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의 문학서재 §/◎ 논술 斷想

[논술短想] 몰입에 대한 短想 - 허일이정, 虛一而靜

변산바람꽃 2012. 5. 20. 10:38

 

[논술短想] 몰입에 대한 短想 - 허일이정, 虛一而靜

 

 

 

몰입이란 온 힘을 다 쏟은 행동을 하게 될 때 사람들이 느끼는 총체적인 감정 상태를 뜻한다. 몰입 상태에서, 행위란 행위자가 의식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없는 내적인 논리에 따라서 행동이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 행위자는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이어지면서 통합된 몰입으로서 행동을 경험하게 된다. 몰입의 상태에서 행위자는 자기 행동을 조절할 수 있으며, 그 상태에서는 자아와 주변 환경, 자극과 반응, 과거-현재-미래 사이의 구분이 없다.

 

 몰입은 ‘자기목적적인 경험’이라고 부르는 상태, 바로 그것이다. 몰입 경험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가 대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기목적적인 것이다. 행위로 인해 어쩌다가 얻게 될 외적 보상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몰입 자체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행위에서든지 몰입을 경험할 수도 있다. 심지어 전혀 즐거움을 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활동에서도 몰입은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깊은 몰입’은 메타사회적 주석을 제공한다. 한 개인의 등산에 대한 몰입의 결과물이 암벽등반에 필수적인 새로운 등산화를 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암벽등반과 같은 자기목적적인 활동이 한 문화를 좀 더 명료하게 인지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끊임없는 깊은몰입의 결과물로 형성된 사회의 변화를 설명함에 있어서 사회에 대한 해석들이 반구조적인 것이거나 친구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달리 말해서, 몰입의 결과물에 의한 이런 해석들은 새로운 구조들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기존 구조들을 단순히 무시하거나 철회하려는 것인가? 몰입의 결과물에 대한 진정성에 대한 해석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개인의 몰입의 결과물은 사회 전반에 어떤 형태로든 관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깊은몰입이 주는 새로운 관점을 암벽등반가의 생각에서 찾아 보자.

 

 "이 세상에 있는 너무나 많은 자극은 매연이고 수렁일 뿐입니다. 구름이 떠다니는 저 높은 곳에 오르면 겉모습은 모두 사라져버립니다. 사회에 대한 자의식은 가면과도 같은 거죠. 우리는 그것을 쓰도록 운명 지어졌습니다. 저 높이 올라가면 어떠한 형식으로든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는 위대한 기회와 마주하게 됩니다.

 

 저 높은 곳에서는, 세상이 입혀준 거짓 체면, 복장, 가면을 쓴 인간성, 거짓된 자의식, 거짓된 자기 인식을 떨쳐내게 됩니다. 사람들은 항상 잘못 소통하고 겉모습의 안개를 뚫고 깨부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게 됩니다. 문명 속에서 사람들은 실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서는 우주와 그 안에 있는 인간의 몫에 대해 결코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차, 학교, 파티 등을 생각할 뿐이죠. 사람들은 술, 마약을 통해서라도 항상 무언가를 찾습니다.

 

 가장 가까이는 자연을 통해서 그것에 이를 수 있습니다. 등산은 인간의 깊은 틈에 대해 배우면서 육체와 마음을 수련하게 해줍니다. 저 높은 곳에서 우리는 자연 속에 인간의 진정한 자리를 발견하게 되면 자연과 하나가 됨을 느낍니다.”

 

  또한 몰입에 대한 사고를 순자의 시각에서 찾아보고 자신은 어떠한 몰입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추구할 이유가 있는지 비교해 보라.

 

  순자(荀子)는 “인간은 무엇을 통하여 도(道)를 인식하는가? 그것은 바로 마음을 통해서이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떻게 도를 인식하는가? ‘텅 비고 전일하여 고요함’(허일이정, 虛一而靜)으로써 인식된다”라고 하면서, 마음의 인지적 과정의 한 측면으로 ‘허일이정’을 내세운다. 우리가 도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텅 비게 하여야 한다. 비우면 외부 사물이 아무 편견 없이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을 한 군데 쏟아 ‘전일’(專一)하여야 한다. ‘전일’하면 모든 사물의 무궁한 변화에 알맞게 응할 수 있어 사물을 깊고 정통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을 ‘고요함’에 이르게 해야 한다. 고요하면 사물의 이치를 깊이 알게 된다. 순자는 마음이 ‘허일이정’할 수만 있으면 ‘크게 맑고 밝은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우리의 마음이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사물의 전체적인 이치를 파악하여 가리고 막히는 병폐를 면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마음이 ‘허일이정’하여 ‘크게 맑고 밝은 상태’에 도달하면 도를 파악할 수 있어 정확하게 외부의 사물세계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만물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순자의 생각에 의하면, 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른 생각들로부터 자유롭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하며, 한결같이 도에 대한 생각에 집중하고, 또한 고요하게 함으로써 그 의미를 새길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이를 위하여 욕망과 의지와 지식까지 버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러한 순자의 ‘허일이정’의 방법은 장자(莊子)의 ‘심재’(心齋)와는 그 내용이 전혀 다르다. 순자는 주로 지식론적 측면에서 ‘허일이정’을 설명하고 있는 특징이 있는데, 그의 지식론은 ‘본성을 변화시켜 인위를 일으킨다는 주장’(화성기위, 化性起僞)에 근거를 두고 인위적 노력을 통한 지식의 축적을 강조한다. 이 지식의 축적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으나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순자는‘허’(虛)를 중요시한다. 그는 종래의 ‘허’의 뜻을 이미 간직한 것으로 앞으로 받아들일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바꾸어 놓았다. 순자는 장자와 달리 도는 날마다 덜어내는 것을 통하여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쌓음을 통하여 알 수 있다는 길을 터놓은 것이다. 마음이 비록 지식과 의지를 포함하고 있더라도 텅 빔이 존재하며, 또한 마음이 가득 차지 않은 적이 없지만(또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에 집중할 수 있으며, 마음은 움직이지 않은 적이 없지만 또한 고요함의 측면이 있다.(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