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강의 28.] 생산...아름다운 결실을 위해서 시작되어야 한다.
땅의 신 게브(Geb)와 부부지간인 하늘 신 누트(Nout)가 아이를 가졌다. 이집트를 다스리던 태양신 라(Ra)는 누트가 낳을 아이가 자신을 밀어내고 이집트를 다스릴 신이 된다는 예언을 듣고 1년 360일 동안에는 누트가 해산하지 못한다는 신명을 내렸다. 누트의 간청으로 지혜의 신 토트(Thot)가 묘안을 짜냈다. 달의 신 콘수와 세네트 게임을 한 토트는 이길 때마다 달빛을 조금씩 얻어 닷새 분량의 달빛을 모았다. 토트는 그 달빛으로 5일 간을 비추었고 누트는 드디어 360일이 아닌 달빛이 비치는 새로운 닷새 동안에 다섯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 이집트신화
자연의 섭리를 만든 신이라 해도 그 스스로 순리를 가스를 수는 없는 노릇인가? 노쇠한 자가 새로운 강자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듯 늙은 라 역시 누트의 아들 오시리스에게 제왕의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동물의 무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두머리 싸움은 강한 씨앗을 물려주고자 하는 자연적 본능에 그 원인이 있다. 인간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의 낡은 권력은 새로운 권력에, 구 이론은 신 이론에 밀리게 마련이다. 이러한 교체가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진화를 낳았다.
생산을 가로막는 자들은 그가 신이라 할지라도 용서받지 못한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스스로 하늘의 신 우라노스를 창조하고 둘이 결합하여 티탄족을 낳았다. 그러나 권력을 독점하려는 우라노스는 그 자식들을 모조리 대지에 묻어버렸다. 생산의 여신 가이아가 이를 내버려둘 리 없다. 생산했으되 생산을 거부한 우라노스의 `거시기’가 싹둑 잘려버렸다. 아버지를 물리쳤지만 아버지를 보고 자란 크로노스도 레아에게서 난 자식들을 모두 삼켜버린다. 크로노스 역시 생산했으되 생산을 거부한 죗값으로 올림푸스 자식들의 준엄한 쿠데타에 의해 용서받지 못한 자가 되었다.
생산에 대한 인간의 집념은 참으로 집요하다. 그들이 자리잡고 사는 모든 터전이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는 열망은 지명(地名)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州)는 `물이 흐르는 곳의 땅’을 의미하는 상형문자로서 농사에 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물이 풍부한 땅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양의 지명도 예외는 아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과 같은 대륙은 물론 리비아, 인도네시아, 콜롬비아같은 수많은 나라의 이름에 여성형 접미사(-ia)를 붙인다. 아이를 낳는 여성들처럼 그 땅 역시 생명을 잉태하고 생산하는 풍요로운 땅이 되기를 갈망하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생산은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 우리나라 곳곳에 전해오는 여신에 대한 숭배 또한 풍요의 기원에서 유래하는데 생산의 시작은 만남이었다. 달과 물을 상징하는 하백의 딸 유화 부인은 지모신으로서 땅의 풍요를 의미하며 하늘 신 해모수와의 결합을 통해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을 낳았다. 천신족을 대표하는 환웅을 만난 땅족 웅녀도 유화 부인과 더불어 생산과 풍요로 추앙되는 여신이다. 곡물과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는 딸 페르세포네를 만나지 못하면 파종을 거부하고 생산을 멈춘다. 제우스의 난봉질과 아프로디테의 바람질도 따지고 보면 만남을 통해 생산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표현된 것일 뿐이다.
처음으로 약탈의 삶을 벗어던진 사람들이 있었다. 오로지 사냥과 채집으로만 연명해야만 했던 그들에게 자연은 그저 약탈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러던 그들이 자연의 섭리를 손수 깨우쳤다. 인간남녀가 살을 섞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듯 땅과 씨앗이 황홀한 교접을 통해 싹을 틔운다는 이치를 터득한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얻어먹고 주워먹던 삶에서 이제 스스로 길러먹고 키워먹는 생산의 삶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 변화가 너무도 눈부시고 위대하여 인류는 이 사건을 `신석기 농업혁명’이라 부른다.
생산은 지혜롭고 아름다운 행위다. 봄이 아름다운 것은 대지와 인간이 생산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봄은 대지가 가슴을 열어 햇볕을 품고 씨앗이 가슴을 열어 생명을 틔우는 계절이다. 그래서 4월이 April이다. April은 열다(open)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Aperire에서 나왔다. 4월은 `아프릴리스(Aprillis)의 달’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랑과 풍요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찬양하는 달인 것이다. 4월을 열면(open) 열리게(實) 되어 있다. 모든 여는 자들은 자연적 생산에 참여하는 자이고 그래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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