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의 재즈 디바, 엘라 핏제럴드(Ella Fitzgerald 1917년 4월 25-1996년 6월 15일 )
사라 본(Sarah Vaughan)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와 함께 최고의 여성 재즈 가수로 꼽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엘라 핏제럴드는 1952년부터 1971년까지 무려 19년 간을「다운 비트」지 비평가들이 뽑는 리스틱 폴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이는 재즈사를 통해 찬연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그리고 그 이후는 이 기록이 깨지지 않았다. 위대한 엘라 핏제럴드만이 세운 금자탑이다.
재즈사를 통해서 일반적으로는 인스트루멘털리스트들의 세계를 조명한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통념적인 얘기일 뿐이다. 남성 보컬에 루이 암스트롱이 단초를 마련하였다면, 소개하는 엘라 핏제럴드(Ella Fitzgerald)는 여성 보컬의 대표로서 전형을 제시한 위대한 아티스트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그래서 보컬이 재즈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엘라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흔히 그녀를 포함하여 빌리 헐리데이, 사라 본을 재즈 디바 3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녀의 보컬의 세계가 펼쳐지지 않았다면 과연 여성 보컬의 현재가 존재했을까 하는 마음이 앞서는 점은 그녀의 존재가 너무나 깊게 각인되어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하이 스피디한 스캣 보컬로 투어링 콘서트를 융단 폭격하기도
엘라 핏제럴드는 1918년 4월 25일 버지니아주 뉴포트 뉴즈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1934년 할렘에 있는 아폴로 극장에서 개최한 아마추어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하며 타이니 브래드 쇼 악단에 참가한다.이때가 그녀 나이 열여섯이었다전도 유망한 보컬리스트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아 베니 카터 등 당대를 풍미하던 뮤지션들의 추천으로 칙 웨브 악단의 전속 가수가 되어, 1938년에 레코딩한「어 티스켓 어 타스켓」이 데카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어 이 악단이 창단된 이래 최고의 히트를 하는 기록을 남기며 그녀는 성공의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이후 악단의 톱 스타로서 출현하며, 1939년 칙 웨브가 사망한 후 2년 간은 밴드 리더로서 자리를 계승한다. 정말 대단한 사건이었다. 솔로로 전향한 후는 양날개를 달고 인기 상승의 전도에 결코 장애가 없었다. 1948년 이후는 명프로듀서 노먼 그랜츠가 이끄는 jATP(jazz At The Philharmonic) 콘서트에 초청되어 그녀의 하이 스피디한 스캣 보컬로 투어링 콘서트를 융단 폭격하며 실력을 과시, 입지를 확립하는 전기를 맞이하며 명실 공히 넘버 원의 재즈 보컬리스트로서 우뚝 서게 되었다. 1952년부터 1971년까지 무려 19년 간을 「다운 비트」지 비평가들이 뽑는 크리스틱 폴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이는 재즈사를 통해 찬연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이후는 이 기록이 깨지지 않았다. 위대한 엘라 핏제럴드만이 세운 금자탑이다.
엄청난 리듬 감각을 익혔던 레이 브라운과의 결혼 생활
1950년대 후반부터는 노먼 그랜츠의 아이디어로, 죠지 거쉬인, 해럴드 앨런, 쟈니 머서, 제롬 컨, 코울 포터, 어빙 벌링, 듀크 엘링턴이라는 대작곡가들의 송북 시리즈를 차례로 만들어 크게 호평받으며 아티스트로의 확고한 위치를 재확인하는 일대 전기를 맞는다. 진정 위대한 일련의 작업이었다. 또 그녀는「엘라 인 베를린」과「앳 디 오페라 하우스」라는 타이틀의 라이브 레코딩의 명반을 출시하여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로써 버브 레코드사 간판 스타가 되기도 했다. 1960년 이후도 월드 투어링 콘서트를 행하며 성공을 거두고, 다양한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재즈 보컬의 일인자로서의 세를 과시하며 정력적인 활동을 해 왔으나, 1972년 녹내장이 생겨 일시 휴양하면서 재기를 준비하게 된다. 이후 컴백 무대를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로 옮겨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때 레코딩한 앨범이「엘라 앳 뉴포트」로서 컬럼비아를 통해 출시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옛 친구 노먼 그랜츠가 신설한 파블로 레이블로 이적하여,「엘라 앤 오스카」와「엘라 앤 베이시 DOT 몽트뢰 79」라는 앨범을 만들면서 노먼 그랜츠 페밀리로서의 리유니온이라는 일관된 컨셉을 유지하며 근년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발표했으며, 1980년대 이후에도 제1선에서 활약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제대로 연주가 되지 않았다.
1986년에는 심장 장애를 일으킨 후 사실 은퇴 상태로 들어갔지만 복귀의 노력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심장의 바이패스 수술 후에는 신작을 발표하지 못했다. 결국 심장병이 발병하기 전에 레코딩한「이지 리빙」이 파블로를 통해 발매된 앨범이고 이후에 나온 대개의 앨범들은 컴필레이션 에디션으로 원작에 충실한 귀중한 음반이 많이 나왔다. 1948년 살아 있는 베이스의 전설 레이 브라운과 결혼하여 불안정한 생활을 하였으나 그들은 음악적으로는 상당히 풍부한 교호가 있었다고 전언한 바 있다. 두 번째 남편이기도 한 레이 브라운과의 4년 간 결혼 생활은 젊은 브라운이 음악적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시절이었고, 엘라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리듬 감각을 익힐 수 있는 기회였다. 피아노 행크 존즈, 드럼에 로이 헤인즈가 참가하여 재즈 보컬의 진면목을 서포팅함으로써 이루어진 전설이다. 1996년 6월 15일 ‘The First Lady of Song’ 엘라 핏제럴드는 비버리 힐스의 자택에서 영면에 들었다
엘라 핏제럴드의 음반들
Ella Fitzgerald Bluella
엘라 핏제럴드의 연주 앨범은 매우 많다. 물론 스튜디오 레코딩과 라이브 레코딩으로 구분하지만 이 앨범은 방법에 구애 없이 엘라의 1970년대의 왕성한 연주 활동을 중심으로 컴필레이션한 음반으로, 파블로 레코드의 에드 미셸이 심혈을 기울인 블루스 곡들의 보고다. 열한 곡이 실려 있으나 <파인 앤 멜로우>와 <세인트 루이스 블루스>는 뮤지션을 달리 하고 있어 비교 감상하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 흔히 알고 있는 블루스와 재즈에서 표방하는 블루스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효과적인 앨범이다. 파블로 시절 행한 레코딩의 다양함도 접할 수 있고 1953년부터 1979년까지 엘라의 변해 가는 보컬의 면면을 탐구하는 데 효과적이라 하고 싶다. 특히 <세인트 루이스 블루스>에서 느끼는 피아노 트리오의 반주와 빅 밴드 반주와의 차이점에서 리스너들은 묘한 뉘앙스를 느낄 것이다. 블루스의 매력과 감흥이 엄청나게 다가온다. 결국 엘라의 진면목이리라.
The Complete Ella in Barlin
이 앨범은 1960년 2월 13일 서베를린에 위치한 도이취란트할렌이라는 콘서트 홀에서 행한 엘라의 라이브 앨범이다. 1957년 시카고 오페라 하우스와 LA 슈라인 오디토리움에서 연주한 라이브 앨범 이후 3년 만에 나온 귀한 음반이다. 원래 앨범에는 아홉 곡이 실렸지만 CD에는 보너스 트랙이 네 곡이나 포함되어 있어 프로듀서의 배려가 감사할 뿐이다. 전체 열세 곡의 스탠더드를 연주하였는데 노먼 그랜츠의 감독하에 폴 스미스가 피아노를, 기타에 짐 홀, 베이스에 윌프레드 미들브룩스, 드럼에 거스 존슨이 백킹하고 있다. 물론 이들도 jATP의 투어링에 참여한 명장들이다. 그리고 독일 청중들의 환호와 독일 출신 작곡가 쿠르트 바일의 <맥 더 나이프>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작곡가의 곡이 연주될 때 그들의 회한이 각별했을 것이다. 엘라의 단골 메뉴다.
At the Opera House
엘라 핏제럴드의 단골 레퍼터리를 엄선하여 라이브 레코딩한 명작으로, 1957년 10월 7일 시카고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행한 실황이다. 오스카 피터슨, 허브 엘리스, 레이 브라운, 죠 존스라는 백킹에, 절정에 이른 엘라의 보컬은 리스너의 말초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메인스트림의 거장들이 함께 한 명연주들이다. 이 앨범이 LP로 나왔을 때는 아홉 곡이 실려 있었으나, 요즈음 이 음반을 구입하시는 리스너는 LA 슈라인 오디토리움에서 연주한 아홉 곡을 보너스로 들을 수 있어 크게 이익이 된다. 로이 엘드리지, j.j 존슨, 소니 스팃, 스탠 겟츠, 콜맨 호킨스, 일리노이 쟈케, 플립 필립스, 레스터 영 등 전설의 프레이어들이 엘라의 명성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뭐랄까, 노먼 그랜츠의 jATP 연주를 방불케 하는 실로 감동과 흥분의 연속으로 라이브 연주의 색다른 감흥이 여기에 있다.
Like Someone In Love
1955년에 버브 레코드로 이적하여 본문에 전술한 일련의 대작곡가들의 송북 시리즈를 만들어 새로운 경지를 제시한 엘라의 1957년 10월 LA에서 녹음한 이 앨범은 이모셔널한 발라드 창법의 매력 속으로 함몰시키는 우수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프랭크 데블 오케스트라 반주로 발라드 명곡들을 섬세한 어프로치로 연주한 엘라의 감성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 음반은 들어서 즐겁고, 생각하면 은은한 아름다움이 스미는 재킷 그림에서 엘라의 젊은 시절 아름다운 모습이 실루엣으로 다가온다. 스탠 겟츠의 테너 색소폰이 쏟아내는 우수 어린 사운드는 엘라의 노래를 더욱 정감 어린 서정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로맨틱한 러브 발라드에 섬세한 감정을 이입하여 때로는 농염하기까지 한 엘라의 매력이 가득하다. 실로 소피스티케이션이라는 말이 이 앨범의 진실이다.
Ella & LouisElla Fitzgerald & Louis Armstrone
한마디로 보컬이 갖는 즐거움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는 앨범으로 재즈사에 남아 있는 최고의 보컬 듀엣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6년에 발표한 이 앨범이 크게 호평을 받아 1957년에는「엘라 앤 루이 어게인」이 레코딩되었다. 오스카 피터슨의 피아노에 레이 브라운의 베이스, 버디 리치의 드러밍, 허브 엘리스의 기타로 구성된 백 밴드의 면면이 보컬의 품위를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 깊이 있는 스탠더드 곡으로 무엇 하나 트집을 잡을 수 없다. 엘라의 보컬은 차치하고 허스키의 암스트롱 보이스와 어우러지는 매력은 재즈 밖의 음악 애호가도 절찬할,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흐드러짐에 자못 옷깃을 여미게 한다. 서로의 인간성을 보다듬고 노래로써 표현할 수 있는 극상의 마음을 즐거움으로 전해준다. 간간이 들리는 트럼펫은 오묘한 뉘앙스를 전하고 있다.
 <이선우선생님 홈피에서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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