 서민대중 기죽이고 무지렁이 취급하는 진보진영 정치논객들 모두 한결같이 '제 밥 벌이조차 못하는 가짜 진보주의자'라고 인증샷 날려주련다.
지금 우리 서민대중들은 진짜 진보주의를 열망한다. 밥을 지을 줄 알고 밥을 나눌 줄 아는 실용적인 진보 정치스킬을 원한다. 그리고 우리 진보진영 정치인들이 새로운 진보적 가치를 깨닫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겸손한 심정으로 그동안 김여진씨가 보여준 행태를 롤모델 삼아 분석해 보라. 홍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진정한 밥을 만들어주기 위하여 그녀가 실행했던 전략적 패턴을 유심히 관찰해 보라. 뭔가 번쩍 떠오르지 않는가? 최소한 그녀가 기존 정치인들과는 분명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고 풀어가려했다란 그런 느낌이 안드나? 넋놓고 함께 울부짖으며 농성자 일원으로 힘을 보태는게 고작었느냔 말이다. 절대 그렇치 않았음은 이미 각종 미디어를 통해 여실히 공개되지 않았는가. 김여진의 열정은 물론 그녀의 번뜩이는 창의성이 경이롭지 않았는가 말이다. 진중권 패러디를 렌트하자면 "우리 진보진영 정치인들이 후딱 알아차리면 정말 좋을텐데, 한나라당 보온상수 첩자들 염탐질 땜시 속시원히 말해 줄 '빵븝'은 없고 답답해 미치겠네..."
날라리를 차처하며 홍대 비정규직 농성 현장에 뛰어든 영화배우 김여진씨는 분명 정치적 행위를 하였다. 그러나 그 핵심은 단순한 '정치투쟁'을 넘어선 '정치 비즈니스'였다. 뿐만 아니라 대단히 스마트하고 멀티플한 토탈 비즈니스 전략을 구사하였다. 그리고 끝내 실효적 성과를 이뤄냈다. 바로 이 점이 문성근의 백만민란과 현저히 대별되는 '새로운 진보적 정치 행위'라 하겠다. 수백명이 끙끙거리며 풀지 못했던 난맥상이 김여진씨의 스마트한 창의적 발상과 접목되면서 일사천리로 풀렸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사회적 파장은 그야말로 버라이어티 블록버스터 울트라 쇼킹레이스 하이퍼 레알 초특급 서프라이즈에 다름 아니었다. 그렇다. 핵심은 '비즈니스 방식의 접목'이다. 우격다짐과 울부짖음이 아닌 지능적 압박과 협상이 난맥상을 풀어낸 비결이었다. 이른바 스마트한 앵벌 스킬 즉 현명한 정치 비즈니스 전략인 것이다.
밥짓는 진보정치는 가능한가?
그동안 우리 진보진영 정치인들은 대의명분에 얽매여 자승자박의 오류를 범하는 사례가 허다했다. 특히 좌파적 성향이 강할 수록 기득권 세력과의 협상에 대해 의심과 경계를 늦추지 않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물론 밀실거래에 따른 폐해가 빈번한 까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같은 진보진영 특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결과적으로 협상능력의 부재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쌈꾼'의 심볼로 국민들 인식에 각인되는 지경에 이른것 또한 사실이다.
비즈니스는 신사적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비즈니스는 동물들의 종족번식욕구를 능가할 만큼 잔혹하고 교활하며 비열한 방식이다. 단 1%의 이득이라도 더 얻기 위하여 온갖 잔머리를 굴려가며 구차스럽고 치사스럽게 실랑이를 벌이는 협상방식이 곧 비즈니스의 핵심이다. 흔히 '명분은 얻고 실리를 잃는 경우' 또는 '명분은 내주고 실리를 챙기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진보진영 정치인들 습성은 전자의 경우에 치우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야합 정치인'이라는 선입견이 두려운 까닭이다. 일부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자칫 정치인의 밥줄은 영영 끊어버릴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진보진영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무능력한 정치세력으로 낙인찍히게된 이면에는 그동안 '투쟁' 아니면 '야합'이라는 두가지 정치스킬만 구사했던 안이한 습성에 기인했음을 엿보게 된다. 일상적인 비즈니스에서 일명 '리베이트거래방식'은 가장 손쉽게 구사할 수 있는 효과만점방식으로 통한다. 진정한 노력과 실력이 아닌 변칙적 방법에 불과하지만, 이같은 유혹을 뿌리치기란 사실 쉽지 않은 현실이다. 비즈니스란 상통을 전제하여 성립되는 만큼 어느 한쪽이라도 편법을 원할 경우 특히 기득권쪽에서 원할시에는 100% 특효를 발휘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김여진씨는 어떻게 투쟁과 야합을 넘어서 정상적인 비즈니스 거래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자명하다. 공개적이고 투명한 거래방식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조협상이 난항에 봉착할 경우 사용자측에서 노조측대표자들을 매수하여 협상을 타결하는 방식이 비일비재한데, 김여진씨에게도 그같은 매수 접근이 시도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김여진씨는 시종일관 본인의 주도하에 투명한 딜방식을 고수하여 마침내 홍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밥 벌이'를 지켜줄 수 있었다. 낮에는 국회에서 타이슨펀치 날리며 쌈박질하고 밤에는 텐프로주점에서 형님동생하며 살갑게 지내는 우리네 정치인들의 이중적 습성으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우리 진보진영 정치인들이 무능한 정치세력으로 낙인찍힐수 밖에 없는 이유는 국민들을 위한 의제를 개발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개발한 의제를 실현시켜가는 과정 가운데 보수 정치세력과의 협상을 주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단 정치권내의 협상 뿐만 아니라 공직자와 기업인을 상대하더라도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야당 위치일 때는 물론 집권당 입장일 경우에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 결과 정치변혁을 갈망하는 국민적 욕구 분출에도 불구하고 타성에 젖은 진보진영 정치인들은 비즈니스 능력개발 노력은 시도조차 하지않고 그저 과거와 동일한 변칙적 국가운용시스템에 편승하여 적당한 명분노름으로 자리보전을 꾀할 뿐이다. 어차피 밥짓는 능력은 기득권자들의 전유물일 뿐이고 야당 정치인 체면유지 차원에서 서민대중에게 돌아갈 낙수물만 구걸하면 족하다란식으로 체념한채 말이다.
이처럼 무능한 진보진영이 밥짓는 진보세력으로 거듭날 방법은 없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일개 시민에 불과하고 정치인들 또한 다양다종한 인격주체자들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칙론적인 방법은 제시할 수 있겠으나 수용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란 것이다. 오랜 관행과 타성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극복되고 개선될 수 있겠는가. 설령 현명한 지도층 정치인이 목숨걸도 정치변혁을 주도하더라도 저항세력에 발목잡혀 수포로 돌아갈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다. 하여 '중이 제머리 못깍는다'는 속담이 우리 진보정치권에 딱 들어맞는 비유가 아닐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 기득권세력과의 비즈니스를 주도할 수 있는 진보정치세력이 곧 밥짓는 진보정치세력이라고 확신한다. 미션 임파서블인가? 절대 그렇치 않다. 협상의 주도권은 힘의 논리에 따라 좌우되기 마련이다. 즉 비즈니스는 힘의 기울기가 관건이란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서 힘의 실체는 무엇인가? 바로 세력이다. 그렇다면 현재 진보진영은 왜 세력이 약한가? 그것은 세력을 바라보는 시각이 대단히 협소할뿐만 아니라 극도로 편협스러운 까닭이다. 적군 한명을 내편으로 만들면 힘의 기울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조차 계산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적의 경비원과 세퍼트를 장애물로 간주하는 순간 비즈니스가 어려워진다는 초급 마케팅기법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즉 적의 경비원과 세퍼트를 내편으로 회유하는 순간 안방주인은 그저 허수아비에 다름 아니란 삼류탐정소설조차 이해 못하는 까닭이다.
사람이 희망이다. 사람이 곧 세력이다. 주권시민세력이 진보진영의 주류세력으로 자리잡고 감독, 코치, 심판의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레전드급의 정치선수들을 육성하고 후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 소속 정치선수들은 물론 이건희 회장이라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주류세력이 곧 거대한 정치소비자연대세력이다. 저들은 30% 우리는 70%면 게임 오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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