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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집, 내가 누추하여 / 강미(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 2017. 2. 19. 22:11






, 내가 누추하여


 

            -강미(변산바람꽃)-

 

 

낡아 쓰러져 가는 집

편히 쉴 방 하나 드릴 곳 없이

내가 누추하여

목숨 같은 사람조차 맞아들일 수가 없구나.

엊그제 지붕 얹고

마침내 창문 매달았던 새집에서

아늑하게 지냈던 그 몇몇 계절

이젠

빛바랜 풍경 사진 몇 장으로 뒹굴고 있네.

오직 한 가지밖에

가진 것 없이 내가 누추하나

세상 바라보는 것이

오히려 안락의자처럼 편안하네.

내가 비워드릴 것이라고는

벌레 먹고 먼지 쌓인 나의 마음

한 번도 불 지펴 본 적 없어서

한기가 두껍게 내려앉아 있을 것이네.

그래도 지금처럼 비가 내리는 밤에

나를 마다않고 누군가 찾아온다면

내 집을 불사르겠네.

누추한 나를 뜨겁게 태워버리겠네.

한 점 남기지 않겠네.

재가 된 내 몸에 방 하나 들이고

창문 하나 열고

별로 지은 이불 덮으며 목숨 나누면서 살겠네.

지나가는 어떤 이가 누추하다고 하면

참으로 마음 고요하다고 하겠네.

내가 누추하여

그 무엇보다 귀중한 것을 가졌다고 하겠네.


(2017.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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