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의 문학서재 §/◎ 칼럼 & 논술문

[논술강의 16.] 사물의 인식방법 차이에 따라 대상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변산바람꽃 2011. 6. 25. 09:29

 

[논술강의 16.] 사물의 인식방법 차이에 따라 대상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이의 말이 있다. 이는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외압에 못 이겨 지동설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지 못했지만 진리를 주장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여실히 드러낸 말이라 하겠다.

 

홍대용이 자신의 저서 ‘담헌집’에서 ‘큰 의심을 품지 않은 사람은 깨달음이 없다. 의심나는 것을 쌓아 놓고 모호하게 두는 것은 캐묻고 따지는 것만 못하다.’라고 밝힌 것은 갈릴레이의 태도와 사뭇 유사한 점이 있다. 천동설을 강의했던 갈릴레이가 진리에 대해 의심을 품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선회한 것은 그만큼 사물 인식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나타낸다. 이렇듯 사물에 대해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라는 주제는 동서고금을 통해 인간이 궁리해 온 통시적인 것이다.

 

 

사물의 인식 방법은 ‘인간이 사물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식의 주관성(주관주의)’이다. 박지원이 지은 ‘열하일기(熱河日記)’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는신의 마음 상태에 따라 동일한 사물이 어떻게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듯이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에서 바라보는 사물의 모습과 평정심을 잃은 상태에서 바라보는 사물의 모습은 다를 것이다. 이러한 사물 인식 태도는 외부 환경과 관계없이 평정심을 유지한 채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의가 있다.

 

‘강물 소리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이러한 모든 소리는 올바른 소리가 아니라 다만 자기 흉중에 품고 있는 뜻대로 귀에 들리는 소리를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박지원의 글처럼 사물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박지원의 사물 인식 태도는 진리를 어떻게 객관화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주관적으로 평정심을 유지한 채 사물을 인식했다 할지라도 그 진리는 결국 개인이 생각하는 주관적인 견해일 수 있다. 프톨레마이어스의 ‘천동설’에 대해 주관적으로 의심을 품고 ‘지동설’을 발표한 코페르니쿠스의 경우 자신의 견해를 증명하거나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면 혼자만의 망상에 그칠 수 있었다. 사물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바를 검증받을 수 있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반면‘어떠한 사람의 지식도 그 사람의 경험을 초월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로크의 말처럼 인간이 사물을 인식할 때는 자신의 경험에 입각한 부분적인 모습만을 진리라고 여기는 오류가 있다. 보이는 것의 주관성에 머무르지 않고 객관적으로 사물을 인식하려는 데에는 의의가 있지만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한계가 있다. 태양의 모습을 보는 관찰자가 보는 위치와 시간에 따라 태양에 대한 판단이 다른 것처럼 대상을 올바르게 인식하였지만, 사물로서 대상인 태양을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하루를 지켜 본 후에 태양과 달의 참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다. 코끼리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조금 떨어져 멀리서 전체적인 코끼리의 모습을 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님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경험에 입각해 인지된 요소만을 진리로 치부해 버렸다. 어느 한 요소를 경험적으로 인식했다고 해서 마치 전체를 아는 것처럼 인식한다면 이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다름 아니다. 이와 같이 각각의 나무만을 바라보는 사물 인식 방법에서 숲을 볼 줄 아는 하나의 체계적 구조를 갖추어야 인식의 대상으로서 그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접근할 수 있다.

 

사물을 올바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평정심을 유지한 채 이성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감각과 경험만으로 인식한 세계는 각자의 경험과 감각이 다를 수 있으므로 제대로 된 사물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주관적 인식을 가질 수 있으므로 객관성을 띨 수 있는 절차와 개방적인 인식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아집만으로는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으며 다른 이와 충분한 공감, 토론 등을 통해 오류를 줄여 나갈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감각을 수단으로 삼아 진리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인간이 사물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식의 부분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른 시각에서는 똑 같은 사물을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해 심사숙고해 보고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은 없는지 신중하게 진리에 도달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성급하게 사물로서 대상에 대한 판단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이다.

 

절대 전능한 신과는 달리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인간은 근대로 오면서 신의 위치를 어느 정도 물려받았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사물을 올바로 인식하기에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각 관찰자가 보는 위치에 따라 얼마든지 사물은 달리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사물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 인간은 부분들 속에 숨겨져 있는 진리의 편린들을 하나의 체계로 완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외부 환경에 지나치게 휩쓸리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시각 차이를 좁혀 가면서 불완전한 부분들을 완성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스로 총명한 것을 자신하는 자에게 이를 경계하고자 한다.’라는 박지원의 말처럼 ‘유아독존(唯我獨尊)’은 없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좀 더 겸허한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신의 권위에 도전하여 바벨탑을 쌓으려 한 오만을 버려야 한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사물을 올바르게 인식하게 위해서는 각자가 인식한 진리의 부분들을 모으고 조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는 사물 인식에 있어서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이해하려는 한계를 조심하자는 것이지 인간이 사물을 새로운 각도로 이해에 접근하기 위한 도전이 무모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르는 것을 이해하고 완성되지 않은 대상의 이해를 위해 접근하려는 모든 창조적 노력은 올바른 사물 인식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강의 때 툭하면 했던 ‘강미는 최고야’라는 내 자랑은 나를 여러분에게 대상으로서 제시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생각해 달라. 하하...여러분은 수 많은 강의를 통해서 강미라는 사물로서 대상에 대해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조합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