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민신문 2011년 6월 4주 만필 원고)
병상에서 물 흐르는 모습을 보다.
강미(시인. 에세이스트. 논술지도자)
물이 흘러가는 것은 소리보다 모습이 더 아름답다. 서로 높이를 맞추어 주려는 배려의 마음이며 더 예쁘게 더 고르게 더 부드럽게 보이려는 마음이 숨김없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유연한 흐름의 곡선은 그들이 펼쳐낼 수 있는 최상의 마음씀이기도 하다. 그런 마음이 소리로 나타나고 사람들은 그런 소리를 흘러가는 소리라 한다.
아주 작은 부딪침에도 반응하는 것은 그만큼 처음은 시냇물이었을 그들이 여리고 순수해서일지도 모른다. 구비 돌아 흐르면서 멈칫거리며 물가에 자라고 있는 작은 들풀을 살짝살짝 건드려보는 것도 그들에게도 무언가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이끼 낀 작은 돌멩이를 슬쩍 돌아가기도 하고 윗물네 이끼 한 쪽을 따다 아랫녘의 이끼에 살짝 붙여놓고 가는 것도 서로를 알고 지내는 것이 좋지 않으냐는 나름의 생각에서이기도 하다. 물은 그렇게 흐르고 만나고 어울리며 만들어내는 시간의 결정들로 서로 섞여 인연을 이룬다.
게오르규가 ‘세계는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무에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이 있는 것처럼 이 세상도 사람들의 여러 미래들이 한데 어울려 우리의 오늘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라고 말했던 것처럼 어찌 세계가 나만의 것일 수 있으랴. 한갓 풀포기 하나, 나무 한 그루, 물 한 방울이라고 어디 내 것이 있으랴. 다만 나도 그들 중 지극히 작은 한 부분으로 우연히 그들과 함께 존재할 뿐이고 그들과 더불어 사는 존재가 아니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어제와 오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등 모두가 다 서로 어울려 다시 오늘이 되지 아니한가. 어울림은 나를 포기하고 낮아지며 수용하는 의미인데 늘 나로만 있고 나만으로 있고 나 만이길 원하는 속성이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없는지 찾아 볼 일이다. 너는 너 나는 나가 아니라, 너와 나 나와 너는 어울림의 기본이고 그 어울림 속에서 사랑도 평화도 존경도 우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 흐르던 물은 그렇게 서로 어우러져 마침내 큰 내를 이루지 아니한가.
이 여름의 한 복판을 병상에서 보내고 있어서 일까...통증의 후유증으로 누워서도 귓속으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일어서 잠시 서면 발밑으로 계곡물이 흐르는 듯 휘청인다. 그래서 그대로 그 몸의 흔들림에 잠시 누워 의식도 같이 흐른다. 저항하지 않고 내 몸을 관통하여 흐르는 물길이 혼돈이 아니길 바라며 누워 있는 병상은 마른 나뭇잎처럼 둥둥 떠 있는 것 같다.
그랬다. 지나고 보니 삶이 그랬다. 너무 일찍 만난 관계에서 휘청이는가 하면, 오랜 세월 지나 꼭 만나야 할 관계를 너무 늦게 만난 듯 안타까움으로 세월을 애잔하게 하는 만남이 있다. 그 모두가 같은 흐름으로 내게 찾아 온 인연은 아니었을 텐데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되고 어떤 인연은 다가서기 어렵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인연의 관계가 삶의 흐름 속에서 같이 존재하듯이 지금은 내 안에서 만들어진 세월의 인연으로 엮어져 제 물길 따라 흐르는 소리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삶이 이럴진대 조금 빠르다고 세다고 불평할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지금 지난 가을 들녘에서 바람에 날려 겨울 강가를 지나쳐 봄 물결을 따라 여름으로 들어선 나뭇잎 같이 흔들리며 흐르는 존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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