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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최윤희씨는 결코 위선자가 아니다

변산바람꽃 2010. 10. 10. 22:20

새벽 4시, 집사람의 핸드폰이 울려댄다.

처남댁 전화다.
지금 빨리 오세요! 하고 끊는다.
그러나 그 간단한 말만으로 충분하다.
며칠째 5분 대기조기 때문이다.

대충 옷만 걸치고 인천 송도쪽에 있는 요양원으로 차를 몰고 병원에 도착해  에레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처남이 누워있는 병원 침대에 도착했다.
눈을 감고 그륵 그륵 소리를 내며 산소호흡기에 기대 가뿐 숨을 몰아쉬는 처남.
산소 분포량이 80으로 올랐다가 40으로 내려갔다가 0으로 바뀌었다가 조금있으니 60으로 멈춰섰다.

며칠째 이렇게 반복이다.
처남은 말기암 환자로 수술했으나 재발하여 다시 간이식 수술도 했지만 또다시 재발하여 몇달 강원도 영월에서 요양도하고 고향집에 내려가 장모님과 함께 보내다가 위급한 상황에 이르러 수술했던 병원에 입원했으나 의사가 얼마남지않았다며 요양원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권유해서 옮긴지 일주일 정도 되었다.

한마디로 의사도 포기한 환자고 그렇게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셈이다.
의식이 왔다갔다 하고 의식이 있을 땐 소위 말하는 아편주사를 맞아도 참지못하고 고통스러워 간호사에게 더 세게 놔달라며 간신히 눈짓으로 손가락 짓으로 표현하는 처남.

머리도 다 빠지고 앙상하게 남은 뼈만 남아있는 처남의 몸.
산소호흡기를 심장까지 꼿아놓았는데도 그륵 그륵 소리를내며 가뿐 숨을 몰아쉬며 때론 고통스러운 것인지, 죽을 것을 알고 슬픔에 겨워서 그런 것인지, 연신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다.

그러다가도 가족들이 교대하기위해 "이제 갈께"라는 소리만 들으면 움직이지도 못하던 몸을 입구쪽으로 틀고 뜨지도 못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입구로 나가는 우리를 바라보는 처남.
산소 호흡기를 부착하기 전, 너무 무서우니까 혼자는 두지말라 부탁했었던 말이 생각나 눈물이 난다.
얼마나 죽는다는 것이 무섭고 고통스러우면....

신께 기도한다.
제발 저 영혼을 한시라도 빨리 거두어가달라고....
처남한테 가족들 또한 말한다.
걱정하지말고 이젠 끈을 놓으라고...사랑하는 딸, 우리가 지켜줄테니 걱정말고 떠나라고..사랑하는 남편, 잘 살테니까 걱정말라고...

알아듣는 것인지, 무의식 상태에서도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다.
바라보는 것도 이제 정말 고통스러워 못견딜 참이다.
그러기를 몇일째다.
삶에 대한 회의가 든다, 죽는다는 것이 이처럼 고통스러운 것일까.

작가겸 행복 전도사로 잘 알려진 최윤희씨.
남에게 행복을 전달하던 최윤희씨가 남편과 함께 동반자살했다.
많이 놀랐다.

행복을 전도하던 사람이 가장 불행일 수 있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다니, 그것도 남편과 함께 말이다.
이를 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위선자라는 둥, 속았다는 둥..
과연 속은 것이고 위선자일까?

그렇다면 개그맨이라고 무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항상 개그스러워야 맞나?
항상 웃으면서 신나게 노래하는 가수들은 모두 행복해서 그렇게 무대에서 웃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보일 것이다.

그들은 남을 웃기는 개그맨이고 신나게 노래하는 가수님 것이지 그들이라고 꼭 행복하게 살고 꼭 유쾌해야 된다는 법은 없다.
유서에서 그는 2년 전까지만해도 너무 행복했노라고 했다.

물론 폐질환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긴했을테지만 얼마전 찾아왔다는 심장질환이 오기 전까지만해도 행복을 전도 했던 것처럼 자신 또한 그렇게 긍정적으로 살면서 행복을 느껴보려 애쓰지않았을까?
병 때문에 700가지의 고통이 있었다고했다.

그 고통을 느껴보지않은 사람들은 백분지 일이라도, 아니 천분지 일이라도 그 심정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는 불행을 느끼면서 행복전도를하고 있는 자신을 너무나 자책한 까닭도 이처럼 죽음을 결심한 이유에 포함되지않았을까?
그러나 그렇게 고통을 느끼면서도 남에겐 행복을 전달하려 애쓴 최윤희씨다.

가톨릭 신자로써 최윤희씨의 자살을 미화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자살은 기독교에서 가장 죄짓는 행위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뼈를 깍는 고통속에서 자살을 생각해보지않는 기독교인이 얼마나 될까?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자살할 정도라면 그걸 실행할 때까지 또 얼마만큼의 고통이 있었을까.

그는 행복 전도사인 만큼 더이상 불행하게 살지않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을런지 모른다.
또한 사랑하는 남편이 너무나 외로웠을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 동행했고 저 세상까지 그렇게 했다.
비록 불행한 죽음이었을지언정, 역설적으로 행복한 죽음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불행하게 살지않기 위해서...

처남은 추석을 며칠 앞둔 9월 18일날 세상을 떠났다.
떠날 때의 모습은 너무나 편안해 보였고 심지어는 약간의 웃음까지 띤 행복한 표정이었다.
고통이 멈춰서였을까?
흔히 말하는 좋은 세상으로 갔기 때문일까.

처남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
내성적이었지만 마음 씀씀이가 깊었고 그렇게 너그러웠으며 가족들이 모이는 것을 좋아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처남으로 인해 우리 가족들은 참 행복했었다.
최윤희씨 또한 행복 전도사로써 우울증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이되었으며 불행하게사는 사람들에게 행복할 수 있도록 힘을 주었으며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겐 위로를 해주었다.

그가 죽음을 택했다고해서 최윤희씨로 인해 그렇게 위안을 받고 힘을 얻고 위로를 받았던 사람들이 다시 불행해지진않는다.

그들은 최윤희씨가 행복을 전도할 때 이미 치유되었기 때문이다.
최윤희씨는 병으로 인해 더이상 고통받지않기 위해 불행해지지않기 위해 죽음을 택했다.

백만분의 일일진 모르겠으나 처남으로 인해 최윤희씨가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을만큼의 병으로 인한 고통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았고 그렇게 고통을 느끼며 불행하게 살지않기 위해 죽음을 택한 심정 또한 조금은 이해할 수 있기에 최윤희씨의 죽음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올려보는 것이다.

제발 당신들이 겪어보지않은 고통에 대해서 명복은 빌지못할 망정 비난하지는 말자는 뜻에서 말이다.
처남이나 최윤희씨나 고통없는 곳에서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빌 뿐이다.


 

다음은 최씨가 남긴 유서 전문





■ 최씨의 유서 전문.


 
떠나는 글...
 


저희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여기저기 몸에서 경계경보가 울렸습니다.능력에 비해서 너무 많은 일을 하다보니 밧데리가 방전된 거래요.

 2년 동안 입원 퇴원을 반복하면서 많이 지쳤습니다.그래도 감사하고 희망을 붙잡으려 노력했습니다.그런데 추석 전주 폐에 물이 찼다는 의사의 선고.숨쉬기가 힘들어 응급실에 실렸고 또 한번의 절망적인 선고.그리고 또 다시 이번엔 심장에 이상이 생겼어요.

 더 이상 입원에서 링거 주렁주렁 매달고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혼자 떠나려고 해남 땅끝마을 가서 수면제를 먹었는데남편이 119 신고, 추적해서 찾아왔습니다.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수가 없고 남편은 그런저를 혼자 보낼 수는 없고...그래서 동반 떠남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텔에서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 또 용서를 구합니다.너무 착한 남편,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입니다.

 그동안 저를 신뢰해주고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죄송 또 죄송합니다.그러나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2010.10.7


봉투 뒷면에 쓴 글

 완전 건강한 남편은 저 때문에 동반여행을 떠납니다.평생을 진실했고 준수했고 성실했던 최고의 남편.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

출처 : 안양 언론인회
글쓴이 : 홍이장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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