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의 문학서재 §/◎ 칼럼 & 논술문

[리포트 특강] 욕망을 철학하라. -윌리엄 B. 어빈의 '욕망의 발견'을 중심으로-

변산바람꽃 2012. 2. 10. 06:16

 

 

 

 

[리포트 특강] 욕망을 철학하라. -윌리엄 B. 어빈의 '욕망의 발견'을 중심으로-

 

 

 

우리는 항상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해 불안해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며 살아간다. 당장에, 우리는 어떠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나. 오늘 아침, 무슨 반찬을 먹어야 맛이 있을까, 어떤 옷을 입어야 돋보일까 고민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성적, 이성에 대한 관심, 자신의 콤플렉스, 친구들과의 관계, 대학 졸업 후 진로, 영원히 사는 것 등에 관한 고민들, 잠시 생각하다 이내 잊어버릴 사소한 고민부터 죽을 때 까지 안고가야 할 고민까지 무수히 많은 생각들과 마주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고민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무언가 내게 더 도움이 되고, 내가 더 흥미를 느끼는 것에 대해 추구하는 본능적인 반응이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고민은 생물의 행동을 야기시키는 본능적인 반응인 욕망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언제 어느 때고, 늘 욕망하며 살아간다. 식욕, 성욕 같은 생명을 유지하고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욕망이 있는가 하면, 명예욕이나 성취욕, 소유욕 같은 사회성을 가지는 욕망도 있다. 욕망하면 부질없음, 삶의 헛됨을 떠올리며 욕망이 가져다주는 쾌락을 쓸모없는 것이라 치부하는 욕망 부정론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하늘을 정복하고 싶다는 욕망, 불사의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비행기를 만들게 하고, 인간복제와 같은 생명공학의 발전을 낳았다는 것을 당신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것들이 욕망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물론 욕망이 지나치면 목이 타는 갈증에 바닷물을 끊임없이 마셔 죽음에 도달하는 것과 같은 파멸을 초래 한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욕망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비판할 것은 아니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만족이기 때문이다. 인간에서 성취의 동기와 발견의 출입구가 되어 주는 것도 욕망 추구의 결과이다. 이러한 결과의 만족에서 오는 행복과 만족하기 위한 개개인의 욕망. 그러나 인간의 갈등의 근거 또한 여기서 시작 된다. 행복을 위한 끊임없는 욕망의 추구는 인간을 경쟁하게 만들고, 추구의 지나침은 인간이 인간 사회를 파멸로 이끄는 원인이 되어왔다.

 

우리는 이러한 욕망과 욕구를 구별해야 한다. 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먹으려는 것은 욕구이지만, 즐기기 위해 내 입맛을 충족시켜 주는 음식을 찾는 것은 욕망이다. 더위나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옷을 입으려는 것은 욕구이지만, 내 지위를 위해, 사치하기 위해 비싸고 화려한 옷을 찾는 것은 욕망이다. 이처럼 욕구는 생리적인 요구로서 노력하면 어떻게든 만족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욕망은 생리적인 요구에 정신적 요구가 더해진 것으로서 어떻게 해도 만족에 이르지만 욕망은 욕구와 달리 밑빠진 독과 같이 아무리 물을 부어넣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욕망의 충족은 더 큰 욕망으로의 결핍을 낳는다.

 

언제인가부터 유행했던 ‘신상녀’는 욕망의 추구에 의한 굴레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많은 사람을 맛에 빠뜨리려면, 더 새로워야 하고, 더 신선해야 한다.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새로운 맛의 신상품이 끊임없이 나온다. 신상녀가 새 상품을 구입하는 순간 그것에 관한 흥미를 이내 잃게 되고, 탐욕의 눈은 더 신선만 맛을 느끼게 해줄 것을 찾아 헤맨다. 소비와 비례해 욕망도 늘어나게 된다. 행복을 위한 욕망이 아닌 욕망을 위한 겉치레인 행복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화로 욕망을 채우려 하면 할수록,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이 일화에서 욕망의 필요성을 찾아 낼 수 있다. 신상녀와 같은 사람이 없는, 사치라는 것을 모르고, 욕망이 없는 사람들만이 모인 사회에서 변화가 일어 날수 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가 없는 옷을 입으며, 수세기가 지나도 같은 생활을 하며,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 지루하게 반복되는 어제, 오늘, 내일만이 있을 것이다.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삶도 행복하다고 할 순 없지만 욕망의 절제만이 있는 삶 또한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윌리엄 어빈은 욕망의 본질이 무엇이며, 어떻게 진화하는지, 욕망은 어디에서 시작되며, 우리의 삶을 어떤 식으로 지배하는가를 나름의 이론적 근거를 통해 설명하면서 욕망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의 저서『욕망의 발견』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하는 존재이며, 욕망이야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우선 언급하고 있지만 굳이 어빈의 언급이 아니었어도 욕망이 인간 행동의 본질에 근거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욕망을 느끼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다. 어빈이 강조한 것처럼 욕망은 애초에 육체적인 필요에서 비롯되고 그것의 충족과 연관된 생물학적 보상시스템(Biological Incentive System)에 의해 강화되면서 절대적인 주인처럼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 사실 어빈이 말한 BIS는 철학자들이 인간의 욕망을 설명하기 위해 가정한 쾌락원리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욕망은 육체적 욕구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요구에 의해 매개 되기에 훨씬 복잡하다.

 

또한 욕망은 절대적인 빈곤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기대를 통해 작동하기 때문에 본성상 만족을 모른다. 다시 말해 어빈이 말했듯이 하나의 욕망을 채우면 또 다시 새로운 욕망이 형성되면서 결국에는 영원한 불만의 상태로 남는 것이 인간 욕망의 역설적 본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욕망을 좇다보면 결국에는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정신적으로는 궁핍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어빈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바꾸거나 우리의 위치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대신 우리 자신의 마음을 바꾸라고 충고한다. 쉽게 말해 욕망의 본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하면서 마음의 평정심을 통해 우리가 거짓 욕망의 지배에 휘둘리면서 불행하게 되지 않도록 설득 하려고 한다.

 

종국적으로 어빈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욕망의 작동법칙과 본성에 대해 합리적으로 이해하면서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다. 결국 그의 저서『욕망의 발견』에서 언급하고 있는 ‘1 욕망의 은밀한 삶,’ ‘2 욕망의 과학’에 대한 사유는 ‘3장 욕망 다스리기’를 말하기 위한 예비적 고찰인 셈이다. 여기서 어빈의 입장은 좋은 욕망과 나쁜 욕망을 구분하고 이성적 분별력과 절제를 통해 욕망을 다스릴 것을 주장하는 그리스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계승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우리의 욕망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욕망을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는가?

 

어빈 자신이 강조한 것처럼 우리 욕망은 나의 순수한 의지나 생리적 본능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무의식적인 동기나 타인의 욕망에서 기인할 때가 많다. 또한 하나의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위한 도구적인 욕망일 때가 너무 많다. 한마디로 욕망의 실체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욕망 추구의 목적이 행복한 삶에 있다면 그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실체가 곧 욕망의 실체와 동일한가 라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시각에서 어빈은 욕망에 대한 이성적 성찰을 강조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욕망을 아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가볍게 지나치고 있다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혹은 욕망에 대해 확신을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생산적 욕망이 아니라 소외된 거짓욕망인 경우도 많다. 『욕망의 발견』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품는 욕망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고, 우리의 행복을 망치는 그릇된 욕망에 대해 경계하려고 하지만 무수히 우리를 덮치는 욕망의 파도 속에서 쉽게 길을 잃는다.

 

욕망을 형성하는 감정과 지성이 의식적 차원 뿐 아니라 무의식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욕망의 무의식적 본성이나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 특히 프로이트, 라캉 등의 정신분석학자나 레비나스, 들뢰즈 같은 현대철학자들이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어빈은 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이론적 논쟁에만 매달리는 현대철학자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마디로 일축하면서 욕망에 관한 철학적 논쟁의 풍부한 성과들을 외면한다. 그러면서 어빈은 욕망의 원천을 ‘생물학적 보상시스템’ 같은 내적인 측면에서 찾고 욕망의 윤리를 우리 안의 잘못된 본능과 욕심을 통제하라는 순진한 도덕적 조언으로 전락시킨다. 이 점은 어빈의 자신의 저서에서 명쾌하게 해답하지 못하고 있는 아쉬운 부분이다.

 

또한 어빈은 욕망형성의 사회적 차원에 대한 분석에서 빈약하다. 현대인들이 욕망에서 소외되는 것은 욕망이 무의식적 근원을 갖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소비사회의 메커니즘에 지배되면서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는 데서 기인하기도 한다. 이것은 인간의 자발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르네 지라르가 지적했듯이 인간의 욕망이 타자가 욕망하는 대상을 모방하는 데서 비롯되며, 본성상 욕망은 타인들의 인정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또한 장 보드리야드가 보여주었듯이 현대소비사회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며, 사용가치 대신 교환가치가 확대되면서 인간의 욕망도 사회화된 기호에 맞춰진다. 어빈이 예를 들었듯이 우리는 SUV가 실용적이고 생활에 적합해서 선택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선택하고 특권적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현대 매스미디어의 총아인 광고는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의 욕망을 주조하며, 새로운 기호의 논리 속에 욕망을 포섭한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소외되지 않은 욕망을 찾기 위해서는 욕망을 강제하고 타자의 욕망에 종속시키는 사회적 메커니즘에 대해 더욱 비판적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욕망한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한가? 여러분은 행복하기 위해 현재 욕망하는 것이 있는가? 아니 무엇을 욕망하는가? 그리고 여러분은 그러한 욕망 추구의 삶을 살고 있으면 그래서 행복한가?

 

인간은 자신의 삶에 대해 지속적으로 만족하고 있음을 우리는 행복으로 표현한다. 행복, 행복,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삶에 대한 만족도를 좌우하는 행복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또한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욕망은 나를 변화 시켜 주고, 내 생활의 활력을 주는 요소이긴 하지만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것을 알고 있다. 나의 삶이 행복으로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 나는 내 육신의 욕망에서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첫째로 삼는다. 나는 매주 한 게임의 로또 복권을 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게임의 로또에 응모해 본다. 정말로 로또 복권이 당첨 되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 당첨을 위해서 한 달 용돈을 로또에 다 쏟아 붓는 바보 같은 욕망의 노예로 살지는 않는다. 그저 로또 복권이 당첨되기를 바라면서 한 주간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는 욕망을 즐기는 것에 소소한 행복을 느낄 뿐이다.

 

행복의 비결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나 그 세상 안의 우리 위치를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바꾸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의 욕망 가운데 어떤 것은 충족시키고 어떤 것은 다스려 마음의 평정을 얻는 것이 행복의 본질이다. 종교 지도자와 위대한 철학자들이 한결 같이 이것을 실천했다. 석가모니는 쾌락주의도 금욕주의도 아닌 중도의 길을 추구했으며 유가와 도가의 생각도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서양 고대의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의 주장도 비슷하다. 물론 어떤 욕망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두 다르지만 말이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욕망이 존재보존을 위한 필연적 노력이라면, 올바른 욕망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우리를 둘러싼 삶의 조건에 대해 좀 더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섬세한 고찰이 필요하다. 대단한 수행을 한 이가 아닌 일반인인 우리는 욕망에 대한 절제가 쉽지 않겠지만 현실적 해결책은 존재 한다. 그 해결방법은 각자 자신의 욕망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적절한 생활 태도를 개발하는 데 있다.

 

자신의 삶에서 핵심적인 가치에 집중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우선으로 집중해야 할 것에 몰두해야 한다. 동시에 너무 많은 것을, 너무 크게 바라지 않는 것이 행복해지는 비결이다. 여기에 더해 이미 가지고 있거나 주변에서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에서 만족을 구한다면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오늘 이 특강을 듣는 여러분...입시준비도 우리의 사회적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여러분...지나친 욕망을 절제하기 위해 욕망을 철학하라. 욕망의 본성적 의미를 깨달아 알아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행복은 이미 같이 있는 것이 아닐까 고민해 보라.

(강미/변산바람꽃)

 

 

- 참고문헌 -

 

윌리엄 B. 어빈, 『욕망의 발견』 서평

김석, 『욕망 다스리기를 위한 순진한 철학적 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