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의 문학서재 §/◎ 강미의 斷想

페이스북에서 / 도덕과 법의 실효성과 가치성에 관한 논의

변산바람꽃 2011. 4. 30. 23:02

 

 

도덕과 법의 실효성과 가치성에 관한 논의

 

 

도덕과 법률을 나는 단순히 이렇게 구분한다. 도덕은 미덕에 대한 칭찬이며 법률은 부덕에 대한 비판이다.

도덕이 칭찬에만 쓰여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섬세하고 상대적일 수 있으며 관계적인 양상이며 예외가

많을 수 있기 때문에 비판의 툴로 쓸 경우, 폭압적인 양상으로 변하기 쉽다. 한편 법은 칭찬하지 않는다.

 다만 비판하지 않는 것이면 충분하다. 법적인 비판을 전문적인 기관이 맡는 까닭은, 그만큼 까다롭고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여론이 자아내는 많은 문제들은, 이같은 단순한 원리를 잊어버린데 있다.

많은 이들은 칭찬에만 써야할 '도덕'을 남을 비난하는데 쓰고, 심지어 법적인 판단까지 스스로 판사인

것처럼 자임해서 마구 언도를 한다. 그런 폭력을 솔직함이나 정의감이나 도덕성이라고 과시하기까지

하니 참으로 얄궂다.

 

Binsom Lee

부도덕함을 여론이 재판할 때, 거기엔 시원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여론의 손가락끝에 있는

사람의 권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신중하고 섬세한 법의 처벌에서 그치는 것이,

그리 후련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오류나 해악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훨씬 줄일 수 있다.

벌떼처럼 소리치는 도덕은 인간의 사회적 품격을 높였다기 보다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주홍글씨'를 생산한, '실패한 이성'에 가깝기도 하다.

 

강미

(1) 일반적으로 어떠한 사회 현상에 대해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경우는 그 사회가 강요된

질서에 의해 힘의 논리로 좌우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도덕적인 개인이 비도덕적인 사회에서

생존하는 것이나 비도덕적 개인이 도덕적인 사회에서 생존하는 것에는 그 사회의 지배적 논리가

작용함에 있어서 힘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경위 입니다. 역사시대에서 도덕의 논리가 미덕을

칭찬하기 위해 존재한 적은 없습니다. 어느 사회에서든 개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충돌이 없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도덕은 미덕을 함양하여 사회 전체의 도덕적 변화를 위한 동기로서 작용한다는 것에서

도덕이 사회와 개인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동기는 될 수 있습니다.

 

강미

‎(2) 플라톤이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모델로 해서 지적한 '소트라테스의 변론'에 나타나는

국가의 도덕적 모습은 법에 의한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균등한 기회의 공유입니다.

현대적 시각으로 해석하면 사회와 개인이 도덕적인 관계인가 비도덕적인 관계인가는 공존을

위한 그 사회의 합의가 무엇인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비도덕적인 가치들이

도덕적 가치를 목표로 하게 한다는 것에서 법의 기능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답니다.

장자연의 죽음이 이용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듯이 개인의 불행을 그 사회의 비도덕적 모습에서

찾아야 함에도 오히려 힘의 논리에 의해 비도덕적인 사회를 감추고 견고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

일군의 구성원들에 의해 이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한 편으로는 장자연의 죽음이

사회적 힘에 의한 죽임일 수 있음에 시선을 두고 유사한 죽임이 힘에 의해 견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비도덕적인 사회라

할 지라도 혹은 아무리 비도덕적인 개인이라 할 지라도 상대적인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한

변화에의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빈섬님이 지적하신 도덕은 부덕을 올바르게 개선하기 위한 칭찬으로서 기능한다는 설명과

법이 사회적 오류를 바로 잡는 역할을 한다는 것에서 도덕보다 목적성이 더 크다는 것으로

이해되는 설명은 도덕과 비도덕이 지닌 뫼비우스의 띠 같은 목적의 양면성을 간과한 것 같아

솔직하게 논의해 봅니다. 무례하지 않았기를요...^^

 

 

 Binsom Lee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물론 도덕과 비도덕이 지닌 뫼비우스의 띠같은 목적의 양면성을

간과한 건 아니었습니다. 강미선생님처럼 볼 수도 있습니다만...

춘추전국의 혼란기에 공자가 어진 품성이라는 덕목을 가지고 나와, 예의가 개인에게

체화되는 사회를 기획한 것은 '도덕사회'의 이상이었고, 법가가 꿈꾼 바른 국가는

금지의 법 규율이 제대로 살아있는, 안정감있고 건전한 공동체였을 겁니다.

도덕이 칭찬을 중심으로 기획되었다는 제 생각은, 문란하고 혼란한 사회에서는

설검(舌劍)의 비판들이 그리 잘 먹히지 않는 사회생리와도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성인사회나 군자모델에 관한 모든 상념들은, 패륜이나 부도덕을 경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칭찬이 비판보다 도덕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유용하다는 착안에서 오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강미

‎(3) 하하 빈섬님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공자가 살았던 당대와 현재 우리가 사는 현 시대에서

도덕은 그 사회가 공유하는 비도덕적인 것들의 개선을 위한 필요성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네요. 사회와 개인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칭찬은 보다 상승된

도덕적 행위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한 시대에 어떠한

도덕적 기준이 그 사회와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느냐 그래서 문명의

발달 과정에서 진정성을 확보하느냐에서 인본주의의 출발을 볼 수 있지요.

그와 같이 도덕이 미덕을 칭찬하기 위해...법은 오류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고정되면 문화나 역사적 배경의 차이에 따라 도덕이 계속 달리 해석되고

적용되어서 보편적인 가치로서 공유할 것들의 상실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도덕이 그 역할에 있어서 목적성이 떨어지는 사회는 법이 그 사회에서

도덕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지요. 즉 법이 도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법은 도덕이라는 보편적인 사회의 약속을 원할하게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 올바르게

사용되어야 하지 그 이상이어서는 오히려 더 큰 역사적 오류를 범한다는 것을

우리는 수 많은 사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전을 배우는 이유는 보편적 가치의 역사성과 개별적 가치의 상대적 적용을

구별하기 위한 기준으로서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도덕적인 가치들이 위에서

제가 지적한 뫼비우스의 띠 같은 목적의 양면성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보편적 가치와 개별적 가치로서 도덕적인 양식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을 포함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논의는 빈섬님이 지적하신 도덕과 법의 실용성이라는 측면에서 논해야 적당할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도덕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감사해요. 논의 마당을 제시해 주셔서요~~~^^

 

 

Moungje Kim

진지한 학구적인 듯한 논의에 끼어들 생각은 없지만, 도덕이란 잣대로 타인을 비난하면

안된다는 뜻이라면 이해가 안되네요.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 이웃의 불효한 자를 비난해야

옳지 않나요? 법으로 혼낼만한 가혹행위에 못미친다고 외면만 할까요?

세상에 지켜야 할 규범은 도덕의 범주에 드는 모든 것이고, 법은 그 최소한의 것만

사회적 합의에 의해 규율하는 것이니까요.

 

 

Binsom Lee

선배가 말씀하신 바로 그 취지로 말씀드린 겁니다. 물론 도덕을 비난의 잣대로

쓰고 있는 게 상식이긴 합니다만...'도덕'이란 잣대가 상대적일 수 있고 소수자에게

가혹할 수 있으며 집단적 편견이나 관행의 산물일 수도 있으니, 그것을 잣대로

사용하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웃의 불효한 자를 비난할 때,

그 불효의 양상을 제대로 파악했는지, 불효라는 개념만으로 비난하는 건지,

불효의 정도를 비난하는 건지, 불효가 과연 모든 경우에 보편타당한 개념인지...

등등의 신중한 고려가 필요한데, 우리는 너무나 쉽게 이 몽둥이를 휘두른다는 점입니다.

다만 효자에 대한 칭찬은 그나마 부작용이 적고 기대효과는 클 수 있으니,

도덕을 진작하는데 쓰임새가 좋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공자의 착안이기도 하고요.

 

 

Binsom Lee

오래전 사회면 1단에 난 '패륜아' 기사가 있었는데, 나중에 밝혀진 '진실'에서

그 아버지가 지속적인 가정폭력으로 온 가족을 괴롭혀왔고, 살부 행위는

그가 직접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는 게 밝혀진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의 '살인' 범죄는 법이 마땅히 처벌을 저울질할 것이지만, 도덕이 흥분해서

저 아들을 여론뭇매로 먼저 죽여놓는 일은, 이제 조금 성숙했다는 이 나라에서

자제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