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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역사에서 듀크 엘링턴이 고전주의를 완성한 바흐에 비견되는 이름이라면 찰리 파커는 영감에 충만해 일순간 새로운 것으로의 도약을 단행한 오손 웰즈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파커가 자신의 새로운 생각을 완성된 실체로 구현해 냄으로써 비밥혁명을 단행한 1944년은 재즈의 역사에서 기억되어야 하는 순간이다. 이전까지 답습되던 주제 멜로디의 변주로부터 탈피하여 코드의 도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즉흥연주는 마치 새처럼 비상하고, 날카롭고 견고한 음색은 불안하지만
새로운 의지로 들끓는 젊음의 소리로 충만하다. 이 역사적 순간의 결정체로서 1944년에서 48년까지 이루어진 <사보이 레코딩>과 <다이얼 세션 전집>!!!
1930년대 뉴욕에서 활동한 영국인 레이 노블은 그의 38년 히트곡 <체로키>를 크게 히트 시켰다. 레이노블 오케스트라, 찰리 바넷 오케스트라 등이 테마송으로 썼지만 사실 이 곡이 모든 재즈맨에게 보편적인 스탠다드로 자리잡은 것은 몇년 후, 비밥시대가 도래하고 나서이다. 사실 레이 노블 오케스트라의 38년 녹음(브룬스윅)을 들어보면 이 곡이 스윙시대의 다른 작품들을 제치고 모던재즈의 스탠다드 넘버가 된 것은 의외이다. 왜냐하면 듀크 엘링턴의 이나 베니 굿맨의 과는 달리 이 작품의 38년 녹음은 오늘날 연주되는 일반적인 템포, 화성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노블악단의 38년 <체로키>는 깔끔한 앙상블과 넉넉한 템포로 연주되는 구태여 비교하자면 같은 해 발표된 아티 쇼 오케스트라의 와 유사한 느낌의 곡이었다. 그러나 <체로키>는 50년대 이래 비바퍼의 에튀드가 되었다. 버드 파웰, 탤 팔로우, 클리포드 브라운, 사라 본, 조 패스 등 이들 연주는 공통적으로 숨가쁘게 돌아가는 템포 속에서 자신의 즉흥연주를 맘껏 뽐내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는 레이 노블 오케스트라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당시 19세였던 찰리 파커도 고향 캔사스를 떠나 뉴욕을 배회하며 매일밤 <체로키>를 연주했다. "나는 계속 나의 연주를 묶어두고 있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게 가끔 그것을 벗어난 연주가 들여왔다. 하지만 그것을 연주할 순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체로키>를 연주하다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코드의 높은음들을 멜로디 라인으로 사용하고 여기에 맞는 코드진행으로 반주를 해주면 내게 들려 오던 새로운 음악을 연주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즉 파커는 원래 멜로디에 온건한 4분음표들을 무시하고 그 멜로디의 코드를 분해해서 8분음표 중심의 보다 활기 넘치는 새로운 멜로디라인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체로키>에는 코드에 의한 접근을 시도했을 때 급격한 조바꿈이 보다 선명해지는 새로운 측면이 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파커의 <체로키> 해석이 후대에 미친 영향을 단언하는 것은 논리상의 비약일 수 있다. 그러나 파웰, 탤 팔로우, 클리포드 브라운, 조 패스의 연주가 모두 파커가 말한 코드에 의한 새로운 멜로디 라인의 창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믄 점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파커 이후 이런 방식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 코드중심적인 접근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비밥의 기본적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체로키>에 대한 이같은 해석은 바로 비밥의 전주곡이었으니까.
45년 사보이에서 발표한 <코코>를 들어보자. 실제 레이 노블의 체로키 코드진행을 그대로 차용했다. 물론 표절은 아니다. <코코>에는 체로키와 유사한 멜로디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남아있는 것은 체로키의 코드진행뿐이며 그 안에서 파커는 마치 레이 노블을 조롱하듯 새로운 즉흥 멜로디라인을 만든다. 마치 많은 후배들이 녹음한 체로키의 중간부 즉흥연주가 그러하듯. 이 즉흥연주를 사이에 두고 앞뒤로 그 유명한 체로키의 주제를 의도적으로 연주하지 않은 것은 로열티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파커 자신의 음악적 유희였을 것이다. 그는 모두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을 코드를 통해 완전히 해체시킨뒤 이를 자신만의 독특한 즉흥성을 통해 새롭게 재구성함으로써 아무도 알아 볼 수없는, 설사 알아본다한들 어쩔 도리 없는 작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 냈고 자신만의 짓궂은 음악적 실험에 희열을 느꼈다.
멜로디가 아닌 '코드의 도용' 이라는 전략은 조지 거쉰의 작품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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