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의 문학서재 §/◎ 강미의 斷想

Binsom Lee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그리고 댓글

변산바람꽃 2011. 3. 23. 01:07

 

 

 

 

 

 

Binsom Lee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이 기존의 미디어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뉴스 전문생산과 대중소비로 나눠지던

미디어시스템을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가 대행할 경우, 우리는 정보들을 자발적이고

합리적, 혹은 유익한 방식으로 얻고 정리할 수 있을까요. 뉴스 생산은 누가 하는 것일까요.

다만 기존의 미디어들이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독자의 일상에 잠입하는 마케팅이나

소통전략의 변화에 불과한 것일까요. 독자가 뉴스 생산에 참여한다는 환상을 유포시키는 책략들.

그러면 그 뉴스들에 대한 '편집'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SNS는 미래에 관한 함의를 담고 있긴

하지만, 상당히 사기성이 있는 개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많은 사람들은, 소셜네트워크 시스템이 기존의 뉴스 대량생산과 대량유통을 보완하는 흐름일 뿐,

미디어의 전면적인 전환이나 대안적인 매체행위가 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소셜 네트워크는 기존 미디어에서 상당히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던 정보소통행위(뉴스전달행위)와

홍보선전행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듯한 인상입니다. 이 문제는 오히려 미디어가

지녀왔던 건전한 이성적 판단들까지도 폐기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형식의 소통을 싫어한다는 말씀. 그런데 뉴스나 정보의 생산은 여전히 상당한

독점체제를 유지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대개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소통 참여는,

댓글이나 반응을 생산하는 행위가 주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댓글소통이 과연 생산자 권력을

쪼개서 개체화된 대중의 발언을 강화할 수 있을까, 이것도 정말 연구와 진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ㅎㅎ 요즘 이런 생각들을 이리저리 하게 됩니다.

 

 

 

 

Kang Mi 의 답변 댓글...

 

올려진 댓글을 보면서 생각했네요...들뢰즈와 가타르가 지적했던 욕망의 긍정적 의미로서

'욕망의 절제'에 대해서요...욕망은 틀 지워진 제도 속에서 다양한 출구를 찾아 나서는 선들로

작동된다는 것에서 ‘욕망하는 기계’(machine désirant)라는 개념을 사용되지요.

즉 이러한 ‘욕망하는 기계’는 특정한 모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분열적인 과정을 따라

움직인다고 이해할 수 있구요. 더욱이 여기서 욕망은 프로이트나 라캉이 말하는 결여로서의

욕망이 아니라 생산하는 욕망이라고 가타르가 제시하지요...

 

소셜 네트워크로서 마크 쥬커버그가 예상한 세상은 이러한 욕망하는 기계로서 확장되어 가는

개인의 그룹화 혹은 소통의 집단화랄까요...거기에 착안한 것 같습니다.

당장 수 많은 님의 친구들이 댓글을 통해 개인에게 내재되어 있었으나 미처 자각하지 못한

소통에 대한 욕망을 님의 의문에 쏟아놓고 있잖아요..그곳의 시작이 동굴인줄 알면서 우리는

마치 광장으로 다가가는 통로인 것처럼 기어들어 가지요...결코 완전한 개인으로 이루어진

광장이 아니라 또 다른 동굴로의 이동일 뿐인데...쥬커버그는 그 통로를 계산한 것 같습니다...

영악하고 분명 미래적인 인물인 것만은 틀림없네요...

 

그럼 우리는? 이라는 우문에 대한 갈등만 남을려나요...

 

무엇보다 님이 지적하신 미디어가 지녀왔던 기존 정보에 대한 소통의 역할 혹은 통로와 같은

의미로 지금의 소셜 네트워크가 비교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기능은

현장에서의 소통의 연계 즉 즉각적 소통의 일방적인 기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미디어의 기본적인 기능인 대중과 개인으로서의 비교가 아닌 일방적 개인이 다수의 개인에게

일방적으로 계산되거나 감정에 기인한 소통이라는 형식의 개인 정보의 공개라고 할 수 있지

싶네요...뭐...그런 의미로 페이스북의 기능을 설명하자면 저 자신도 일방적 소통이라는

욕망하는 기계의 애용자라고 할 수 있지요...

 

 하하 댓글을 올렸다는 것이 소통이 목적이 아니라 견해에 대한 견해로서의 소통을 목적으로

했다는 것을 이 오전에 다시 확인되네요...제가 사이버 공간에서의 미디어 역할을 하는 대화창을

사용하다가 컴퓨터의 기능장애로 인해 속도가 느려지거나 전환이 잘 안 되어 부팅에 문제가

생기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심하면 컴퓨터를 때려부수기 일보 직전으로 감정이 거칠어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시를 창작할 때와 일기를 쓸 때만은 노트...에 필기도구로 하려고

한 뒤부터 많이 자제되어졌지만요...이는 대표적인 일방적 소통에의 욕망에 의해 표출된 감정이라고 보여지거든요...빈섬님도 그런 경우 없었나요?

 

페이스북에서 댓글을 통해 공유되는 감정들은 그래서 그 몫으로 소통되는 대화라고 생각하기에

갈등을 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지 싶네요...뭐...인적드문 산에도 통신이 터지기만 한다면 세상과의 인연이 이어져 있는 것처럼 느끼며 페이스북을 두두리는 분들이 계신 것만 보아도 인간에게 내재된 소통에의 욕망은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지 싶어요...일방적 소통에 따른 희생자가

생기지만 않는다면 말이죠...민주적 의사 공간으로서 소셜네트워크가 기능하기 위한 장점을 위해서는 지나치게 이기적인 소통의 강요를 나타내는 개인은 수 많은 네트워크 사용자인 개인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정화되지 않을까 싶네요...하하 저 길어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