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가 내리는 길을 걷다가
- 강 미 -
여름비가 내리는 길을 걷다가
어둠 아래 흐르는 것들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한 때 존재하는 것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강요당한 시선이 아직도,
상처처럼 흐느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얼마나 몸살을 앓았겠는지
무슨 업처럼 휘갈기고 간 소나기라든가
뜨겁게 마음 불 질렀던 태양이라든가
혹은 바람이나 새들도
한 번씩 건드리고 가다가
그리하여 뱃속에 한 해 동안 품어
생겨난 열매까지 거둬 가버린
비 내리는 어느 날부터 그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그의 존재는 푸르게 남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고
그 자리에서 다시 돋아나기를 기다릴 뿐
여름비 그치고 어둠이 사라진다 해도
없어지고 사라지는 날들 속에
우리 또 남을 것인데
지금 막 꽃 피고 열매 맺어
존재하는 것들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인지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2012.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