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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강의 31.] 모순에 대한 추측과 논박 - 칼 포퍼와 헤겔의 주장을 중심으로...

변산바람꽃 2011. 10. 9. 20:15

 

 

[강의노트 31.] 모순에 대한 추측과 논박 - 칼 포퍼와 헤겔의 주장을 중심으로...

 

 

입시논술에서는 수험생들의 독해 및 표현 능력 그리고 논리적 사고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수험생들은 다소 복잡한 제시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중요한 논점을 추출하여 논제가 요구하는 바를 주어진 분량 속에 적절하게 표현해내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수험생들은 각 제시문의 논지 및 그 연결고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에 기초하여 자신의 생각을 전개하여야 하며,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시된 조건들과 모형을 이해하고 논제가 요구하는 논리적 추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논리적 추론을 위한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것이 제시문들의 공통주제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이 모순으로 나타날 경우에 어떻게 그 모순을 해결하고 논제에 답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논제가 던지는 모순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평소에 수험생은 토론과 글쓰기를 통해 추측과 논박에 대한 경험을 쌓아두었다면 유리할 것이다. 이러한 추측과 논박이 논술에서 자기 목소리를 갖는 통로이기도 하다. 다음은 칼 포퍼의 저서 '추측과 논박'을 통해 나타나는 모순에 대한 해결점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기에 정리했다. 칼 포퍼가 변증법적 유물론이 모순에 대해 오히려 묵인함으로서 비판적 기능을 오히려 잃고 있다는 지적은 이 글을 정리하는 내 의도와는 관계가 없는 분석임을 유의하라.

 

일반적으로 ‘모순’은 투쟁 관계에 있는 두 대립물이 공존하면서 맺는 상호 관계를 말한다. 이러한 모순은 ‘논리적 모순’과 ‘변증법적 모순’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논리적 모순이 사유의 영역에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변증법적 모순은 객관적 실재에 속하며 모든 운동과 변화 ․ 발전의 근원이라고 주장된다. 다음은 모순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비교하는 것을 통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추측과 논박의 과정이 왜 필요한지를 찾아보자.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의 저서 『추측과 논박(Conjectures and Refutations)』의 “변증법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모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변증법이란 무엇인가”는 1937년 처음 발표된 글로, 포퍼의 초기 논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적 입장을 잘 보여준다. 포퍼는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과학철학은 물론 사회철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저작들을 남겼다.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 사회철학 분야의 대표작이라면, 『추측과 논박』은 포퍼의 과학철학을 대표하는 저서라고 할 수 있다.

 

포퍼는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하고 지식을 증진시킬 수 있는 비판적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간 이성의 오류가능성이 포퍼의 철학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따라 그는 무오류성을 주장하는 일체의 독단적인 지식에 반대한다. 포퍼에게 모든 지식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불완전한 가설에 불과하며, 이 가설은 비판에 의해 더욱 완성도 높은 지식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잘 알려진 개념인 ‘반증 가능성의 원리(falsifiability principle)’이다.

 

포퍼는 일관되게 절대적 진리에 대해 부정적이다. 포퍼는 변증법론자들이 모순의 종합을 진보로 상정하는 것을 비판한다. 포퍼는 모순을 오류로 보고, 그것이 더 나은 이론을 구성하기 위한 과정으로 간주될 때만 변증법이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포퍼의 말을 빌면 “모순의 창조성은, 우리가 진술들 간의 모순을 허용하지 않고 모순이 내포된 이론은 어떤 것이든지 바꾸겠다는 의지를 가질 때만 가능한 것이다.” 모순을 묵인하거나 용인하게 되면 비판은 힘을 잃게 된다고 지적함으로써, 비판적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변증법론자들은 모순이 유익하며, 불가피할 뿐 아니라 진보를 낳는다고 본다. 이러한 해석은 과학의 기본 원칙인 모순율을 위배하는 것이며, 비판적인 지식 과정으로서의 과학을 붕괴시키는 것이라고 포퍼는 지적한다. 이는 모순의 변증법적 해석에 대한 부정적 입장으로 볼 수 있다. 포퍼는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유물론적 변증법이 ‘강화된 독단주의’에 빠지고 말았다고 비판함으로써 과학철학자이자 사회철학자로서의 자신의 면모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반면 지금까지 헤겔의 논리학이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는 그가 모순이라는 용어를 매우 독특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헤겔은 “객관은 여러 가지 것의 완전한 자립성인 동시에 구별되는 것의 완전한 비자립성이라는 절대적 모순”이라고 했다. 여기서 그가 말하고 있는 모순은 명백히 진술이나 판단 사이의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거짓인 진술 또는 판단으로도 이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헤겔은 객관적인 것,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 자체에 있는 사태를 보여 주기 위해서 모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학자들은 이러한 부류의 모순을 ‘변증법적 모순’이라고 명명하였다.사물을 인식하는 우리들의 오류가 아니라 사물 그 자체의 본질 속에 모순의 기원이 있다고 헤겔은 생각했다. 사물들이 동일한 관계에서 하나의 특징과 그에 모순되는 반대물을 동시에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처럼 객관적 현존으로 모순을 이해할 때 그에 대한 진술은 형식상 모순된 명제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헤겔은 철학사상 최초로 실재적 대립을 모순으로 표현했고, 관념론의 입장에서 모순에 대하여 뚜렷한 의미를 부여했으며, 모순을 객관적 사태로 파악했다고 할 수 있다.

 

헤겔의 변증법적 모순 개념은 사회적 모순을 바라보는 관점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것과 낡은 것 사이의 모순은 발전과정의 진보와 새로운 것의 등장에 유리한 주객관적 전제들이 밝혀짐으로써 생긴다. 그것은 모든 운동을 특징짓는 안정성과 변화의 보편적 모순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형태이다. 발전과정에서는 늘 새로운 것과 낡은 것 사이의 모순이 동시에 일어난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의 양극성은 동일한 하나의 사실 연관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 새로운 형태로 재생산된다. 결국 모순은 역동적 대립관계의 발전 국면을 전개시킬 뿐만 아니라, 항상 새롭게 산출되는 극성(極性)의 성숙한 국면을 나타낼 수 있다.

 

많은 변증법적 모순의 현상들이 문학에서 갈등의 형태로 드러난다. 갈등은 대립되는 이해와 경향의 일시적인 상호배척이며, 사회적 관계의 발전과 형태 변화의 역동성을 분명하게 반영한다. 사회의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 발생하는 모순은 문학적으로 서술되고 묘사되는 과정에서 그 내적인 필연성을 드러낸다. 즉 문학적 형상화는 모순들의 일반적 구조에 따라 모순의 전개과정과 해결을 지향하여, 다양한 모순들에서 자연적이고 본질적인 일치에 이른다. 이런 의미에서 헤겔의 모순 개념은 무엇이 참된 모순인가에 관해서 독자적인 이해를 발전시켰다고 평가된다.

 

변증법적 모순은 ‘발전 단계’뿐만 아니라 갈등, 불일치, 불균형 등의 개념을 포함할 수 있다. 특히 문학에서 형상화되는 모순은 갈등이라 일컬어진다. 문학적 형상화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충돌을 내포하는 모순의 일반적 구조의 관점에서 모순의 전개과정과 해결을 따라가게 된다. 또 통일적인 사회적 기초를 전제할 때 문학적 형상화는 다양한 모순들에서 자연적이고 본질적인 일치에 이른다. 헤겔의 변증법적 모순 개념은 이런 관점의 토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가진다.

 

헤겔은 변증법적 모순이 지닌 발전과정과 변화의 역동성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데 비해 칼 포퍼는 변증법적 모순은 진술, 이론의 모순을 변경할 의지를 가질 때만 긍정적이며, 그것을 묵인하고, 용납할 때에는 창조적 생산력을 상실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과학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적으로 본다.

 

논리학에서 모순은 양립할 수 없는 두 명제 간의 관계로서 부정적인 의미를 갖지만, 변증법적 모순 개념은 오히려 대립하는 두 사태에서 한 단계 더 고양되기 위한 발판으로서의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이론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상호 모순되는 체제 사이에서 갈등하는 실존으로서의 인간의 모습과, 모순을 포용하고 절충하는 사고방식이 거론되기도 한다. 수험생은 이처럼 모순과 관련된 여러 관점을 담고 있는 제시문을 만나게 되면 그 제시문들의 논지를 정확하게 이해한 후 이에 기초하여 논제의 요구에 답해야 한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추측과 논박의 과정이어야 한다.

 

노자는 “추함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고 악함이 있기 때문에 선함을 알 수 있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대립 개념의 당위적 존재 의의를 강조한 것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모순에 대한 대립적 견해를 통해 모순이 오류와 다른 방향에서 인간 인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추측해야 한다. 또한 모순이 사회적 상황으로 나타날 때 개인적 선택의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을 정의하는 방법을 통해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좋은 글을 위한 여러분들의 논리적 추측과 반박을 기대한다. 강의를 마친다.

 

=강의내용 참고문헌=

 

미하엘 볼프(Michael Wolff)의 '모순의 개념(Der Begriff des Widerspruchs)'

고트프리트 슈틸러(Gottfried Stiehler)의 '변증법적 모순(Der Dialektische Widerspruch)'

리처드 니스벳(Richard Niebett)'생각의 지도(The geography of thought)'

칼 포퍼(Karl Popper)의 저서 '추측과 논박(Conjectures and Refut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