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이야기 1.] 주말농장 감자밭에서
[감자이야기 1.] 주말농장 감자밭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심어놓고는 지난봄에는 병원에 입원하는 탓에 내 손맛으로 물맛을 못 느꼈을 감자와 고구마들을 최근에 다리를 다치기 전에는 미안함 마음에 자주 찾아가서 이랑 둔덕 위에 늙은 호박 모종도 심어주고, 약콩도 심어주어서 이웃을 만들어 주었었다. 주인의 부실함이라는 악조건에서도 옹기종기 가뭄도 이겨내고 이 장마빗 속에서도 견디며 잘 자라주고 있었다.
오늘 잠시 수업이 빈틈을 이용해 밥 먹으러 집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학원 나오는 길에 옆 학원 이원장님이 농장에 물 주러 가는 길에 우리 농장도 들려주신다는 선한 배려에 그만 홀딱해서 다녀왔다. 다시 발을 다치는 탓에 얼마나 농장에서 애타게 물을 기다렸을 호박과 약콩, 감자와 고구마 걱정을 했던지 아픈 발 보다 그네들을 못 찾아가는 마음이 더 까맣게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오늘 계속 아주 적은 양이지만 한바탕 소나기가 내려주어선지 오늘 들른 농장의 감자밭와 고구마밭의 잎들이 먼지가 씻긴 말간 얼굴로 고개를 슬쩍 숙이고 있었다. 어찌나 뿌듯하고 이쁘던지...
감자밭은 6월에 감자꽃을 모두 따 준 이후 쑥쑥 자라더니 이제는 곧 수확을 해도 될 것 같아서 끄트머리에 있는 녀석의 속을 슬쩍 들춰보았다. 아...작년보다는 실하게 열매를 흙 속에 주렁주렁 제 뿌리에 붙어서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제법 컸다. 걱정했는데 내 걱정의 무게만큼의 크기로 자라있었다. 결국은 캐내어져서 공부방 아이들에게, 가족들에게, 이웃에게 나누어질 것인데...
씨감자를 심고 유난히 가뭄과 물에 약한 뿌리와 잎에 적당하게 습기가 유지되도록 관리하는데 손이 가는 녀석이 감자라는 핑게로 유별스럽게 비칠지 모를 안쓰러움으로 내내 동동거렸다. 지난번 비바람에 휩쓸려 대가 약한 감자들은 누워버렸지만 그 장마비를 단비로 머금고 싱그러움을 되찾아 일어난 모습도 어찌나 대견하던지...
감자이야기는 페북 임학태교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감자그룹에 올렸던 연재물이다. 6회였던 내용을 4회 정도의 분량을 압축해서 내 담벼락의 노트에 올리려고 한다. 감자 수확을 앞두고 감자가 얼마나 우리에게 친숙하고 유익한 식물인지 그리고 얼마나 식량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지 그저 에피소드 중심으로 글을 쓴 것이라 재미로 친구님들이 읽으시면 어떨까 하고...고구마 역시 그 예전에도 구황작물로 길러지게 되었다는 것에서 감자 못지 않는 식량으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감자이야기 1.-
감자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것이어서 아주 오래 전부터 있던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감자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이제 겨우 150년 정도밖에 안 됐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에도 유럽에 감자가 전해진 역사는 불과 4백 년 남짓이고, 본격적으로 보급된 역사는 3백 년이 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아일랜드 같은 나라는 이 감자 덕택에 인구가 몇 배나 늘었다가 마름병이 번지면서 심각한 대기근을 겪게되자 미국으로의 대규모 이민이 시작된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는 감자가 현대사에 끼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유럽의 인구 증가, 해외 이민, 산업혁명, 도시 노동 계급의 증가, 생활 형태의 변화 등등 얼마나 우리 삶의 이모저모에 영향을 끼쳤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감자를 받아들이는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감자는 우유와 유제품으로 칼슘과 비타민A, D만 보충해 준다면 다른 먹거리로는 섭취하지 못하는 영양소를 유럽인들에게 완벽하게 제공해주었을 것이다. 또 괴혈병을 예방해주기도 하는 감자는 과일을 먹기 힘든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감자는 연료나 주방 기구 없이도 저렴하고 신속하게 조리 할 수 있었으므로 특히 하층 계급의 부엌과는 궁합이 잘 맞았을 것이다.
감자는 척박한 토양을 비롯해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잘 자라며 이는 토질이 나쁜 고원지대에 사는 이들에겐 더 할 나위 없는 혜택이 된다. 농부는 감자 씨를 뿌리고 나머지 일은 자연에게 맡겨둔다. 그런데도 수확은 너무 풍성해 주체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러니 감자란 얼마나 밉살맞은 음식인가?
그러나 얄궂게도 감자의 이런 장점들이 오히려 감자의 보급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서구 사회는 지나 4세기 동안 감자를 불신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감자가 주식이 된 이후 서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아일랜드와 영국을 중심으로 알아보자. 특히 아일랜드 감자와 관련된 감자돌림병 이야기는 논술 시간에 학생들에게 정보화 사회의 문제점의 예시로 자주 애용하는 편이다.
(다음 2회에 계속.../ 강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