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강의 46] 소비지향적인 사회의 대안, 존재지향적인 삶의 추구에서
[논술강의 46] 소비지향적인 사회의 대안, 존재지향적인 삶의 추구에서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현대 사회의 문제점의 원인을 소유 지향적 삶의 방식이라고 피력했다. 다양한 가치의 생존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치우쳐 모든 것을 소유하려고 하는 인간에게 깨우침을 주는 글이다. 현대 사회의 물질적 풍족함이 과연 인간에게 올바른 삶을 유지하게 하는지, 다른 가치보다 가장 우선시되는 것이 돈이어야 하는지 의심스럽다. 물질적 가치가 팽배하는 사회에서 ‘나’를 찾으려는 노력은 현대인들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다. 아래에서 소비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비교해 보자. 먼저, 소비의 시대인 오늘날에는 상품의 논리가 일반화되어 노동 과정이나 물질적 생산품뿐만 아니라 문화, 섹슈얼리티, 인간 관계, 심지어 환상과 개인적 욕망까지도 지배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 논리에 종속되어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모든 기능과 욕구가 이윤에 의해 대상화되고 조작된다고 하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진열되어 구경거리가 된다는, 즉 이미지, 기호, 소비 가능한 모델로 환기되고 유발되고 편성된다는 보다 깊은 의미에서이다. 소비 과정은 기호를 흡수하고 기호에 의해 흡수되는 과정이다. 기호의 발신과 수신만이 있을 뿐이며 개인으로서 존재는 기호의 조작과 계산 속에서 소멸한다. 소비 시대의 인간은 자기 노동의 생산물뿐만 아니라 자기 욕구조차도 직시하는 일이 없으며 자신의 모습과 마주 대하는 일도 없다. 그는 자신이 늘어놓은 기호들 속에 내재할 뿐이다. 초월성도 궁극성도 목적성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이 사회의 특징은 ‘반성’의 부재, 자신에 대한 시각의 부재이다. 현대의 질서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는 장소였던 거울은 사라지고, 대신 쇼윈도만이 존재한다. 거기에서 개인은 자신을 비춰보는 것이 아니라 대량의 기호화된 사물을 응시할 따름이며, 사회적 지위 등을 의미하는 기호의 질서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소비의 주체는 기호의 질서이다. 소비의 가장 아름다운 대상은 육체이다. 오늘날 육체는 광고, 패션, 대중 문화 등 모든 곳에 범람하고 있다. 육체를 둘러 싼 위생, 영양, 의료와 관련한 숭배 의식, 젊음, 우아함, 남자다움 혹은 여자다움에 대한 강박 관념, 미용, 건강, 날씬함을 위한 식이요법, 이것들 모두는 육체가 구원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육체는 영혼이 담당했던 도덕적,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문자 그대로 넘겨받았다. 오늘날 육체는 주체의 자율적인 목적에 따라서가 아니라, 소비 사회의 규범인 향락과 쾌락주의적 이윤 창출의 원리에 따라서 다시금 만들어진다. 이제 육체는 관리의 대상이 된다. 육체는 투자를 위한 자산처럼 이루어지고, 사회적 지위를 표시하는 여러 기호 중의 하나로서 조작된다. 이러한 소비에 대한 인식을 헤르만 헤세와 정약용의 글에서 나타나는 인식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싯다르타. 한 인도의 시』에서 근원적 실재로서의 자연의 존재를 설명하면서, 인간이 반성을 통해 그 자연의 질서를 깨달을 수 있는 존재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이러한 자연 친화적 삶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가난한 삶은 강물 속의 물고기를 생계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바라볼 터이고, 경제적 효율성만을 생각하는 이들은 강물을 개발과 이용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헤세의 이런 인식은 실제 소유가 곧바로 소비를 의미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에서 소비사회는 오늘날과는 다른 차이를 나타낸다. 다산 정약용의 다음 글에서 드러나 있는 삶의 방식도 역시 현대 소비 사회와 융합하기 힘들다. <얻기를 탐내는 자는 만족함이 없으니, 모두가 사치를 좋아하는 일념 때문이다. 만약 마음이 담담하여 만족할 줄 알면 세상 재물을 구해서 어디에 쓰겠는가. 청풍명월(淸風明月)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대 울타리 띠집에도 돈 쓸 일이 없고, 책을 읽고 도(道)를 이야기하는 데도 돈이 필요하지 않으며, 자신을 깨끗이 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데도 돈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사람을 구제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도 돈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을 가다듬고 성찰하면 세상맛에서 초탈하게 될 것이니 탐욕스러운 마음이 또 어디로부터 나오겠는가?> 이 글의 의미는사물이 인간의 존재와 건실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질박한 삶의 태도를 권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소비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현대 사회에도 그대로 전승되어 존재되지만 소비 사회 안에서 그 의미가 아무리 좋아도 견지되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소비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노력하는 과정은 무시되고 오로지 결과만이 개인의 생존과 그 밖의 모든 것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헤르만 헤시와 정약용이 제시하는 삶의 방식은 현대의 소비 지향적 사회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소박하고 자연 친화적인 삶을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 없다. 왜냐 하면 지금과 같이 상품과 소비 사회가 비인간적이고 자연 파괴적인 방향으로 질주하면 끔찍한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아름다움과 소박함을 추구하는 삶과 물질적 소비욕이 지배하는 삶 사이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교육적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 교육은 기존의 가치를 재생산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소이기도 하다. 헤르만 헤세의 한 인도의 시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이 쇼윈도 안을 바라보며 자아를 상실한 상황에서 교육은 자아에 대한 성찰을 강조하여 자연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사회적 소수자, 약자에 대한 배려이다. 소비 사회는 획일적인 가치관을 주입시켜 다양한 가치나 배려를 없애 버린다.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적 제도를 마련하여 사회 안전망을 확보한다면 갈등과 경쟁의 폭을 완화시켜 삶에 대한 가치를 더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곳에서 찾을 수 있다. 화려한 연예인의 삶 뒤에는 물질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마저 혼란스러운 모습이 있다. 풍요로운 물질의 유혹은 자신의 모습과 전혀 다른 이미지를 창출해 내고 기호화한다. 인기가 떨어진 연예인들의 각종 추태는 정체성 없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소비 사회로 질주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모습을 양산하며 자연을 파괴할 뿐이다. 가진 것과 외양만으로 누군가가 나를 평가하고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진정한 행복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소비 지향적 삶, 소유 지향적 삶 대신 에리히 프롬이 현 사회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내세운 ‘존재 지향적 삶’의 의미를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다. 강의를 맺자. 여러분은 소비에 대한 오늘날의 문화적 현상을 직접 경험하거나 보면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반성하고, 인간 삶에 있어 소중한 가치로 여겨져야 할 자기 자신의 존재, 자연과의 만남, 절제, 타자에 대한 배려와 같은 것들이 어떻게 자리잡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대입 논술고사에서 소비에 대한 문제를 접하게 되면, 일단 학생들은 자신들이 경험하는 소비 사회의 다양한 일면들을 되돌아보면서 왜 이제는 자연이나 사물과의 순수한 관계를 가질 수 없게 되었는지를 분석하고, 그 관계 회복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논술문 작성에 서술하는 것이 바람직한 논술방향이 될 것이다. (강미/변산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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