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의 문학서재 §/◎ 詩 서재

바람처럼 흘러가야겠다. / 강미

변산바람꽃 2012. 6. 4. 03:58

    바람처럼 흘러가야겠다.
    
                             - 강 미 -
    끊임없이 부딪쳐 보자며
    한 철 눈만 뜨고 살아온 것 같은
    지리산 세석평원도
    어둠을 지나칠 수 없었는지
    우두커니 누워서 
    느닺없이 쏟아지는 비를
    온 몸을 열어 받아든다.
    푸르른 소름 돋으며 홀로 선 
    회화나무는 지나는 바람에도 흔들리지만
    백소령에서 한 오백년 
    희디 흰 속살로 살아낸 뼈만 남은 
    고사목처럼 나는,
    생의 벼랑 아래에서 한 철을 지냈다.
    아아, 한 순간 
    꽃에게 꽃잎이었던 것과
    나무에게 있어 나뭇잎이었던 것
    사람에게 있어 절대적인 사랑이었던 것
    한 순간 붉은 피와 같은 것들
    하늘이나 바다와 같이 푸르렀던 것들
    펼치고 날아가는 날개도 없이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냐.
    저 배반의 뜨거운 역사를 품고
    바람처럼 흘러서 바람으로 흘러가는
    지리산에서 나는,
    맨발로 시간도 멈춰 놓고 
    한없이 걷고 있다.
    이제는 수많은 한숨이 안개처럼 흐르는
    지리산 자락에서 나는,
    때로 선 채로 잠이 들거나
    돌이 되거나 노송이 되거나  
    지나가는 새들이나 마른 풀에게
    살 한 점씩 적선도 하면서
    생의 한 가운데를 지나
    너에게로 바람처럼 흘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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