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미 -
끊임없이 부딪쳐 보자며
한 철 눈만 뜨고 살아온 것 같은
지리산 세석평원도
어둠을 지나칠 수 없었는지
우두커니 누워서
느닺없이 쏟아지는 비를
온 몸을 열어 받아든다.
푸르른 소름 돋으며 홀로 선
회화나무는 지나는 바람에도 흔들리지만
백소령에서 한 오백년
희디 흰 속살로 살아낸 뼈만 남은
고사목처럼 나는,
생의 벼랑 아래에서 한 철을 지냈다.
아아, 한 순간
꽃에게 꽃잎이었던 것과
나무에게 있어 나뭇잎이었던 것
사람에게 있어 절대적인 사랑이었던 것
한 순간 붉은 피와 같은 것들
하늘이나 바다와 같이 푸르렀던 것들
펼치고 날아가는 날개도 없이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냐.
저 배반의 뜨거운 역사를 품고
바람처럼 흘러서 바람으로 흘러가는
지리산에서 나는,
맨발로 시간도 멈춰 놓고
한없이 걷고 있다.
이제는 수많은 한숨이 안개처럼 흐르는
지리산 자락에서 나는,
때로 선 채로 잠이 들거나
돌이 되거나 노송이 되거나
지나가는 새들이나 마른 풀에게
살 한 점씩 적선도 하면서
생의 한 가운데를 지나
너에게로 바람처럼 흘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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