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범죄’ 물타기 언론, 부끄러운 줄 알라미디어오늘 | 입력 2011.04.25 11:48 [비평] 양비론에 숨은 '권력 해바라기' 언론…'꼼수' 보도, 국민이 속아줄까 [미디어오늘 류정민 기자 ] 강원도지사 선거 '불법 선거운동'과 관련해 한국 언론의 낯 뜨거운 현주소가 드러나고 있다. 언론 본연의 비판정신은 사라진 채 '권력'에 해를 끼칠까 벌벌 떠는 모습이다. 언론은 집권 세력에게 불리한 것을 가리거나 물타기 하고자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 시기가 선거 기간이라면 더욱 엄격하면서 냉정한 비판의 잣대가 요구된다. 국민이 적당히 속아주기를 바라는 보도는 바둑에서 '꼼수'와 같은 행동이다. 정보를 독점하던 시절에는 방송사와 힘 있는 신문사들이 침묵하거나 물타기 하면 사건이 적당히 덮어질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인터넷에 SNS까지 발달한 지금 그런 행동을 하면 '조롱'을 자초할 뿐이다.
선관위에 신고 하지 않은 곳에서 신고하지 않은 이들이 전화홍보를 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현장에는 불법 현장을 증명하는 각종 증거물들이 발견됐다. 최근 치러진 재보선은 물론 총선과 대선에서도 이렇게 적나라한 불법 선거운동 장면이 적발된 예가 있는지 의문이다. 한나라당 쪽에서는 이번 사건과 무관함을 주장하는 해명과 전화홍보요원들은 '자원봉사'를 하던 이들이라는 주장을 이어갔다. 강릉의 주부들이 엄기영 후보를 돕고자 자발적으로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는 얘기인데 이는 이치에도 맞지 않고 증언과도 다르다. 언론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실제로 경향신문은 4월 25일자 2면에 < "자원봉사는 무슨…일당 5만원 벌려고 갔다" > 라는 제목으로 전화홍보원 A씨의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한나라당 쪽 주장이 사실과 다름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대악재'가 아닐 수 없다.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한다면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재선거를 치러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일단 버티기에 나서고, 상대 후보의 의혹을 새롭게 폭로하면서 '양비론'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언론이 엄정한 잣대로 시시비비를 가려준다면 이런 식의 행동은 비판만 증폭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이 명백한 '선거범죄'를 적당히 눈감아 주면서 '양비론'에 무게를 실어준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A도 잘못했고, B도 잘못했다" "선거가 혼탁해졌다" 등으로 적당히 얼버무리면 실제 큰 잘못을 저지른 쪽도 빠져나갈 구멍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민주당이 강원도지사 선거가 1% 초박빙이라는 내용의 문자를 발송했다는 주장을 한나라당쪽에서 제기하자 일부 언론은 '불법 콜센터 적발'과 동등한 비중으로 처리했다. 게다가 불법 콜센터 사건에 대해 제대로 전달하지도 않은 채 "선거가 혼탁해지고 있다"고 뭉뚱그려 보도하기도 한다. 불법 콜센터 현장이 경찰에 의해 적발된 사건과 여러 선거캠프에서 주장하는 각종 의혹이 동등한 비중의 사안으로 처리될 수 없다는 것은 언론이 더 잘 안다. 궁지에 몰린 선거캠프 쪽에서 해법을 찾고자 물타기를 시도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론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이에 호응하는 모습이다. 동아일보의 4월 25일자 사설을 보자. < 재보선 불법 탈법을 뿌리 뽑으라 > 는 제목의 사설이다.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지역에서는 펜션을 빌려 휴대전화로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 지지운동을 하던 30여 명의 전화홍보원이 민주당의 신고로 적발됐다. 경찰은 2명에 대해 선거법 위반(불법 선거운동사무소 설치 및 일당 식사 제공)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엄 후보 측은 자원봉사자들이 한 일로 엄 후보와는 무관하다고 하지만 진위는 다 밝혀지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최문순 후보 측도 허위사실 문자 유포와 비방 유인물 살포, 민주당 소속 기초의원의 부재자 대리신고 등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경기 성남시 분당을(乙)에서는 민주당 김진표 의원 등이 식당에서 유권자 13명과 대화를 나눈 뒤 식비를 대신 내줬다는 제보가 들어와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나라당은 밝혔다." "경남 김해을(乙)에서는 선거 상황이 적힌 '특임장관실 수첩'이 발견돼 선거 개입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일부 한나라당 의원에게 선거 지원을 독려한 것도 별개의 쟁점거리다." "지난해 6·2지방선거 때 일부 야권 인사가 선물이나 경품을 내걸고 투표 참여 인증샷을 인터넷 등에 올리도록 한 이벤트가 이번에도 문제가 되고 있다." 동아일보는 여야와 관련한 주장을 나열했다. 여야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은 균형 잡힌 시각일까. 엄기영 후보 쪽의 '불법 콜센터' 사건을 다른 사안들과 동등한 비중으로 처리한 모습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동아일보는 한나라당 쪽 주장, 민주당 쪽 주장을 열거했지만, 그 주장의 진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주장한 김진표 의원 관련 의혹에 대해 당사자 13명은 지난 24일 "김진표 의원 일행은 우리와 식사를 함께 한 사실이 없으며, 우리 일행 중 1명이 개인카드로 1인당 6000원에 해당하는 우리가 먹은 밥값을 계산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런 내용이 담긴 성명을 4월 24일 언론에 전달했다. 다른 언론은 다 아는 사실을 동아일보만 몰랐던 것일까. 동아일보 사설은 한나라당 주장을 언급하는 데 그칠 뿐 그 주장이 사실인지 허위인지 가리지 않았다. 언론은 '양비론'의 뒤에 숨어 중립을 가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론의 양비론은 가장 비겁한 행동, 속 보이는 행동일 수도 있다. '권력 해바라기' 언론들이 얼마나 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수 있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시기이다.
|
'§ 당신의 서재 § > ▣ 시사&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선택입니다...그리고 (0) | 2011.04.29 |
---|---|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선택입니다...그리고 (0) | 2011.04.29 |
사설 對 사설 - 지류정비사업이 보여주는 4대강의 불안한 미래 (0) | 2011.04.25 |
사설 對 사설 - 경쟁의 이중구조와 대중문화 (0) | 2011.04.25 |
위키리크스와 대북정책 논란 (0) | 2011.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