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노벨 경제학 수상자 로렌스 클라인과의 대화..
아래의 글은 지난 2004년 필자가 계량경제학의 창시자로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렌스 클라인과 동아시아 정세와 중동 분쟁을 주제로 3시간 가량 대화를 나눈 내용이다. 여기선 동아시아 정세에 대해서만 기술했다..
지난 2004년 3월 2일 저녁이었다. 필자는 당시 신라호텔에서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로렌스 클라인(Lawrence Robert Klein)과 2시간반 정도 만찬을 함께 하며 동아시아의 미래와 중동 분쟁에 대해 환담을 나눈 바 있다. 계량경제학의 창시자인 로렌스 클라인은 시카고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1968년부터 MBA의 명문인 펜실베니아 대학 와튼 스쿨(Wharton School)에서 30여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며 벤자민 프랭클린 석좌 교수로 있던 아슈케나지 출신의 저명한 경제 학자였다. 그와 처음 만난 순간을 아직까지 잊지 못하는데, 당시 객실에 있던 그는 불란서 식당(23층)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음에도 굳이 필자가 도착한 호텔 로비까지 마중나와 함께 올라가는 정중함을 보였기 때문이다. 나비 넥타이를 맨 검은 정장 차림의 83세의 노인네가 허리가 약간 구부정한 모습으로 지팡이를 집고 나타났을 때, 동양적 관습에 익숙한 필자는 잠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필자는 백인 피부임에도 검버섯은 커녕 외려 영롱한 빛을 발하는 그의 눈빛과 얼굴에 다시 한번 놀랐다. 대화의 첫 번째 주제는 당시 국제적 이슈로 부상한 양안(兩岸) 문제였다. 전날 대선을 앞두고 있던 천수이벤을 만나고 돌아온 그는 대만이 독립을 선포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중국 역시 그 문제로 대만을 침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단언하였다. 지난해 말(12.31) 후진타오가 대만에 군사 교류를 제안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실제로 대만의 독립/통일 문제는 향후 아시아 및 세계 패권 구도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딮스트럭쳐는 춘추(春秋) 전국(戰國) 진(秦)나라의 세가지로 모델로 압축된다. 춘추 시대는 오늘날 미국과 같은 연방제를 의미하고, 전국 시대는 소비에트 연방(USSR) 붕괴로 해체된 15개 국가처럼 분국 시대를, 그리고 진나라는 마오쩌뚱에 의해 건국된 패권국으로서 현재의 중국을 의미한다.
1997년 홍콩 반환을 앞두고 덩샤오핑(등소평)이 제시한 ‘1국가 2체제론’은 이같은 역사적 모델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었다. 실제로 덩샤오핑이 주창한 1국가 2체제론은 단순히 홍콩 반환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향후 중국의 미래를 염두에 둔 장기 포석이었다. 예컨대,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은 중국 정부가 취한 조치는 인민해방군의 홍콩 주둔이었다. 당시 홍콩의 수많은 화교들이 캐나다 벤쿠버로 이주한데서 알 수 있듯이, 이는 홍콩의 자치를 허용하지 않음을 의미했다. 반면 대만 합병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동일한 1국가 2체제 틀에서 자국 군대를 허용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더불어 김정일 위원장의 유고시 북한마저 중국에 부분 합병될 경우, 그것은 ‘1국가 2체제’가 아닌 ‘2국가 1체제’ 형식의 연방제를 취하게 될 것이다. 동북공정은 이처럼 치밀한 중국 정부의 외교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2020년 현재의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에서 연방제로의 이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홍콩이 현재처럼 중국 공산당이 임명한 인물이 아닌, 시민들이 직접 선출한 인물에 의해 통치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007년말 개최된 중국 전대 상무위원회에서는 홍콩 반환 20주년이 되는 2017년부터 홍콩의 행정장관을 주민들이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직선제 방안을 수용하였다. 중국의 이같은 태도 변화는 그 때쯤이면 대만 역시 자국 군대를 허용하는 형태로 중국과 통일 상태에 있을 것을 염두에 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자국 군대를 허용한 대만에 자치 허용은 당연한 일이기에, 홍콩에도 자치를 허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여기에 만일 북한마저 중국에 부분 합병될 경우, 북한은 자국 군대와 자치는 물론, 완벽한 정치적 독립 상태를 유지하는 연방제 형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2020년 연방제는 90년대초 붕괴된 소비에트 연방처럼, 현재의 중국을 5~6개 군벌로 분열시키려는 미국의 대중국 붕괴 전략에 대한 대응 전략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나리오는 90년대 중반 미국 랜드(RAND) 연구소에서 나온 것으로, 중국의 서남공정과 동북공정은 다름아닌 그 대항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덩샤오핑의 ‘1국가 2체제론’이 그 시발점이었다면, 2020년 연방제는 그 마침표인 셈이다. 1984년 초고속으로 공청단 제1서기에 올랐다가 태자당의 견제로 티베트로 좌천된 후진타오가 2003년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오른 것은 중국의 이같은 대외 정책 변화를 상징하고 있었다. 티베트를 다스리며 중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패권 전략을 누구보다 명확히 파악하고 있던 그는 서남공정의 성공적 완수를 통해 중난하이(中南海)에 입성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샹하이 협력기구(SCO)를 통해 미국의 패권을 견제하려는 것도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2020년 연방제를 통해 라이벌인 일본 주변을 홍콩-싱가폴-대만-중국-북한으로 에워싸 일본이 실질적으로 중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연방에 편입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정치 경제적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사정이 그러하기는 중국의 영향력이 훨씬 큰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 그렇게 대만과 북한에 이어 한국과 일본마저 아우르는 EU와 같은 동아시아 연방을 통해 중국은 2050년 마침내 미국을 극복하고 세계 유일의 팍스 시니카(Pax Sinica: 中華) 시대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시발점은 대만과의 통일이 될 것이다. 현재 벵갈만으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한 미얀마 정부가 친중국 성향의 군부에 의해 장악된 것과, 친중국 성향의 탁신 총리를 둘러싸고 태국에서 잦은 혼란이 발생하는 것도 이처럼 아시아에서 치열하게 전개중인 중국 vs 미국의 패권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이같은 상황은 인도를 둘러싼 아시아 패권 구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미얀마와 태국의 혼란이 인도 우측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라면, 2007년말 부토(Benazir Bhutto) 암살로 시작된 파키스탄의 혼란은 인도 좌측에서 발생한 사건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테러와의 전쟁을 계기로 부시와 긴밀히 협력하던 무샤라프(Pervez Musharraf)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와 급속도로 가까워지자, 2007년 중동의 관문인 호르무즈 해협에 위치한 과다르(gwadar)항을 중국이 해군 기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물론 그것은 미국에게 대재앙이었고, 결국 부토 암살은 무샤라프의 퇴진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런 의미에서 현 글로벌 금융 위기로 IMF에 체제에 들어간 파키스탄이 과다르항의 최종 운영권을 어디로 넘길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대만 문제를 둘러싼 세계 패권 구도와 관련해 대화하던 중 클라인은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은 중국은 붕괴될 것이며, 러시아 동시베리아 석유는 단 한방물도 중국으로 가지 않고, 대부분 해저 파이프라인을 통해 미국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란 내용이었다(최근 외환 위기에 처한 러시아는 중국과 에너지 협약을 체결했다). 네오콘과 달리 록펠러처럼 극도로 신중한 국제주의자로 알려진 그의 입에서 너무도 분명한 중국에 대한 입장을 확인한 필자는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당시(2004) 중국은 지나친 경기 과열로 일부 중소기업에 전력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를 빚고 있었으며, 부동산 시장엔 묻지마식 투기 광풍이 불고 있었다. 더불어 농촌과 도시의 현격한 임금 격차로 수많은 농촌 젊은이들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었다. 클라인이 떠난지 불과 한달만에 원자바오 총리가 지나친 경기 과열을 우려하며 금리 조정에 나선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중국을 보면, 역시 금융 엘리트를 상대하기엔 버거워 보인다. 19세기초, 인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영국 정부로부터 아편 전매권을 부여받은 유대계 삿순(Sassoon) 가문은 중국인들을 영원한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는 당시 상류층에서만 피우던 아편을 일반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에 따라 그들은 한동안 중국 물품만 수입하는 일방 무역을 통해 중국인들의 경계심을 완화시킨 뒤, 일방 무역으로 부유해진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아편을 공급해 중국 전체를 병들게 했을뿐 아니라, 중국인들의 은전을 싹쓸이했다. 마찬가지로 2006년 1,100선에 불과하던 샹하이종합지수를 이듬해 6,000선으로 끌어 올리며 중국인들을 주식 광풍으로 몰아간 금융 엘리트들은 1년만에 다시 3배 넘게 폭락시키며 그들의 부를 강탈해갔다. 19세기초 아편에 중독됐던 중국인들은 21세기초 어느새 탐욕(주식)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통화량 증가로 조만간 달러화 폭락이 현실화 될 경우, 2조 달러의 외환보유고 가운데 무려 1조5천억 달러가 달러화 자산인 중국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 힘들다. - <악마들의 거처 바티칸>(2009) 에필로그..
ps: 원래 <경제묵시록> 에필로그에 넣으려 했던 것인데...
더 많은 정보를 원하시는 분들은 여기로... http://devilstay.tistory.com/32?srchid=BR1http%3A%2F%2Fdevilstay.tistory.com%2F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