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의 문학서재 §/◎ 詩 서재

석류꽃이 걸어오고 있었다./ 강미

변산바람꽃 2012. 10. 6. 05:29

 

 

 

 

 

석류꽃이 걸어오고 있었다.

 

                    - 강미 -

 

 

새벽에 비가 내렸는지

석류나무에 화색이 만연하다.

바라보면 한 인생 같아서

요절하는 꽃도 있고

목숨 놓는 꽃도 있는데

떨어진 꽃 한 송이가

회한의 눈물 같기도 하다.

 

몇 송이 떨어진 바닥을 보니

들어갈 무덤이 보이고

먼저 진 희생의 발자취 같은데

꽃이 나보다 늦게 나와서

나보다 먼저 흙으로 돌아갔으니

꽃 피고 지는 것이

생을 깨우치는 일이 분명하구나.

 

석류 열리기 전에

꽃 피어야 하는 이유와

피기도 전에 꽃 떨어지는 이유를

나무에 앉은 새에게 묻는데

꽃 걸어간 길 쫒아간다고

새 날아간 자리에

열매 하나 일찍 맺혔다.

 

그래서일까

새벽 선 잠 꿈속에서

석류 한 알 얻었는데

먹지도 못하고 버려둔 씨앗들이

꽃으로 피고 진 것처럼

피 흘리는 가슴을 안고

석류꽃이 걸어오고 있었다.

 

(2012.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