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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에세이 (14) - 김광석의 블루스로 듣는 서른즈음과 내 서른 즈음에는

변산바람꽃 2011. 2. 26. 04:19

 

 

Jazz 에세이 (14) - 김광석의 블루스로 듣는 서른즈음과 내 서른 즈음에는...

 

서른 즈음에

 

                          - 김광석-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끔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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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김광석의 노래가 입가를 떠나지 않습니다.

 

수업을 끝내고 자정이 넘은 어둑한 텅 빈 거리로 나왔을 때...

문득 그 거리를 훑고 지나는 바람이 스산하게 몸을 흔들 때...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기대어 섰을 때...

미리 잠든 딸에 대한 안스러움으로 가슴이 지펴질 때...

잠 오지 않는 밤에 불을 끄고 스멀스멀 어둠 속으로 기어들어 갈 때...

이 노래가 조용히 입가로 스며드는 것입니다.

왜인지 모르게 슬며시 슬퍼지고 설핏 눈물이 고이고

아... 한숨이 되어 새어나옵니다.

김광석의 서른살과 내 서른살은 어디로 갔을까...

 

하루하루 엇비슷한 날들이 모이고 쌓여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는 것일텐데

서른살의 하루와 지금의 하루가 크게 다르지 않을텐데도

그 십여년이 가슴을 칠 때가 있습니다.

 

오늘 같은 날...약수동 성공회성당에서 노동야학 강학진들과

혹은 인수동 교회에서의 검정고시 대비 야학 강학진들과

그리고 공단을 순회하며 노동극을 공연하고 통금에 쫒겨 공장 안의

낡은 스레트 지붕의 공장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우리가 만들 세상을 속삭이던 때...그 때 내 이십대를 너머

서른살 즈음에도 동지들끼리 헤어짐이 있었던가...

 

나무처럼 푸르른 이십대의 길가에서의 만남들...

영원히 살지 않을 것이라고 하루를 모두 살아버렸던

의식이 칼 날 같던 서른살에 이르기 까지...

 

그때 그 사람들 얼굴이 하나둘 떠오르고 그들과 나누어 마신 술과 그만큼의 시간과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희망을 찾기 위해 했던 수 많은 저항들...

그리고 일상에서 몇 개의 절망과 몇 개의 기쁨들...

그 모든 것들이 손가락 마디 사이에 남아있는 군살처럼 아련합니다.

 

서로의 길을 찾아 떠났던 동지들은 서른살의 길에도 있었습니다.

뒤돌아 보며 지금도 가끔씩 서랍 속에서 꺼집어 내어 불러보기도 했던...

마음을 주었던 훈이형, 나 좋다고 야학 불을 늦게까지 남아 지켜주었던 베드로와 승원이...

내 서른 즈음의 우리들은 열정에 비해 어리숙하고 열정이 가지지 못한

일상의 소소한 감정을 사치스럽게 여겼을 만큼 자연스러움을 낯설어 했지요...

아 그땐 왜 감정의 여린 구석을 드러내기에 겁내했던 것일까...

 

그때 그 형들 아우들 그리고 내 친구들...

누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지 여전히 소식을 주고 받지만

누구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모두가 다 잘 살아내고 있기를 바랍니다.

어디에서건...비록 현재를 여전히 아파하더라도...

 

그리고 오늘...시대도 변했고 이제 아무도 노동극을 찾지 않고

야학이 아직도 있느냐고 물을 만큼 자본과 배움이 보편화된

흐름에서 나름 적응하며 자본의 시중꾼이 다 되었습니다.

내 서른 즈음에 비해 너무 잘 먹고 너무 잘 살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리 사는 것처럼 희망을 이루어 가는 방법 때문에 헤어졌던 동지들

그들은 여전히 희망에 배고파 하고 있을까...

그때 우리가 헤어져서 지금 이룬 것이 무엇이었을까...

 

오늘처럼 새벽으로 가는 시간은

김광석의 블루스적인 음색으로 낮은 음성으로

내가 앞만 보고 걸어오다 어디 낯선 곳에 흘리고 온

지난 서른살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내 서른살을 들여다보며

오늘 내가 잃은 것과 오늘 내가 얻은 것을 생각합니다.

 

변산바람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