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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Jazz 에세이 (25) - Jazz, 책으로도 만날 수 있다.8회 - 여전히 재즈 비밥 그리고 모던 재즈가 좋다. 그리고 사라 본...

변산바람꽃 2009. 12. 5. 18:30

 

 

Jazz 에세이 (25) - Jazz, 책으로도 만날 수 있다.8회 - 여전히 재즈 비밥 그리고 모던 재즈가 좋다. 그리고 사라 본...

 

 

오랜만에 'Jazz, 책으로도 만날 수 있다.'를 쓰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 에세이에서 벌써 한 달이 지났네요.

여전히 재즈 에세이의 주 텍스트인  "ALL MUSIC GUIDE TO JAZZ" 의

내용을 참고로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인 딸내미랑 가끔 12시 넘어서까지 만화를 볼 때가 있습니다. 

가끔은 오목을 두면서 싸우다가 12시를 넘기기도 하구요...제가 초등생 아이를 둔 에미가

 맞나 모를 때가 있지요...ㅎㅎ

 

 며칠 전에도 우리 카페의 유머 메뉴에 고니님이 올려두신  오목두기 게임을 서로 번갈아 가며

하다가는 맹한 컴퓨터와 오목 두는 것이 뻔한 결론이기에 바둑판을 꺼내놓고는 오목을

두기 시작했지요...발동은 딸내미가 먼저 걸고 끝내기는 제가 했답니다.

자정을 지나 1시까지 이어진 오목두기의 결론은 6:4로 제가 졌다는 것입니다.

원래는 한 두 어판만 하고 자게 해야지 했는데 이 녀석이 글쎄 계속 두자고 일부러 져주는 것

아닙니까? 그럴 수가 있어요? 엄마랑 새벽까지 오목두자고 일부러 져주다니요...

최소한 딸내미에게  그런 양보를 받을 수가 없지 뭡니까...그래서 그냥 열 판을 하자고 했지요.

몇 판을 양보 받았음에도 지고 말았지만요...제가 원래 바둑도 좋아하고 오목을 못하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딸내미를 이기는 것이 별로 없답니다.

 

바둑 말고 제가 딸내미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 또 만화 보기랍니다. 도대체 이건 만화 보는

속도가 제 전성기 속도를 넘어서고 있으니 우째 이런 일이 우리 모녀에게 생기는 것인지요...

저는 사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책을 불에 태웠을 정도로 독서광이었답니다.

그 동기가 만화책 보기에서 시작되었다면 애지간하지요...만화책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초등학교 때 아침에 등교하기 전에 만화 가게에서 만화책 10권을 보고 가고, 집에 오는 길에

다시 10권을 보았었지요. 동생들을 거의 업어서 키웠다고 할 만큼 집안일을 많이 했던 편이었는데도

손에서 만화책을 놓지 않았지요...그러니 자연히 만화 보는 속도가 빨라질 밖에요...

이런 제 전성기의 속도를 지금의 딸내미가 능가한다는 것은 저 보다 더 심한 독서 중독 상태가 될

가능성이 많아서 저도 제 어머니처럼 책을 불에 태우는 불상사가 대를 이어 생기는 것 아닐까 했는데

완전히 예상을 벗어난 일이 생기고 있답니다. 여전히 만화 보기를 즐겨하는 딸내미가 서너살 때부터

그토록 열심히 보던 책들을 싹 놓고는 요즘 연예인 된다고 온갖 여우 몸짓에 가수 몸짓에 빠져 있답니다.

가수가 되겠다면서 가장 심한 것은 제가 재즈를 듣노라면 자기 방에 들어가서 이 더운데도 문을 닫습니다.

그게 무슨 음악이라고 듣느냐면서요...


특히 딸내미가 제일 질색하는 재즈가 비밥이나 모던 계열 재즈입니다. 거의 귀신 음악 같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제가 재즈 장르 중에서 가장 즐겨 듣기는 밥과 모던 계열이다 보니 음반도 주로 그 장르가 많구요...

특히 우울한 날은 여지없이 모던 계열의 재즈 특히 사라 본 음반을 걸어둘 때가 많답니다.

소니 롤린스, 찰리, 길레스피, 빌리, 엘라, 루이, 스탄 겟츠, 찰스 레이, 행콕, 뭉크, 에반스 등 등 선호하는

재즈 뮤지션들이 많지만 사라 본의 음성은 제 심장이 뛰는 소리처럼 느끼게 되거든요...

 

어쨌든 만화책을 무지 보았던 엄마와 비슷한 딸내미가 오목까지 양보하는 딸내미가 절대로 양보하지 않고

문을 닫는 벽을 세우는 음악이 재즈라면 우리 모녀는 심각한 균열 상태를 보이는 중이겠지요...

그렇다고 딸내미의 귀가 편안하라고 제가 좋아하는 음악 듣기를 포기할 수 없으니...빨리 딸내미가 커서

자기 세계로 나간다면 화해가 될까요...이런 그러면 또 늙었을 제가 섭섭함을 탈까요...

에고 사람 마음 참 간사합니다. 하하...

 

이왕 사라 본을 언급한 김에 비밥 계열의 성장에서 나타난 모던 재즈 그 중심에 있었던 사라 본에

이르기까지의 재즈의 성장과정을 풀어보겠습니다. 뭐 재즈 역사를 읽어보시거나 알고 계시는 독자들에게는

식상한 주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목적은 밥 계열의 재즈가 요즘 잊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밥과 모던 계열

재즈에 대한 제 나름의 홍보 역할을 하고 싶어서라고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변산바람꽃.

 


비밥의 쇠퇴와 하드 밥의 탄생(1950 ∼ 1955) 그리고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발전

2차 대전 전후 뉴욕을 중심으로 하고 있던 재즈는 웨스트 코스트의 연주가들에게 유입되는데

그 결과 재즈의 움직임과 발전은 동서로 분산되는 결과를 낳고, 이 시대의 눈에 드러난

특징이 된다. 뉴욕에서 탄생한 쿨 재즈는 불황이란 시대적 배경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본다.

하지만 동해안 지역에서는 큰 성장을 이루지는 못했다. 쿨 재즈의 성과는 음악 산업에서 낙후되어

있던 웨스트 코스트로 전해진다. 당시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하여 영화 산업에서 종사하고 있던

연주가들은 악보 그대로의 연주에 싫증나 있는 상태였다.


여기서 비밥이 탄생하게 된 민턴즈 플레이 하우스와 같은 상황이 서해안의 '재즈신'에서도 일어난다.

즉 연주가들이 일을 마친 후 재즈 클럽에 모여 그들만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들은 당연히 악보에 강했고, 따라서 어레인지를 응용한 연주로 연주 형태가 바뀌게 된다.

이와 같은 시기에 히트 선상에 있던 곡이 마일스 데이비스가 발표한 <쿨의 탄생>에 어레인지로

참가한 게리 멀리건 등이 중심이 되어 재치 있는 어레인지에 의해 쿨과 유사한 연주를

연주하게 된다. 이것이 후에 웨스트 코스트 재즈라 불리는 음악으로 발전하게 된다.

한편 뉴욕의 재즈계 역시 '54년경부터 경기가 회복됨으로써 차차 그 기세를 높여갔다.

로 인해 많은 흑인 연주가들이 긴장하는 가운데 연주를 시험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으며,

비밥을 계승 발전시키고 흥미와 강렬함을 지닌 하드 밥이 서서히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재즈의 황금시대

마일스 데이비스아트 브레이키는 웨스트 코스트로부터 온 클리포드 브라운, 막스 로치

그리고 크인테트와 함께 '50년대 초기를 선도, 증기에 들어서면서 하드 밥은 많은 연주가들이

그에 근접한 연주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흑인들의 정서를 강조한 펑키 재즈 역시

탄생하여 재즈는 사상 최고의 인기를 획득하는 황금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50년대 중반 뉴욕의 재즈계는 '40년대에 많은 재즈 클럽이 탄생한 52번지 이외에

그리니치 빌리지 주변에도 많은 재즈 클럽이 탄생하였다. 한편 블루 노트, 프레스티지,

리버 사이드, 사보이라 불리는 재즈 전문 레이블도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비지니스적으로

커다란 발전을 한 시기였던 재즈는 예전의 성격과 하드밥에 의한 전성기에 따른 시행착오를

함께 갖고 있었다(물론 유명한 연주가들이 놀랄 만한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이런 시기에 하드 밥으로부터 탈출하여 모드 인디옴에 의한 연주를

추구하게 된다. '59년에는 모드 재즈에 의해 최고의 작품 <카인즈 오브 블루>를 발표한다.

또한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고 있던 오네트 콜만은 웨스트 코스트 재즈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그 당시의 음악 개념을 반영·발전시킨 프리 재즈를 독자적으로 완성하여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이들의 활동이 격동의 '60년대 재즈를 예상케 한다.


비밥의 명콤비 파커와 길레스피

비밥 시대의 명콤비 찰리 파커디지 길레스피는 함께 모던 재즈의 원형이 된 비밥 창조에

커다란 영향을 준 연주가이다. 최초 '41년에 캔사스 시의 제이 막샨 악단에서 데뷔한

찰리 파커는 제이 막샨 악단에서 '42년 뉴욕으로 진출하여 그의 혁신적인 연주를 클럽에서

연주, 좋은 평가를 얻었다. '42년 12월에는 알 하인즈(Al Haynes)악단에 가입하여

그곳에서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를 만나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여러 형태로

공연하게 된다. '4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레코드 샵을 운영하는 로스 랏셀을 알게 되는데,

그는 후에 다이알 레코드를 설립하여 파커의 녹음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46년∼'47년에

이루어진 파커의 다이알 녹음은 재즈 역사상 최고의 명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밖에 파커는 사보이에 의한 앨범을 남기게 된다.


  천재 알토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는 '46년 7월 로스앤젤레스의 다이알 레코드사에서

녹음중 발작을 일으켜 강제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 때문에 당시 결성된 디지 길레스피와의

콤비는 해체된다. 다음해 1월 퇴원 후 서해안에서 다시 활동을 재개한 그는 곧 뉴욕으로

돌아와 당시 인기 절정에 있던 길레스피 악단에 잠시 몸을 맡긴다. 마일스 데이비스 등을

끌어들여 새로운 밴드를 결성한다. 이것이 9월에는 길레스피와 함께 카네기 홀 콘서트로

이어진다. 이 당시의 라이브 녹음은 '53년 녹음된 파리 녹음과 함께 모아져

<길레스피·파커 인 콘서트>로 출반, 최고의 라이브 음반으로 평가되고 있다.


두 사람은 '4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룹을 해산한 이래, 찰리 파커디지 길레스피 대신에

신진 마일스 데이비스케니 드리함을 그룹의 트럼펫 주자로 기용하게 된다.

한편 길레스피는 오케스트라를 결성하여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이런 두 사람이 오랜만에

스튜디오 녹음(1950년 6월 6일)을 한다. 피아니스트에는 세로니어스 몽크가 참가. 이 세 사람은

모두가 비밥을 창조한 인물로 '40년대 초에는 여러 차례 함께 공연한 경험을 갖고 있다.

세 사람이 참가한 레코딩은 특기할 만한 사항일 만큼 독특한 재즈 연주의 일체성을 느끼게 한다.


사라 본의 성장

빌리 엑스타인 악단에서 싱어와 세컨드 피아니스트로 활약하였으며, 모던 재즈를 노래할 수

있는 싱어로서 인기와 지위를 확립한 사라 본은 '45년에 독립하면서부터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49년에는 콜롬비아사와 계약하게 되며 '50년 5월에 레코드를 취입하게 된다.

사라 본의 백밴드 리더 지미 존슨은 이 당시의 마일스 데이비스와 매우 흡사한 느낌을 준다.

이날 녹음된 곡들은 다른 날의 녹음과 함께 편집되어 <인 하이파이>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어 있다. 사실 모던 재즈로의 재즈가 변화되는 한 가운데 사라 본은 열광적인 애드립의

비밥 계열에 여전히 충실한 재즈를 노래했다. 그녀에게는 실험적인 재즈 변화에도 불구하고

목소리 자체가 악기라고 할 만큼 독특한 음역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재즈 변화와는

무관한 자기 세계에의 고집이 그 이후 지속되고 있었다. 재즈에의 실험적인 시도를 생애

내내 했던 마일스에 비교되는 그녀만의 역사성이라고 할까...


모던 재즈를 이야기 하면서 모던 디너 색소폰의 창시자 중 한사람 콜맨 호킨스(Coleman Hawkins)

'24년에 뉴욕에 진출하여 곧바로 프레처 핸더슨(Fletcher Henderson)악단에 참가한다.

프레처 핸더슨 악단은 같은 해 시카고에서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이 합세하여 그 면모를

일신하게 된다. 호킨스 역시 암스트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연주자 중 한사람으로 핸더슨

악단에서는 솔로이스트로 주목을 받고 있었다.

 

레스터 영(Lester Young)보다 창조적인 디너 주자로 명성을 떨치던 그는 '34년에 유럽으로

진출한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39년 귀국하게 된다. 귀국 직후부터 호킨스

블루 버드에서 레코딩을 개시하게 되며, 이렇게 녹음된 최초의 연주곡 네 곡 중 <바디 앤 소울>

 높이 평가되어 그의 이름은 재즈 역사상 영원히 남게 되었다.

 

30년대의 스윙 재즈에 만족하지 못했던 젊은 재즈맨들에 의해 좀 더 현대적인 하모니와

연주 방법을 보완·발전시켜 스윙 재즈의 변화격인 새로운 재즈 비밥이 완성되었듯이

재즈는 지금도 변화되고 있지요. 초기 비밥으로의 재즈 변화 한 가운데 있던 연주가들

중에는 찰리 크리스찬, 세로니어스 몽크, 케니 클라크 등이 있었듯이 새로운 재즈

변화를 이끌고 있는 요즘 젊은 신예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후대에 지금의 젊은이들이 시도하는 재즈의 변화가 어떻게 평가받을지는 모르겠으나

스윙의 단순한 리듬에서 보다 지적이고 창의적인 재즈가 모색되어 비밥과 모던 그리고

쿨이 나타났듯이 혹시 아는가... 현재처럼 컴퓨터가 보편화된 세상에서 컴퓨터로만

연주되는 재즈가 재즈 세상을 한동안은 이끌어갈 지...

즉 기계가 사람을 대처하여 그들만의 재즈를 만들어 갈 지...


어쨌든 내가 죽고 난 이후였으면 좋겠습니다.

최소한 난 기계가 만든 재즈를 듣기 전에 죽고 싶으니까...

 

새벽에 카프리 두 병을 마시고 시작한 에세이를 마감에 쫒겨야만 쓰여지는 습작

습관 탓에 이제야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별 이야기도 아니면서 뭐 대단한 것처럼 그러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어쩌랴...

삶이 제 각각이듯이 글 쓰는 습관도 제 각각인 것을 독자들께서 이해해 달라고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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