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어디서 무슨 병 깊이 들어
- 김명인 -
길을 헤매는 동안 이곳에도 풀벌레 우니 계절은 자정에서 바뀌고이제 밤도 깊었다 저 수많은 길 중 아득한 허공을 골라 초승달 빈 조각배 한 척 이곳까지 흘려 보내며 젖은 풀잎을 스쳐 지나는 그대여 잠시 쉬시라 사람들은 제 살붙이에 묶엿거나 병들었거나 지금은 엿듣는 무덤도 없어 세상 더욱 고요하리니 축축한 풀뿌리에 기대면 홀로 고단한 생각 가까이에 흐려 먼 불빛 살갗에 귀에 찔러 오는 얼얼한 물소리 속 내 껴안아 따뜨한 정든 추억 하나 없어도 어느 처마 밑 떨지 않게 세워 둘 시린 것 지천에 널려 남은 길을 다 헤매더라도 살아가면서 맺히는 것들은 가슴에 남고 캄캄한 밤일수록 더욱 막막하여 길목 몇 마장마다 묻힌 그리움에도 채여 절뚝이며 지는 별에 부딪히며 다시 오래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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