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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Jazz 에세이 (26) - 무라카미 하루끼의 `재즈 에세이`에서 다시 `Ella Fitzgerald`를 만나다.

변산바람꽃 2009. 12. 6. 21:06

 

 

 

Jazz 에세이 (26) - 무라카미 하루끼의 '재즈 에세이'에서 다시 'Ella Fitzgerald'를 만나다.

 

 

내가 개인적으로 새기고 있는 엘라의 가창은 <엘라 앤드 루이 어게인>(Ella and Louis Again)에 수록되어 있는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곡 'These Foolish Things'이다. 이 <엘라 앤드 루이스 어게인>은 타이틀이 말해주듯 엘라 피츠제랄드와 루이 암스트롱의 신나고 스윙 감각이 돋보이는 스튜디오 공연 세션(의 속편)인데, 이 노래에서는 루이가 빠지고 엘라 혼자 노래하고 있다. 열창을 끝낸 루이가 박수를 받으며 무대 뒤로 물러 가자, 엘라가 조용히 무대 중앙으로 걸어가면서 조명이 어스름해지는, 그런 식이다. 프로듀서 노먼 그란츠는 이렇게 작위적인 연출에 뛰어나다.
반주는 오스카 피터슨의 쿼텟, 레귤러 트리오 멤버로 루이 벨송이 드럼을 치는데, 이 반주가 또 기가 막히다. 최고급 실크처럼, 노래의 결에 착 달라붙으면서도 지나치지 않는다. 곡도 좋거니와 가수도 좋고 반주도 멋지다.


나는 이 레코드를 대학생 시절에 처음 들었는데, 그때 '재즈란 한번 심취하면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인가' 하고 감탄했다. 지금도 그때의 인상은 거의 변함이 없다. 꽤 여러 번 들었는데도 전체적으로 자연스런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 싫증나지 안는다. 엘라나 피터슨이나 안정되고 수준 높은 실력을 지닌 뮤지션이기는 하지만 그런 만큼 지나치게 재주를 피우나 싶은 감도 있다. 연주도 굉장하고 어디 흠잡을 데 하나 없지만, 그 시점에서 완결되고 말아, 채워지지않는 마음의 그늘 같은 것이 듣는 이한테 어째 좀 덜 전해지는 듯하다. 그러나 이 'These Foolish Things'에 한해서, 나는 그 두 사람이 지닌 진지하면서도 고급한 음악성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실은 피터슨은 1952년에 역시 쿼텟을 편성하여 빌리 홀리데이가 노래하는 같은 노래의 반주를 맡은 적이 있다.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는 그야말로 예술품이다. 엘라을 앞설망정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 가슴이 터져나갈 만큼 감동적이다. 그런데 이 피터슨의 반주가 좀 어설프다. 빌리 홀리데이가 만들어내려는 '어딘가 특별한 장소'를 혈기에 찬 피터슨의 다소 말 많고 과장된 피아노가 보기좋게 망가뜨리고 있다.

빌리 홀리데이의 레코드를 들으면서 그 언밸런스 때문에 침톻해진 마음으로 엘라의 같은 곡을 들으면, '인간한테는 과연 맞는 짝이 있는 모양'이란 느낌이 새삼스러워진다. 그 후 내가 아는 한 빌리가 피터슨과 공연한 적은 한 번도 없으니, 그녀 역시 '이거 안 되겠어'라고 통감했던 모양이다. 동시에 피터슨이 엘라의 반주를 맡은 것은 홀리데이 판을 녹음한 몇 년 후의 일이므로 어쩌면 그 동안 나름의 성숙과 진보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잘 들어보면 엘라와 피터슨의 이 곡에는 몇 군데 결정적으로 감동적인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옆 아파트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이쯤에서 배경으로 깔리는 피아노 페시지는 언제 들어도 '아 좋다'란 느낌이 든다. 예술이다. 소설 같으면 두말 않고 나오키 상
(일본 최고의 대중문학상)을 주고 싶은 연주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 중에서   

                    
                                

 

 

한 때 무라카미 하루끼의 소설들만 연이어서 읽었던 적이 있다.

그건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최초판으로 나온 '상실의 시대'가 주었던 강렬한

자기 암시에 걸렸던 것 때문이 아닐까 하고 그 후로도 생각했었다. 

하루끼의 소설에는 반드시 재즈가 있다. '노르웨이 숲'에서는 비틀즈의

폴 메카트니가 컨켐포러리 재즈적인 분위기로  노래하고 있다.

 

하루끼의 소설에는 재즈 속에서 걸어나오는 초기 재즈의 예인들을 만날 수 있다.

엘라 핏제럴드를 하루끼 덕분에 더 가까워지기도 했으니까...

 

하여튼 엘라는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한  'Ella and Louis Again'에서

어느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 어울림을 그들만의 음성으로 일으켜 낸다.

그런 엘라에게 남편 레이 브라운은 재즈 그 자체의 혼과 같은 인물이었다.

레이 브라운...

 

몇 해전 레이 브라운의 공연을 보았었다...그리고 지금은 그의 음반을 듣고 있다.

여전히 내 책꽃이에 세월을 묵으며 얌전하게 꽂혀있는 하루끼의 '상실의 시대'를

오랜만에 꺼내어 펼쳐 본다. 엘라와 레이 브라운을 알게 된 추억이 고스란히 있다.

레이브라운은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 마일스 데이비스와 공연했으며,

그 유명한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멤버였고, 엘라 피츠제렬드의 남편이었다.
그는 재즈 역사의 후반부 동안 언제나 재즈의 중심이었고,
이름 있는 연주자들은 누구나 다 한번쯤은 그의 베이스를 배경으로
발을 구르고 어깨를 들썩여 보았을 것이다.

 

그는 올해 일흔 여섯이나 먹은 할아버지였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여전히 재즈의 중심이었다.

팝과 재즈를 넘나드는 트럼펫터 랜디 브랫커와 비브라폰의 증인 바비 허처슨과의

공연 동안 그는 과연 50년 동안 익힌 재즈의 맛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정말이지 자신이 50년 넘게 연주한 콘트라베이스처럼 생겼다.
풍만한 덩치와 풍부한 음색, 넉넉한 웃음과 공간 가득한 유머스러움까지...
제 몸처럼 악기를 연주하고, 다른 연주자들을 받쳐주고 밀어주고 다독여주는

그의 손가락... 지난번 그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때 동행했던 후배는 그의 손가락을 

'개구리 발바닥' 아니, '개구리 손바닥'처럼 생겼다고 했다. 앞으로 베이스 연주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그의 손가락이 얼마나 개구리와 닮았나는 보아둘까 싶을 지경이다.

어쨌든 베이스 위에서 춤추던 그의 손가락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오늘은 하루끼의 '재즈 에세이'를 다시 보면서 오랜만에 엘라 핏제럴드,

루이 암스트롱 그리고 레이 브라운을 한꺼번에 불러내었다...

 

여러분도 그들을 차례로 혹은 함께 불러보시라...~변산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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