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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에세이 (7) - 비가 내리길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

변산바람꽃 2011. 3. 29. 03:33

 

 

 

 

 

Jazz 에세이 (7) - 비가 내리길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

 

 

 

 어느 영화잡지를 읽다가 요사이 가장 잘나간다는

  시나리오 작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서른 근처에 그는 막노동판에 나가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미래도 없이 노가다 판에서 일을 했답니다.

그 바닥에서 뼈가 굵은 노인들과 소주를 사발로 들이키며

허름한 인생의 바닥을 들여다보았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인생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가만히 한번 지켜보았던 것 같다고...'

 

나 또한 요사이 내 인생이 과연 어떻게 진행될까...

모든 일손을 놓고 가만히 내 시간들을 들여다보고 싶을 지경입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두고두고 피곤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직은 아니라고,

좀 더 지켜보자고 내 안의 누군가가 속삭입니다.

 

사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원치 않는 삶을 사는 사람보다

열 두 배는 더 고생하고 스무 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던

어느 여성 영화감독의 말이 목에 턱턱 걸려들기도 합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가정생활에 실패하고 몸 버리고 마음 다치며

내리는 비에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방황하는 내 또래의 누군가에

비하면 내 사회생활은 그런 데로 별 탈 없이 실패도 잘 넘어가며

무너지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긴 합니다. 그러니 누군가,

'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군... 정신차려!'

죽비로 뒤통수를 사정없이 갈겨줬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사는 게 그리 유쾌하지 못한 건

세상 탓이기 보다는 내 스스로의 탓인 경우가 대부분이겠지요.

네온처럼 확실한 불빛을 내쏘으며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지도 못하며

 

먼지들에 가린 별처럼 보는 사람 없어도 제 빛을 발하며 묵묵할 줄도 모르는...

 

 

이런... 넋두리가 더 되기 전에 Kenny Drew Trio의 음반 한 장을 소개합니다.

 

마음이 비에 푹 담겼으면 하는 날...그런 날이 혹 있으시면

이 음반을 구해서 들어보세요. 요즘은 시디로 더 잘 나오기 때문에

피아노의 매력에 푹 잠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글쎄...이러기도 여유가 있어야 할까요...

 

 

RECOLLECTIONS - KENNY DREW TRIO

 

1. GOLDEN EARRINGS

2. LES PARAPLUIES DE CHERBOURG

3. THE GENTLE RAIN

4. CHATEAU EN SUEDE

5. IN YOUR OWN SWEET WAY

6. COPENHAGEN BLUES

7. SUMMER KNOWS

8. A FOGGY DAY

9. SUDDENLY IT'S SPRING

10. OLD DANISH

11. RECOLLECTIONS

 

1989년에 녹음된 이 앨범은 그리 큰 주목을 받지도 못했고

평론가들로부터도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도 못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큰 인기를 끈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피아노 트리오가 사랑받는데 한번 들어보신다면

이 음반이 왜 그동안 꾸준한 인기를 획득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음들이 생생히 살아있고 녹음도 뛰어납니다.

피아노와 베이스의 인터플레이도 훌륭한데 나이를 지긋이 먹은

케니 드류의 피아노도 귀에 촘촘히 박히고,

닐스 헤닝 오스테드 페데르센의 베이스 또한 앞서거니 뒤서거니 춤을 춥니다.

가만가만히 가슴을 울려오고 공간속으로 퍼져가는 피아노 트리오의 매력은

이 음반 한 장으로도 충분히 만끽할 수가 있습니다.

 

 안개 낀 밤, 내일은 비가 내렸으면... 하고 기대하면서

  바람처럼 출렁이는 ‘THE GENTLE RAIN’을 듣는다면

꿈속에서라도 비가 내릴지 모르겠습니다.

 

(강미/변산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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