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인, 구, 함, / 최정란
대구 발 시외버스 타고
토요일이면 집에 갔다
한껏 볼륨 높인 뽕짝을 들으며
좌석 등받이 뒤편에
애, 인, 구, 함,
볼펜으로 갈겨 쓴 어설픈 춘정
코웃음 치던 스무 살
그 때는 몰랐다
사람은 평생 자신의 등 뒤에
절실하게 구하는 것
써 붙이고 다니게 되리라는 것,
지울 수 없는 구, 함, 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매달고 다니게 되리라는 것,
가끔 남에게 등 돌리면서
앞선 남의 등을 보고 달리는 동안
멈춰 서서 돌아본 적 없는
뻣뻣한 내 등은
무엇이 필요하다는 구, 함, 을
고함처럼 크게 외치고 있었을까
내려꽂히는 햇살 따갑다
- 월간 <우리시> 2007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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