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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斷想] 詩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사랑했을까...파블로 네루다

변산바람꽃 2014. 4. 8. 19:33





詩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사랑했을까? 

-파블로 네루다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





들어가며... 


오늘도 정오에 학원 광고와 관련된 미팅을 한 후 오후로 넘어가는 햇살을 받으며 공원으로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나갔다. 오늘은 어제와는 다른 코스로 공원 가장자리만 빙둘러서 걸었다. 한 그루씩 걸러서 메타세콰이어와 은행나무 사이로 키 작은 벚나무가 아직 꽃송이를 듬성듬성 떠나보내지 못하고 매달고 있는 발치로 이제 막 꽃봉오리를 펴고 있는 영산홍이 색색이 제 색을 슬쩍 드러내고 있었다. 한낮이고 평일이어선지 나처럼 어슬렁거리며 공원을 산책하는 이들은 모두 노인분들 뿐이었다. 그분들이 보기에 검정 자켓을 입고 목폴라를 입고 혼자 중얼거리며 걷는 내가 이상해 보였을까...스쳐가다가도 뒤돌아서 내 등을 쳐다보는 파장이 전해온다.


한 손에는 1989년에 발행한 초판을 분실해서 다시 구입했던 2005년 초판 11쇄본인 파블로 네루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를 들고 읽다가 중얼거리다가 나무 둥치를 만지다가 걷는 내가 이상해 보이긴 했을 것이다. 이상해 보인다는 것...일반적인 모습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그러고 보면 나는 분명 일반적인 인간들 속에서 비사회적인 인간임이 틀림없다. 내 관점으로 괜찮으면 괜찮은 것이고, 내 관점으로 견딜 수 없으면 누가 뭐래도 그건 나에게 충돌이고 갈등인 상황이 되고 마니까...일반화되지 못하는 나...분명 이상한 인간일 수밖에...스스로 비사회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이상할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면 그건 또 이성적인 것일까...


하여튼 오늘 나는, 새벽에 깨어서 부터 내내 어젯밤 읽다가 만 네루다의 시가 입가에서 떠나지 않아서 매달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아..빈약하고 초라해지도록 이 자본의 시장에서 살아남겠다고 지식을 팔아서 돈의 획득과의 그로 인한 갈등으로 날마다 살아내느라 내 양심과 의지는 너덜너덜해졌다. 그나마 한때 세상 저 끝까지 달릴 줄 알았던 내 이상은 詩를 쓴다는 행위에 매달려 위안이나 받고 있으니 어찌 허접하지 않은가...그런 내가 청년시절부터 지금까지 간간히 손에 들고 가슴을 한 순간이나마 열고 들여다 보는 시와 그 시로 세상을 밝혔던 이를 여직 품고 있으니 '파블로 네루다' 이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절망의 노래 /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1904 - 1973)


너의 추억은 내가 자리하고 있는 밤에서 솟아오른다.

강물은 그 끝없는 탄식을 바다에 묶고 있다.

동틀 녘의 부두처럼 버려진 사내.

떠나야 할 시간이다, 오 버림받은 이여!

내 심장 위로 차가운 꽃비가 내린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 조난자들의 흉포한 동굴.

네 위로 전쟁과 날개가 쌓여 갔다.

노래하는 새들은 네게서 날개를 거두었다.


마치 머나먼 무엇처럼 너는 그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바다처럼, 시간처럼,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침략과 입맞춤의 즐거운 시간이었다.

등대처럼 타오르던 혼수상태의 시간.


항해사의 조바심, 눈 먼 잠수부의 분노,

사랑의 혼미한 도취,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희미한 안개의 유년 속에 날개 달고 상처 입은 나의 영혼.

길 잃은 탐험가,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너는 고통에 동여매인 채, 욕망에 붙들려 있었지.

슬픔은 너를 쓰러뜨렸다,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나는 그림자 드리운 성벽을 뒤로 하고,


욕망과 행위의 피안을 걸었다.


오 살이여, 나의 살결이여, 내가 사랑했고 나를 버린 여인이여,

이 음습한 시간 속에서 나는 너를 추억하며 노래한다.

하나의 술잔처럼 너는 한없는 애정으로 머물렀고,

또 어떤 술잔처럼 끝없는 망각이 너를 산산이 부숴 버렸다.


그것은 검은 빛, 섬들의 검은 고독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사랑하는 여인아, 네 품이 나를 반겼다.

그것은 갈증이었고 허기짐이었다, 그리고 넌 과일이었다.

그것은 비탄이었고 폐허였다, 그리고 넌 기적이었다.


아 여인아, 네 영혼의 대지 안에, 네 품의 십자가 속에

어떻게 네가 나를 품을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너를 향한 나의 욕망은 참으로 어마어마하면서도 그토록 짧은 것,

가장 엉망진창 취해 있는 것, 그토록 위험하고도 목마른 것이었다.


입맞춤의 묘지여, 아직도 너의 무덤들에는 불이 남아 있어,

새들의 부리에 쪼인 포도송이들이 이적지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오 깨물린 입, 오 입맞추며 엉켜 있는 팔다리,

오 허기진 이빨들, 오 비비 꼬여 있는 육체들.


우리가 맺어졌고, 우리 함께 절망한

희망과 발버둥의 미친 듯한 교접.

그리고 물과 밀가루 같은 사소한 애정.

그리고 입술에서 방금 떨어져 나온 그 단어.


그것이 나의 운명이었고 그 안에서 나의 갈망이 항해하였으며,

그 속으로 나의 갈망은 가라앉았다.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여,

네 위로 모든 것이 추락하고 있었다.

네가 말로 다하지 못했던 고통이며,

너를 질식시키는 데 실패한 파도들이.


뱃머리에 선 뱃사람의 다리처럼 이리로 저리로

너는 불꽃을 일으키는가 하면 노래도 하였다.

노래 속에서 너는 꽃도 피워 내고, 시냇물에서는 부서지기도 했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여, 활짝 열린 고통스러운 깊은 연못이여.


눈 먼 창백한 잠수부, 기꺽인 戰士,

길 잃은 탐험가,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떠나야 할 시간이다, 밤의 일정표가 꽉 찬

단단하고도 냉랭한 시간이다.


바다의 소란스러운 허리띠는 해변을 휘어감고 있다.

차가운 별들이 나타나고, 검은 새들이 날아간다.

동틀 녘의 부두처럼 버려진 사내.

떨리는 그림자만이 내 손아귀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아 모든 것의 피안으로! 아아 모든 것의 피안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오 버림받은 이여!


지금도 암송하면 가슴에 절망과 동시에 열망을 다시 지피게 하는 이 한 편의 시가 지닌 지속적인 정신적 파장의 일굼은 얼마나 경이로운가...아, 한 세대를 건너기 전에 내 생전에 파블로 네루다를 알게 한 신에게 감사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내게 있어서 '시인'으로 뿐만 아니라 '칠레'와 '빅토르 하라', 그리고 '살바도르 아옌데'와 같은 라틴아메리카의 어두운 현대사와 같은 연결고리로 자신과 자신의 시와 일치된 삶을 살아낸 경이적인 인물로 언제나 기억되는 이다. 운동과 운동가를 동시에 꿈꾸고, 혁명과 혁명가를 동시에 꿈꾸었던 시절...인간의 가슴과 정서로 자기 혁명을 타자화하여 실현하고자 하고 그 가운데에서 죽어간 파블로 네루다...


1973년 9월 11일,  네루다 등의 지지로 당선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선거로 선출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칠레 군부와 경찰의 쿠데타로 무너졌다. 아옌데는 쿠데타군에 점령당하지 않은 국영방송 라디오와 전화를 연결, 마지막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이것이 내가 국민 여러분에게 연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입니다. ……나는 사임하지 않겠습니다. (……) 나는 국민의 충성에 대하여 내 목숨으로 보답하려고 합니다. (……) 나는 여러분께 단언합니다. 우리가 수천 수만 명의 칠레인들의 양심 속에 뿌린 씨앗들은 결코 완전히 뿌리뽑힐 수 없을 것입니다. (……) 어떤 범죄행위나 강권도 사회적인 변화와 진보를 가로막을 정도로 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역사는 우리의 편입니다. 역사란 민중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직후 아옌데는 피노체트의 망명 제의를 일축하고 두 딸을 포함한 여성들을 궁밖으로 내보냈다. 정오가 되자, 쿠데타군의 공군 전폭기에서 대통령궁으로 폭탄이 투하되었고 탱크를 앞세운 지상군이 진격하였다. 아옌데는 최후의 순간까지 기관단총을 들고 싸우다 죽었다. (이 쿠데타를 그린 극영화가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1976, It Is Raining on Santiago / Il Pleut Sur Santiago>이다)


이후 쿠데타군에 의해 단 일 주일 동안 무려 3만여 명이 죽었다. 그 3만 속에는 칠레의 전설적 민요가수이자 민중 문화운동가 '빅토르 하라'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군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 끝에 기관총으로 사살 당했다. 기타를 만지던 손가락이 짓뭉개지고 두 손목까지 부러진 그의 시체는 문화운동과 민중운동의 기수였던 그의 노래에 대한 군부의 증오를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9월 23일, 산티아고에서 칠레 민중의 희망이었다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살고 있던 발파라이소와 산티아고의 집이 샅샅이 파헤쳐지고,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세계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남부 국경지방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서,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를 출간했을 때, 네루다는 열아홉 살이었다. 아, 열아홉의 나이...파블로 네루다의 이 열아홉 나이와 같은 시기에 나는 성인 문단에 등단했었는데 그 시기 나에게 문학 특히 시에 대한 불을 지펴준 불쏘시지 역할을 시간과 공간을 너머서 나에게 주었던 파블로 네루다가 없었다면 어쩌면 내 문학적 출발은 더 늦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스물네 살에 극동 지역의 영사로 활동(남미에서는 젊은 시인들에게 영사 자리를 줌으로써 그들을 격려하는 전통이 있다.)했고, 마흔 살에 광산노동자의 요청으로 상원의원이 되었다. 우익 독재자의 집권으로 비밀경찰에 쫓겨 지하로 숨었을 때 네루다를 구해 준 이는 광부와 노동자들이었다.


그의 장례식은 쿠데타 이후 최초의 군중 집회가 되었다. 누군가 앞장서 <인터내셔널>가를 불렀고, 처음의 작은 합창은 커다란 메아리가 되어서 울려 퍼졌다고 전한다. 그는 민요가수 빅토르 하라와 함께 민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시인이다. 칠레의 상인들은 저잣거리에서 그의 시를 줄줄 외운다고 한다. 지금도...


"서구의 언어로 씌어진 가장 위대한 초현실주의 시"라는 평가를 받은 '지상에서 살기' 로 남미의 현실과 민중의 꿈을 노래한 업적을 인정받아 1971년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다. 이러한 문학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적 지향은 분명하다. 그는 로버트 블라이와의 대담에서 "정치적으로 칠레의 모든 작가들은 좌익"이며, "내가 보는 가난, 나는 그걸 외면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또 어느 단편집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내 나날의 삶 속에서, 나는 평온한 사람이었고, 법률과 지도자들과 제도(관습)의 적이었다. 나는 중산층이 싫었고, 예술가든 범죄자들이든지 간에 불안정하고 불만에 찬 사람들의 삶을 좋아했다."


이러한 그의 지향이 필경은 '아메리카여, 나는 희망 없이 네 이름을 부를 수 없다.' 같은 시를 쓰게 했으리라.


아메리카여, 나는 희망 없이 네 이름을 부를 수 없다.

내가 가슴 앞에 칼을 쥐고 있을 때,

내가 영혼 속에 불완전한 집을 지니고 살 때,

그대의 새로운 날들 중 어떤 날이

창문으로 들어와 나를 관통할 때,

나는 나를 낳은 빛 속에 있고 또 그 속에 서 있으며,

나를 이렇게 만든 어둠 속에서 나는 살고,

그대의 긴요한 해돋이 속에서 자고 깬다:

포도처럼 순하게, 또 지독하게

설탕과 매의 운반자,

그대의 종(種)의 정액에 젖어,

그대가 물려주는 피로 양육되어...


"이미지들의 강의 범람"(로버트 블라이)이라는 시를 쓰고 초현실주의 시인으로 평가 받기는 하지만, 그는 공소한 관념과 허무적 이론이 아니라 조국과 삶에 대한 적극적 실천을 잊지 않았다. 그는 공허한 관념의 표지로서 '책'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썼던 것이다.


내가 책을 덮을 때

나는 삶을 연다.

(……)

나는 삶 자체에서

삶을 배웠고,

단 한 번의 키스에서 사랑을 배웠으며

사람들과 함께 싸우고

그들의 말을 내 노래 속에서 말하며

그들과 더불어 산 거 말고는

누구한테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었다. <시 '책에 부치는 노래Ⅰ' 중에서>


칠레는 피노체트의 17년 철권통치를 끝내고 1990년 민정에 복귀했다. 그러나 학살자 피노체트는 그 후로도 몇해나 더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있었다. 그는 아옌데 정부의 경호원 살해사건으로 면책 특권이 박탈되었고, 스위스 연방 법무부가 그의 은행 계좌를 조사하기 위한 칠레 정부의 사법 공조 요구를 수용했다고 한다. "역사는 우리 편"이 되기 위해선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했던 덕을 피노체트는 본 것일까?


기나긴 군부독재와 피노체트, 그리고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알려진 고단한 나라 칠레. 하지만 나는 네루다라는, 민중이 사랑한 위대한 시인을 가진 나라, 칠레를 폄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박정희의 18년 독재도 만만치 않은 민중의 피를 역사적 대가로 치루어야 했건만, 피노체트가 가장 존경한 인물이 박정희였다는 만화 같은 이야기는 독재와 억압의 시대의 버려야 할 유산이어야 했는데...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세월이 헛되지 않아서 피노체트는 2006년 12월 10일 사망했다. 말년에 생활고에 시달리다 훈장 따위를 팔아서 연명해야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걸 믿어도 될지 모르겠다. 피노체트는 가고 역사속에서 잊혀질 지 모르겠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그 긴 민중이 피로 세운 역사의 지난한 길 끝에 무엇을 만났는가...비명횡사한 독재자의 망령과 아우라에 편승하여 급기야는 권력의 최정점에 오른 그의 딸은 <인혁당 사건 무죄 판결>과 <긴급조치 위반사건의 선고 판사 실명 공개>가 “나에 대한 정치공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망령을 살려내고 있는 새마을운동 노래가 어느 틈에 흘러나오고 있다. 아, 어떤 나라에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시간은 정지하거나 퇴행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내 보잘것없는 시가 민중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한다." (자서전 본문 중에서)


'스무 편의 사랑노래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를 통해 지금도 전 세계 젊은이들의 정신이 되고 있는 시인.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칠십 평생 현실을 비판하고 사랑하고 투쟁했던 시인. 그래서 행복했던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


그가 쓴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 에는 여자를 사랑하고, 민중과 평화, 평등 그 중에서도 詩를 가장 사랑했던 그의 일생과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상을 뜨기 2년 전부터 집필하다가 그가 죽은 뒤 유족이 발간한 책이다.


자서전은 칠레 자연과 자란 유년기부터 시작해 전반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 중반 이후에는 그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칠순 노인이 삶을 회고하며 무용담을 들려주듯 때로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랑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네루다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피델 카스트로, 피카소, 체 게바라, 아옌데 등 남미 현대사에서 좌파적 진보 성향을 가진 혹은 민중혁명을 꿈꾸었던 굵직한 역사적 인물과 만나는 장이 되고 있다.


네루다에게 詩는 삶의 전부였다. 또한 세상과 소통하는 원동력이었다. “리얼리스트가 죽은 시인은 죽은 시인,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라고 했던 네루다의 자서전을 읽다 보면 과연 시란 무엇인가, 시를 넘어 소설, 그림 등 문학예술이 주는 시대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생을 마감하기 일주일 전, 네루다의 마지막 회고는 아옌데가 피노체트 군사정권에 정복당한 직후까지 이어진다. 자서전은 분노와 격정에 휩싸인 감정을 억누르고 “저들은 또다시 치레를 배신했다”는 문구로 마감한다. 나는 그의 자서전을 읽고 나서, 감정의 정리 없이 네루다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음에도 책을 덮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곤 했다. ‘가난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린 발파라이소’라는 그의 표현처럼 그의 회고는 폭포수가 쏟아지듯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시 / 파블로 네루다/정현종 옮김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어.

내 영혼 속에서 뭔가 두드렸어,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난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遊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어둠,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어둠,

소용돌이치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아, 詩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사랑했을까...파블로 네루다...시로 자기 세상을 아낌없이 살아낸 영혼의 절대성과 진정성을 남기고 간 시인...그의 영혼은 지금도 노래하는 시인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길 원할까...


스무편의 사랑의 시 / 파블로 네루다 / 김남주 옮김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써야지

이를테면 이렇게 써야지 '밤은 부서지고

저 멀리서 별들은 파랗게 떨고 있다'고

밤바람은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노래하고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써야지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가끔 나를 사랑했다

오늘 밤과 같은 밤에 나는 그녀를 가슴에 품고

가없는 하늘 아래서 수없이 그녀와 입을 맞추곤 했지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나 역시 그녀를 사랑했지

깊고 커다란 그녀의 눈을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지

정말이지 나는 오늘 밤 가장 슬픈 시를 써야겠다

그녀는 내 곁을 떠났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를 잃었다고 느끼면서

거대한 밤에 귀를 대고 있노라면 그녀가 없는 이 밤은 더욱 거대하다

그리고 목장에 이슬이 내리듯 내 영혼에 시가 내린다

내 사랑이 그녀를 붙들지 못했대서 무슨 대수랴

밤은 부서지고 그녀는 내 곁에 없다

이게 전부다 먼 데서 누가 노래하고 있다 아주 먼 데서

그녀를 잃은 내 영원은 공허하다

그녀 곁으로 가기라도 하려는 듯 나의눈길은 그녀를 찾고 있다

내 마음도 그녀를 찾고 그러나 그녀는 내 곁에 없다

그때와 똑같은 밤이 그때와 똑같은 나무를 하얗게 드러내는데

우리는 우리 두 사람은 그때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

단연코 나는 지금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 그러나 나는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던가

나의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닿기 위해 바람 속을 헤매고 있다

딴 남자의 딴남자의 것이 되어 있겠지 지난 날 나의 키스도

그 목소리도 해맑은 그 육체도 무한한 그 눈도

단연코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지도 몰라

사랑은 이다지도 짧고 망각은 이다지도 긴 것인가

오늘 밤과 같은 밤에 나는 그녀를 가슴에 안고는 했다

그러나 그녀를 잃은 나의 영혼은 공허하다

그녀가 내게 남긴 이 아픔이 부디 마지막 아픔이 되기를

그녀에게 쓰고 있는 이 시가 부디 최후의 시가 되기를..

 - 김남주 번역시집 '은박지에 새긴 사랑' 에서 발췌 (푸른숲).


마치며...

이 긴 글을 읽어주었을 파블로 네루다를 기억하는 페북친구님들...파블로 네루다의 시는 번역시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당신에게 당신의 이성에, 당신의 정신이 품어내고 있는 감성에 제대로 찾아오지 않았는지?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나를 불러내었던 것처럼, 나의 너덜거리는 의식을 다시 건드려 깨우는 것처럼 당신에게도 그리 다가왔기를...




+참고+

끝나지 않은 노래/ 조안 하라/ 한길사 오늘의 사상신서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 파블로 네루다 / 정현종 옮김 / 민음사

김남주 번역시집 『은박지에 새긴 사랑』(푸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