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서재 §/▣ 시사&세상

▶◀ 숲속 홍길동 이상현님을 보내며...

변산바람꽃 2011. 6. 29. 15:14

 

 

 

 

숲속 홍길동 이상현님을 보내며...

 

 

그는 한전에 입사해서 노동조합을 했었다고 한다. 그 안에서 어용노조와 회사를 대상으로

2중고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본인 지부 싸움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노동자들의 싸움 현장에

 병가까지 내고 가서 함께 투쟁을 이어왔을 정도로 연대 의식이 투철한 이였다. 

 

언론에서는 힘없는 약자의 목소릴 실어주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에

그는 손수 캠코더를 들고 다니면서 현장의 영상을 담았고,

 이를 인터넷 상에 퍼 나르면서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힘썼다.

 

관련 기사 - http://networker.jinbo.net/zine/view.php?board=networker_4&id=345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그의 의지가 얼마나 투철했는지,

그는 2004년 돈 잘 벌던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한다.

그 후로 그는 특별한 생계 없이 밤낮으로 투쟁의 현장을 돌면서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를 영상에 담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그가 거언 10년간 찍어 만든 영상은 아래에 링크 되어 있다.

 

영상링크 - http://www.nodong.com/hong

 

 

그는 그야 말로 무모할 정도로, 힘없는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이였다.

그 무모함은 현실감각을 빼앗아가고 오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현장만을 쫓게 만들었다.

 

하여 회사에서 벌어놓은 돈이 떨어진 후부터는 밥이 없으면 없는 데로,

차비가 없으면 없는 데로, 그렇게 굶으며 걸어서 노동자들의 투쟁의 현장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거언, 7,8년의 생활해 왔던 듯싶다.  

 

자신의 이권을 위해서라면 기득권에의 야합도 주저하지 않는

진보운동가들이 한둘이 아닌 것이 세태에서,

오늘 집어 삼켜야할 밥벌이마저도 포기하고 주린 배를 움켜잡고

오직 투쟁판 만을 찾아 돌아다닌 그의 열정은,

 그가 힘없는 노동자들을 진정 피를 나눈 형제로 여기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홈페이지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니 올 4월에 그의 애절한

호소의 글이자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상에 마지막 올린 글이 올려져 있다.

 

 http://www.nodong.com/zero/zboard.php?id=leesanghyun_board

 

 

[캠코더, 노트북, 외장 하드, 활동비 중 남은 현찰 등이 담긴 가방을 분실해 버렸습니다....

이 장비가 없으면 영상활동가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허탈감...주머니를 보니 돈이 3만원 정도 있어 그 돈으로 인천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쏘주를 20병 정도 사서 뇌를 마비시켰습니다...

이 상황에서 패닉을 잊게 하려 했던 겁니다.

지금 수중에 전혀 현찰이 없고 남은 돈은 2700원인데

이 돈으로 피씨방에 와서 인터넷을 하고 있습니다.

일일이 동지들께 전화드릴 돈이 없습니다. 그리고 한 15일~20일 정도

그 집에서 지낼 수는 있는데, 당장 먹을 쌀이 없는 상황입니다.

고시원이었으면 밥과 국 정도는 해결했을 텐데...만원도 좋고 이만원도 좋습니다...

당장 굶게 생겼습니다. 장비 마련도 아득한 일이지만,,,

꼭 다시 일어나서 동지들 곁에서 당당히 활동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다...]

 

하지만 그를 돕고자 자처해 나선 이들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그리고 결국 생존의 압력이 주는 무게에 감당하지 못한 그는 자살을 택하게 된다.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들어주지 않는 작은 사업장 투쟁에서

그들 목소리에 유일하게 귀를 기울여준 경청자이고, 부당해고자들의 친구이며,

외국인 불법체류자의 형제인 그는 그렇게 갔다.

 

우리는 오늘 다만 투쟁가 한명을 잃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절친한 형제를 하나 잃었다. 

 

---------------------------------------------------------------------------------

 

 

이상현 동지 영안실에서 전합니다

녹색병원 영안실에 이상현 동지를 모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동지들이 오실줄은 몰랐는데

아마도 애증이 많았나 봅니다

 

오늘 28일

10시에 입관을 합니다

그리고 저녁 8시에 녹색병원에서 추모제를 가지고자 합니다

 

29일 10시에 발인  

그리고  12시에 성남에서 화장을 하고

마석에 모시고자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스스로 안락한 일상을 떠나 노동자보다 더 노동자처럼 살아간 노동현장의 살아있는 기록자...
 그의 캠코더에 담긴 생생한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화보와 글을 통해서 만났던
나는 그가 늘 신기하기만 했었는데...

그의 생생한 기록물을 그의 홈피를 통해 무상으로 얻으면서
그가 얼마나 고단하고 외롭고 심지어는 단돈 2700원만 있을 때
그가 그렇게 옆에 있고자 했던 그 어떤 '노동자 동지들' 조차 그에게
한 끼 식사를 너그럽게 나누지 않았다는...

마지막 모습에서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그가 느껴야 했던
극단의 절망감과 상실감 그리고 외로움이 전해져 온다.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이 오직 그의 캠코더에 담았던 기록물을 통해서만
내가 살아가지 못하는 노동현장의 모습을 기억에 담을 수 있었는데...
나는 얼마나 사치한가...
하늘에 구멍이 난 듯이 퍼붙는 빗속에 그의 넋이 함께 흐르는가...
오늘은 여러가지로 미안함이 많은 아침이다.

▶◀ 이상헌님...스스로 넋으로 남고자 선택하던 마지막 호흡의 순간...
 당신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무엇인지...
그러나 당신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후회하는 수많은 당신의 동지들이 함께 하고 있답니다.

당신에게 따뜻한 국물 한 그룻 나눈적이 없는 나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호흡했던 당신을 기리며...
이제 영원히 평화로운 땅에서 갈등이 없는 땅에서 안식하기만을 기원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영면하시길...▶◀ 

(강미/변산바람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