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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강의 38.]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의『트러스트』엿보기

변산바람꽃 2011. 12. 12. 00:27



[논술강의 38.]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의『트러스트』엿보기


 

여러분은 경제학 하면 무엇을 먼저 연상하는가?

 아마도 대부분은 경제의 현재적 상황을 분석하고 그것을 토대로 다가 올 경제의 흐름을 예측하기 위한 총체적 과정을 경제학이라고 보통은 대답할 것이다. 현재 이 강의를 듣는 여러분들은 이번에 서울대 사회과학부를 지원했다. 여러분이 합격한다고 전제한다면 물론 합격할 것으로 나는 믿지만...아마도 여러분은 2학년이 되면 정치외교학을 선택할 지 경제학을 선택할 지를 정하게 될 것이다. 그때 경제학을 선택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경제학에서는 흔히 인간이 합리적이고 자신의 이익 추구를 위해 사는 존재라고 가정한다는 것을 먼저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과 나눌 이 책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의 '트러스트 TRUST' 에서는 이런 가정을 부분적으로 부정한다. 100%는 아니라 할지라도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인간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고 이익보다는 다른 것들-관습, 사회적인 분위기, 문화 등-을 더 추구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최근 역사의 종언 (다양하던 제도가 민주주의, 자본주의 모델로 귀결되는 듯이 보이는) 의 시대에 지속적인 사회발전을 위해 우리가 고려해야 할 그러나 그동안 숱한 학자들에 의해 간과되어 왔던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행동이 단순한 이익이 아닌 여러 가지 문화적 요소들의 복합에 의해서 결정되고 이러한 인간의 행동은 다시 관습, 도덕, 협동심 같은 것들을 만드는데 이러한 것들을 저자는 ‘사회적 자본’이라고 정의하고 그 핵심은 TRUST 즉, 신뢰라는 것에 있다고 한다. 저자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를 찾아보자.


 

사회 속에서 개인이 계약을 하고 거래를 하는 것을 보장해줄 수 있는 법체계의 확립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모든 경우에 법적인 제재를 받으면서 조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구성원의 자발적인 신뢰와 도덕성은 경제적인 영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회구성원 간에 신뢰가 부족하다면 개개인은 작은 계약을 하나 맺을 때에도 상대방의 진실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의심을 품고 조사하여야 하고, 법적인 보장을 받기 위해 작은 일도 꼼꼼히 문서화하여야 하는 수고를 겪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비용을 수반하므로 구성원간의 신뢰가 약한 사회에서는 필요 이상의 비용이 낭비되게 된다.


 

저자는 또한 신뢰를 사회적 자본으로 중요시 여기는 이유로 규모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다. 구성원간의 신뢰가 깊은 나라에서는 대규모회사를 설립하기가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용이하다. 근래에 들어서 다운사이징이나 범위의 경제 등으로 규모에 대한 선호는 가라앉는 추세에 있지만, 경제의 많은 분야- 특히 수출을 하려는 첨단 전자 분야 등-에서는 규모가 큰 회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마케팅의 규모나 고유의 브랜드를 생산하기가 용이하다는 등의 장점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점을 고신뢰 사회 국가, 저신뢰 사회 국가로 나뉜 몇 몇 대표적인 나라들을 살펴보면서 증명하고 있다.


 

저자가 대표적인 고신뢰 국가로 든 나라는 일본과 독일이고 저신뢰 국가로는 중국과 이탈리아, 프랑스, 우리나라이다. 미국은 과거 고신뢰 국가적인 면모가 많았으나 최근 저신뢰 국가로 이행하는 조짐이 보이는 중간적인 입장에 있다. 대부분의 저신뢰 국가의 공통점은 가족끼리의 유대가 너무 강해서 국가와 가정 중간에 위치해야 할 중간적인 사회조직의 형성을 저해했다는 점이다. 가족은 모든 사회에서 그 기본이며 근간이 되는 공동체고 가족기업은 경제 현상에서 그 첫 단계에 있다. 그러나 국가가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족 규모를 뛰어넘는 커다란 규모의 회사를 설립해야 하는데 가족을 극도로 우선시하는 문화에서는 그러한 규모의 기업 출현은 굉장히 어렵다.


 

우선 그 대표적인 예로 중국을 볼 수 있는데, 중국은 널리 알려진 바처럼 전통적인 유교의 영향으로 족벌, 친족, 가족 등을 매우 중시하는 나라이다. 이는 혈연관계 밖에서는 입양을 극도로 꺼리는 문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가 성장에 방해가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최초의 가족 기업이 성공을 하면 그 기업은 점차적으로 확장을 꾀하게 되는데 이때 혈족을 중요시하는 중국에서는 혈연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경영을 맡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창업 1세대들의 노력이나 능력, 카리스마 등으로 아주 성공적이었던 기업들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추세로 2세대를 거쳐 3세대까지 이어가는 것은 찾아보기가 드물다. 따라서 많은 기업들이 2세대를 거치면서 축소되고 심지어는 파산에 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균등분배 상속을 하는 중국에서는 세대가 거듭될수록 토지나 기업은 쪼개어져서 더욱더 소규모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탈리아는 남부, 중부, 북부 모두 다른 양상을 나타내는데 사회적 자본의 형성이 낮은 지방은 남부이다. 이는 이탈리아의 남․중․북부가 각기 다른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카톨릭 교회의 영향과 과거 지방분권적인 봉건적인 요소보다 강력한 전제주의에 의하여 지배되어 온 남부는 대규모 기업의 비중이 굉장히 낮다. 이탈리아의 다른 지방이 지방분권적인 영향으로 자치적인 사회중간단계의 조직을 형성하는 것에 익숙한 반면 남부는 전제 군주 하에서 그러한 것을 발전시킬 기회가 적었고, 절대적인 가족주의를 띠는 카톨릭 교회 안에 묶이면서 이러한 성향이 더욱 굳어진 것이다.


 

프랑스는 특이한 예이다. 프랑스인들은 앞의 두 나라처럼 가족주의가 나라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경제에서 국가가 개입하지 않은 대규모 기업을 발견하기란 힘든 일이다. 이러한 것에 원인이 되는 프랑스인들의 대표적인 성향으로 그들이 대면적인 관계를 기피한다는 것이 있다. 이는 프랑스에 과거 강력한 군주제가 형성되어 있던 것과 연관이 있다. 프랑스의 역사상 절대군주가 발달하였으므로, 그에 대항하여 다른 사회적 조직을 형성하는 문화가 프랑스에서는 발달하여 있지 않다. 프랑스인들은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다가 어느 순간에 폭발하듯이 고치는 면이 있다. 이는 과거 내가 들었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 모두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나라지만, 그 두 나라가 걸어간 길은 굉장히 달랐다. 영국인이 피가 없는 혁명으로 서서히 서서히 국민들의 권리를 신장시켜 나간 반면 프랑스는 혁명으로 수많은 피로 나라를 물들인 끝에 그들의 권리를 쟁취했다. 이러한 역사가 두 나라 국민성을 바꿨다고 하는데 영국인이 집을 수리할 때에는 집의 뼈대는 그냥 둔 채로 보강 공사를 주로 하면서 집을 고쳐가는 반면, 프랑스에서는 집을 전부 부수고 다시 짓는 식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렇듯 역사적인 사건이 국민의 성향을 이렇게 결정짓는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 모델은 한국이다. 한국은 프랑스보다 더 특이한 경우로 한국의 경제를 살펴보면, 그 외향은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 대기업의 내면에는 중국식의 가족주의 경영이 숨어 있다. 한국의 이런 특이한 모습은 우선 가장 크게 국가 주도적인 경제성장을 한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국가가 주도한다고 할지라고 사회적 자본이 발달하지 않은 국가에서 이러한 대규모기업의 성공은 박정희라는 지도자의 탁월함과 특이함에서 나온다. 그는 많은 점에서는 비판을 받지만, 만약에 다른 국가에서 지도자가 박정희만큼의 경제적 통제력을 가졌다면 그 나라는 틀림없이 필리핀같이 부패와 부정으로 망하는 길을 걸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분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후쿠야마 교수의 분석이다. 나는 오늘 강의에서 객관적 비판자가 아니라 객관적 분석가로서 여러분과 이 책 '트러스트'에 대해 나누는 것이다.)


 

또한 한민족의 역사를 가져온 국가에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형성된 강한 민족주의도 큰 몫을 해냈다. 한국인들은 국가성장을 할 때 나라를 살리자는 식의 정부 캠페인을 잘 따랐다. 또한 교육을 중시하는 엘리트주의와 이러한 대다수 엘리트들이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성공의 길로 여기고 있는 사회분위기도 한 몫을 한다. 또한 우리는 한국에서 최근 다양한 사회중간조직들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학벌과 지역성으로 인한 모임과 사회적 친화를 바탕으로 모인 취미클럽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분단의 결과로 형성된 한국의 군대 역시 강한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기독교적 영향도 굉장히 강하다. 한국은 아시아권에서는 드물게 기독교의 비중이 아주 높은데 기독교인들이 지도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높고 이러한 교회 역시 사회 중간적 조직과 유대감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고신뢰 사회로 분리된 일본과 독일은 중앙권력(군주나 중앙집권권력이)강했던 역사가 없고, 국가와 가정 사이를 이어 줄 사회적 조직이 아주 잘 발달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이 두 국가는 세계적인 규모의 회사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이렇게 된 배경과 역사는 아주 상이한데 먼저 일본의 경우에는 다른 유교권 국가들과는 달리 혈연관계 이외에서 자연스럽게 입양을 받아들이는 역사적인 배경- 이로 인하여 혈연과 관계없이 실력에 따른 후계자를 인정하는 문화가 발생할 수 있게 된다, 천황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지만 그는 나라의 실권이었던 적이 없고 실권은 항상 막부나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다. 특히 종가문화(혈연적으로 연결되지 않았으나 가족과 같은 집단)의 발달은 오늘날 회사를 가족같이 생각하는 분위기에 일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종신고용제 같은 성문화되지 않은 다양한 제도를 통하여 경영자와 노동자간의 신뢰가 유지되는 국가이다. 이러한 문화 때문에 일본에서는 린 생산제도와 같은 노동자에게 작업통제권을 주는 작업법이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의 경우 고신뢰의 형성 원인을 길드의 발달과 중세적인 분권주의가 계속적인 이어진 역사, 도제제도를 통한 기술공의 높은 지위를 통해 찾을 수 있다. 길드를 권위에 도전하는 위험한 조직으로 보고 폐쇄한 다른 유럽의 나라와는 달리 독일에서는 꾸준히 길드가 그 명맥을 유지하였으며 이는 후에 도제제도의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오랫동안 한 국가로 자립하지 못하고 쪼개져있던 역사는 독일인에게 독자적인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아집을 만들어주면서 외부인에게는 잔인하지만 내부인 끼리는 강한 유대감을 보이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독일에서의 높은 신뢰는 블루칼라 당 화이트칼라의 비율이 낮은 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도제제도로 인한 기술공들의 높은 지위는 블루칼라가 작업에 대하여 통제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고, 이는 관리계층, 화이트칼라를 많이 필요로 하지 않게 되어 비용상으로도 이익을 가져온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개인주의적인 국가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미국의 일면만을 본 것이다. 개척시대부터 미국은 대규모 기업이 존재하고 발전한 나라이다. 미국 이라는 국가 건설에 핵심, 신교는 혼자서 기도하고 구원받는 신앙으로 인하여 개인주의의 원천이 되지만, 국교를 정하지 않음으로서 신앙을 더 강화시킬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를 통하여 다양한 중간조직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미국은 실제로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와 사회를 매개하여 주는 사회조직이 굉장히 발달한 나라이다. 이러한 공동체주의의 영향으로 미국인들은 실제로 대규모 회사에서 일을 잘한다.


 

미국은 단순한 개인주의 국가이었던 적이 없다. 미국에서 테일러주의보다는 포드의 온정주의가 더 성공하였고, 고신뢰사회 에서나 가능한 일본의 린 생산방식을 도입하여 성공한 것도 이러한 점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전통이 깨어지고 있다. 늘어나는 소송의 비율로도 증명되는 이러한 사태는 미국에서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공동체주의적인 성향을 누르고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미국 내의 흑인간의 신뢰부족 등의 문제는 미국의 앞날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모른다.

 

이제 남은 핵심적인 문제는 사회적 자본의 보존과 축적에 있다. 하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려는 것은 성공할지 어떨지 보장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비용이 요구된다. 문화적 자원으로 인한 사회적 자본이 국가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이 책에서 저자인 후쿠야마교수는 경제학의 기본 가정을 뒤엎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상당부분 저자의 논지에는 힘이 있고 일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과 이를 이용해 대규모 기업을 일으키는 모습의 분석. 다양한 국가의 국민들이 그들의 정서에 문화에 그러한 정도의 사회적 자본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만든 그들 각자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되는 아주 분명한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현상들까지...... 그중에서도 한국을 분석한 부분은 한국인인 내가 보기에도 아주 예리한 지적이 많아 아주 인상적이었다.


 

사실 처음 이 책의 저자가 일본계 미국인이고 일본을 고신뢰 사회로 분석한 것을 보고, 일본만을 칭찬하고 찬양할 것 같은 편견을 가지기 쉽고, 우리는 흔히 일본인이라면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많이 왜곡해서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저자는 우리 역사와 국민정서의 꽤 깊은 부분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느낌은 개인적으로 받게 되었다. 물론 고대사에 대한 인식은 어떨는지 모르지만...여러분은 그의 느낌까지 이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책을 통해 그의 견해에 접근하고자 아는 것이니까...그는 특히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상당부분 아주 정확하고 놀라웠다. 저자는 박정희 대통령의 개인적인 카리스마와 청렴함으로 포장된 독재에 대해 유연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절대빈곤은 절대악- 인간을 피폐하게 하고 먹고 사는 것 이외의 다른 것들, 도덕이나 문화 등등 은 생각지 못하게 한다고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박정희식의 개발정치의 결과는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을 뿌리내리게 한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도 않는다는 것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 흔히 우리는 학벌, 지연을 늘 나쁘게만 생각했는데 그것도 중간조직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도 끼친다고 한 후쿠야마교수의 견해는 일견 신선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이 사회적 자본도 양면성이 있다. 외부인과 내부인처럼. 내부인끼리의 유대가 강하면 필연적으로 외부인은 경계를 하고 적대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 그렇지만, 그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든 어떻든 간에 우리 사회가 신뢰가 사회 곳곳에 깊이 뿌리내린 밝은 사회가 되기 위한 정치경제적 관점이 필요하다. 경제는 정치 정책적 결과로 부터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최근, 많은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의 비리와 또 우리 사회 깊이 박힌 책임지려 하지 않는 분위기가 고쳐지지 않는 것은 그만큼 우리 경제가 정치적으로 탄력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제 오늘의 텍스트인 '트러스트' 에 대한 분석을 마무리하자.


인간의 경제적 삶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행동에 대한 이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아담 스미스도 사회적 관행, 도덕, 관습 등을 배제하고는 경제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경제적 삶은 사회적 삶에 기초하고 있으며, 사회적 삶의 성공은 사회적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로 프랜시스 후쿠야먀 교수의 경제적 신념을 느끼게 한다는 것에서 이 책은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강의를 마친다.


(강미/변산바람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