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의 문학서재 §/◎ 칼럼 & 논술문

[논술 주제강의 4.] 근시안적인 사교육 대책에 대하여...

변산바람꽃 2010. 10. 9. 02:40

 

      근시안적 사교육 대책에 대하여...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는 공교육에서의 경험을 가졌으면서 현재는 사교육 현장에서 지금 내 앞에 있는 여러분에게 대입과 관련된 논술 교육을 하고 있다. 난 현재 사교육 전문가라는 입장인 것이다. 그럼에도 난 사교육이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서 나름대로 분명한 정체성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마치 새가 더 높이 멀리 날기 위해서 양 날개의 균형을 활용하여 힘차게 저어야만 하듯이 우리 교육 현실에서 공교육과 사교육의 역할은 분명이 있다고 본다.

 

지금부터 30년 전인 1980년 7월30일 전두환 등의 신군부가 초헌법적 권력을 행사하던 때, 국가보위비상 대책위원회에서 과외금지 조치를 단행했다. ‘망국과외’라는 큼지막한 활자가 신문지면을 장식하던 때였으니, 과외를 금지하는 조치는 신군부의 서슬 퍼런 호기의 과시를 뛰어넘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 당시에도 이미 과외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라고 주장되었는데, 그 고질을 군인들이 나서서 화끈하게 도려낸다고 하니, 마치 혁명정부가 과중한 세금을 덜어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냈던 것이다.

그러나 그후 10여 년은 금지의 원칙이 어떻게 훼손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를 만들어냈다. 비밀과외가 성행하는가 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금지의 원칙은 있는 듯 없는 듯한 것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런 현상은 법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진리를 방증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1980년도의 과외망국론이 한 가장의 어깨 위에 쌀 한 섬을 올려놓은 부담을 말하고 있다면, 30년이 지난 오늘의 사교육비 부담은 가장의 어깨에 아마도 쌀 열 가마를 올려놓은 정도 아니 그 이상일 것이다. 과외 또는 사교육의 부담이 누적적으로 증가되어온 결과다. 더욱 안 좋은 것은 그것이 구조화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그것이 망국에 이르게 할 정도라고 비난하던 때조차도 그것이 구조화에 이르지는 않았다. 이제는 과외를 과외라 부르지 않고 사교육이라 부른다.

과외 교육의 구조화를 반영한 표현법이다. 이제 과외든 사교육이든 이를 망국병이라고 칭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학부모의 부담은 망국병이라고 칭하던 때의 그것에 비해 수배에서 수십 배로 증가했고, 부분적이었던 것이 거의 전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변했는데도 말이다. ‘망국’이라는 표현이 과장된 것이기는 하지만 부조리를 극명하게 드러내주기에는 적격이다. 부조리를 분명하게 가시화해야 경각심을 가지고 치유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교육 참모들이 ‘파격적 사교육 대책’을 내놓았다가 왈가왈부 논란 중에 유야무야 되어버렸다. 그들이 내놓은 ‘교육개혁 보고서’에는 사교육 대책뿐만 아니라 공교육을 내실화하기 위한 정책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먼저 학원의 심야교습 금지 방안은 전두환식 과외금지 정책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는데, 금지의 원칙이 끝내는 용두사미로 퇴락하고 말았듯이 그다지 혁신적이거나 창의적이지 못한 졸속하고 근시안적 발상에 불과하다.

나머지 정책 방안들은 살피건대 고입 혹은 대입 선발 방식(추첨제, 내신반영 방법, 내신평가 방법)의 변화를 통해 공교육을 건전화 시키겠다는 것과 교원평가제 조기 실시, 방과 후 학습 프로그램의 개선 등을 통해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안들이 과연 ‘개혁’이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는 것들인지 의문스럽다. 기왕에 다 시행해보았던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결과가 현재의 상황이고, 이 상황이 또 다시 문제인데, 헌 칼을 다시 쓰는 것은 현명한 처방이 아니다).

 

이런 가정을 해 본다.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사교육에서 다루는 내용이 다르고, 이런 의미에서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다면, 이것은 우리 사회의 장점이자 미덕이라고 치켜세울 수 있을 것이다. 배움에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면 학교에서는 그 나름의 것을 배우고, 다시 학교 밖에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면 이 사회는 1년 365일이 즐거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교육이나 사교육이나 똑 같은 내용을 가르친다. 어찌 보면 비극이요, 또 어찌 보면 희극이다.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중· 고등학생 아니 초등학생까지 포함해서 아이들이 현실적으로 열중하는 것은 대부분 도구적 과목들인데, 학교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그것들에 치여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그들에게 무슨 낙이 있을까. 그들에게 정신적 황폐화만 남을 뿐 말 그대로 배움의 즐거움이란 추상적인 말놀음에 불과할 뿐이다.

 

공교육을 내실화해서 비극적·희극적 상황은 물론이고 낭비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 출발은 미세한 방법론의 변화가 아니라 학교를 내실화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선생님들을 행정 업무에서 해방시키고, 그들이 가르칠 수 있는 범위의 학생들을 데리고 가르치는 일에만 열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세부적인 입시 정책을 바꾸어도 늦지 않으며 엄격한 교원평가를 해도 늦지 않다. 이런 토대와 기초의 확충에 파격적인 노력을 할 때 비로소 개혁이라는 이름을 달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이 강의는 아마도 여러분에게 극히 현실적인 문제이면서도 문제의식으로는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정책이 아무리 바뀌어도 근본적으로 교육이 사회적 성공의 수단으로서 작용하는 풍토와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은 수요공급에 따라 사교육은 필요가치를 지닐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내 강의를 듣고 있는 동기도 대학가기 위해서 아닌가...이것이 문제이다. 대학이 사회적 서열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이것이 문제이다.

사교육도 공교육도 모두 정체성을 확보하고 자기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정권이 그 어떤 정책을 제시한다 해도 우리 사회의 서열중심의 가치관이 변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건전한 사교육에의 전망에 대해서 부정적인지도 모 다. 마찬가지로 공교육에 대해서도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교육이 수요와 공급의 자본 논리에 의해 수단화되는 사회에서는 나는 여러분에게 희망을 말할 수 없을 지 모르겠다. 미안하다.

그래도 여러분에게 아래의 주제로 사교육과 공교육을 연관한 토론을 자유롭게 개진해 볼 것을 권한다. 생각해 보라. 여러분은 공교육도 사교육도 동시에 해야만 하거나 하고 있다. 여러분이 어쩌면 우리 사회의 교육적 딜레마를 진실하게 말할 수 있는 세대인지 모른다. 그래서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여러분이 아래의 주제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정리해서 안건토의처럼 진행하면 어떨까?



1 원칙이 원칙으로서 가치와 의의를 갖기 위한 조건에 대해 논의해 보라.

 

2 사교육의 구조화 현상을 비판적으로 논의해 보라.

 

3 학생의 입장에서 공교육의 내실화 방안을 논의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