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라 그리운 뻥튀기장사
강 미
찬바람이 불어와 문풍지를 때려 울릴 때면 미아리 산동네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장사가 있었다. 자전거에 시커먼 쇳덩이를 힘겹게 매달고 산골마을을 찾은 뻥튀기장사였다. 동네 한복판 양지바른 돌담 밑에 뻥튀기아저씨가 자리를 잡으면 아이들은 자루에 강냉이를 들쳐 매고 너나없이 달려왔다. 또래보다 나이가 좀 많은 절름발이 시운이는 뻥튀기장사 옆에서 열심히 풍무질을 하며 호감을 사고 있었다. 그러면 그날 자기네 것은 공짜로 튀기게 되고 뻥튀기를 튀기는 순서를 정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졌다. 한껏 목에 힘주고 “어이! 농짝, 야! 줄 좀 서라.” 실세가 따로 없었다. 순서가 바뀌면 곧장 싸움으로 번지는데 누가 먼저 왔는지를 척척 알아채고 깡통에 강냉이를 부으면 뻥튀기장사는 사카린을 살짝 탔다.
“아주머이, 어서 오시겨.” 인사성도 발랐다. “이리 주시겨.” 자기가 주인 같았다.
키가 유난히 작은 애도 튀겨서 크게 만들어 주겠다는 끔찍한 농담도 하고 처녀에게는 사랑도 튀겨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뻥튀기장사의 손톱과 옷소매는 그간의 이력을 말해주듯 때가 절어 반질반질하였다. 머리는 생전 안 감았는지 푸석하고 지푸라기가 걸쳐 있다. 삶의 고단한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그래도 “뻥이요!” 하고 소리칠 때는 그 소리가 사뭇 우렁찼다. 불을 빼고 시커먼 주둥이에 큰 자루를 덧씌우자마자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지축을 흔들었고 하얀 연기가 뽀얗게 퍼져 올랐다. 구수한 냄새와 함께 뻥튀기 통 옆에 벗어둔 아이들의 신발짝이 이리 저리 날아갔다. 매번 그렇게 뻥튀기 바람에 날아가는 신발을 보고 싶은 아이들의 장난이다. 자루에서 탈출한 꽃이 된 일부 강냉이도 튀어 날아간다.
그날 우리 집은 어머니의 배려로 그날 쌀을 튀겼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강냉이가 없어 쌀을 튀기게 된 것이다. 동생이 한 자루를 들고 “어머이! 어머이!” 부르며 집으로 달려오니 어머니는 우리에게 일렀다. 지금은 대일고등학교 자리가 있는 뒷산에 가서 등걸을 해오라신다. 쌀강정을 만들어 주시려나보다. 동생 손에 도끼자루가 쥐어 지고 지게를 들쳐 메고 뒷산으로 향했다. 발로 툭 차도 쑥쑥 뽑히는 등걸이 나뒹굴었다. 한 짐을 해 내려오니 어머니는 벌써 조청을 만드실 준비를 마치고 계셨다. 아궁이에 불은 이글거리고 방바닥은 아주 뜨겁다.
어머니는 밤새 엿을 고셨다. 그런데 잠시 눈을 붙이신 어머니가 깊은 잠에 빠져드시는 바람에 조청이 그만 새카맣게 다타버렸다. 가마솥에는 숯 검둥이가 흉물스럽게 몰골을 드러냈다. 어머니는 몹시 안타까워하시고 서운해 하셨다. 그래도 어머니는 다음날 가마솥을 수세미로 긁어내시고 조청을 다시 만들어 밥상을 펼쳐 눅진눅진한 쌀강정을 만드셨다. 그 결과 겨우내 어머니의 끈끈한 정을 먹을 수 있었다.
이제 세월을 훌쩍 뒤로 중학교 2학년인 딸을 둔 중년의 나이이건만 내 아이와는 나눌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린 뻥튀기장사 이야기...그리운 것은 언제나 추억에서만 찾아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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