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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이야기 3.] 슬픈 감자, 감자의 결점

변산바람꽃 2012. 10. 17. 01:30





[감자이야기 3.] 슬픈 감자, 감자의 결점

 

 


*감자는 나병을 일으킨다...?

 

과거 유럽인들은 열과 전염병을 피가 감염된 결과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뿌리가 피를 부패시킨다면 뿌리는 또한 전염병을 확산시킨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감자는 대표적인 뿌리줄기식물이었다. 1620년경 영국에는 감자가 “나병”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생겨나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 퍼졌다. 껍질이 거칠다고 감자가 피부병 증세를 일으킨 것은 아니었지만, 17세기에는 다양한 피부병을 지칭했던 “나병”이란 단어에 왜 그리도 사람들이 집착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그러나 생김새와 질병의 상관관계를 근거로 판단을 내렸던 초본학자들조차도 어떤 식물을 연상시키는 질병이나 신체 부위를 이 식물을 통해 치료할 수 있다고 했을 뿐이지, 이런 식물이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다른 뿌리줄기식물들-특히 부자들의 음식인 고구마-은 이런 혐의를 추호도 받지 않았다.

 

전염병과 하층 계급은 서로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관용어로서의 “나환자”라는 말이 주는 어감처럼, 나병은 쉽게 접근할 수 없거나 불결한 어떤 것을 연상시켰다. 질병과 채소의 관계에 대해 17세기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유래부터 오점을 남겼던 감자는 나환자 자체와 급속히 동일시되었다. 이런 탓에 감자를 받아들인 유럽 사람들은 감자로부터 얻은 그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이득에도 불구하고-때로는 그것 때문에- 2백 년이 넘도록 계급적 편견이 담긴 말들을 해댔던 것이다.

 


*감자의 결정적인 결점은 그것이 바로 식물이라는 사실이다.


감자가 나병과 관계가 있다는 소문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16세기말과 17세기초의 영국인들이 보기에 감자는 결정적인 결점을 갖고 있었다. 즉 감자는 식물이었던 것이다. 그 시대 요리 유행과 생활 관습을 주도해 나갔던 귀족과 

 부자들은 살코기에 탐닉해 있었다. 영국인들은 뼈가 딸려 나오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과일은 항상 환영을 받았고, 당도가 높을수록 품질이 더 좋은 것으로 대우받았다. 그러나 사순절 기간이면 알 수 있듯, 식물은 낮은 위치를 차지했다. 고기를 감자와 함께 먹는 식습관은 영국인들에겐 생소한 것이었다.

 

감자는 친숙한 음식도 매력이 있는 음식도 아니었다. 그들은 고기에 채소를 곁들여 먹을 때는 가장 좋은 채소를 골랐다. 엉겅퀴와 식물인 솜엉겅퀴가 그것들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감칠맛나는 채소들은 먹을 수 없었다. 양파, 부추, 서양방풍나물의 뿌리처럼 값싼 뿌리줄기식물들을 먹었다.

 

뿌리줄기식물에도 서열이 있었다. 트라이언은 어떤 것은 다른 것에 비해 “사람의 본성에 더 가까운데”이는 이것들이 얼마나 땅 표면 가까이서 자라는가, 그리고 이것들이 언제 여무는지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늦가을에 수확된 식물은 음식으로 적합하지도 건강에 좋지도 않으며,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뿌리줄기식물은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뿌리줄기식물보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이다. 땅속 깊이 자라는 뿌리줄기식물은 더욱 해롭다고 믿었다.

 

감자는 부추나 양파보다 더 땅속 깊은 데서 자라며 심지어 알이 잎에 붙어 있지도 않았다. 부추를 수확할 때는 땅 위에 자라 있는 줄기를 잡아당기면 그만이었지만 감자를 수확하려면 땅속을 파헤쳐야 했다. 이 때문에 감자는 전혀 다른 세계, 경건하거나 주술적이거나 초자연적인 세계에 속해 있는 것이었다. 트라이언이 추운 기후에서 늦게 성장하는 뿌리줄기식물에 대해 경고했을 때 유럽의 북위도 지방에서 짧은 기간 내에 자라는 감자보다 더 좋은 경고 대상은 없었다.

 

(4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