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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강의 26.] 나는 누구인가?

변산바람꽃 2011. 8. 19. 05:04

 

 

 

 

 

[논술강의 - 역설로 이해하기] 나는 생각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말을 한 사람은? 그래그래. 데카르트지.
그럼, 왜 이 말이 그렇게 유명할까?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말 아냐?
그런데 이 말 덕분에 데카르트는 졸지에 근대 철학의
아버지가 됐단 말이거든.

데카르트는 세계가 ‘물질’(연장(延長))과 ‘정신’(사유(思惟))으로
구성된다고 봤어. 그런데 정신이란 게 존재한다는 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여기서 저 유명한 ‘방법적 회의’란 게 나와.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어떤 것도 몽땅 의심의 대상이 된다는 거지.
그런데 그렇게 의심하면 의심할수록 분명해지는 게 하나 있어.
‘의심하는 나가 있다’는 거지.
한마디로 ‘의심이란 게 존재한다’는 거야.
이렇게 해서 ‘생각의 존재’를 입증했다고 데카르트는 생각한 거야.
그래서 나온 명제가 바로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야.
이걸 짧게 줄여서 ‘코기토 명제’라고 해.

-코기토 효과

이 명제가 갖는 가장 큰 효과는 사람이 ‘생각하는 존재’가 됐다는 거야.
이른바 ‘이성적 인간’이 나타난 거지. 중세까지는 신이 생각했고 신이
세상을 만들었으니까, 사람이야 그저 신의 뜻을 충실히 따르면 그만이었어.
그러던 것이 드디어 생각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그런 세상이 열린 거지.
‘이성’을 가지고 세계를 파악할 수 있고, 그렇게 파악한 것을 무기 삼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게 생긴 거야.
이른바 ‘인간중심주의’는 이렇게 든든한 후원자를 맞이한 거지.

-생각하는 나?

데카르트는 이 명제가 아주 마음에 들었나 봐. 오죽했으면 이걸
‘제일명제’라고 했을까. 이걸로 모든 철학이 시작된다는 거지.
그런데 우리는 ‘인간이 과연 이성적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던지고 받아. 아닌 것 같을 때가 너무 많거든.
그러면서도 선뜻 아니라는 말을 잘 못해. 무식이 자랑은 아니니까.
일단 데카르트 말부터 따져보자고.

그는 분명히 ‘나는 생각한다’고 했어. 그러면 그 생각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일 테지. 도식화하면, ‘나→생각’이 되지.
그런데 그 ‘나’는 어디서 나온 거야?
‘생각?’ ‘물질?’ ‘생각+물질?’ 이런저런 답을 하더라도 더 이상
‘제일명제’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치?

-내가 생각하는 것이 과연 내 생각인가

백보 양보해서 ‘나→생각’을 받아들인다고 치자고.
이 도식을 좀 더 연장하면 ‘나→생각→행동’이 돼. 그런데 말야,
정말 내 생각은 ‘내 생각’일까?
‘나는 의사가 될 테야’, ‘난 판사가 될 건데’는 내 생각일까?
어떻게 그렇게 ‘천편일률적인’ ‘자기 생각’들이 있을 수 있어?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건 ‘내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무언가에 의해 만들어진 생각을 마치 내 생각인 양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 행동도 마찬가지야. 내 생각과 내 행동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아,
아니면 불일치하는 때가 많아?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말이지.
그건 내가 비이성적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이 원래 그렇기 때문일 수도 있잖아?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다만, 어떤 대가의 말이라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진 말자고.
모든 위대한 창조는 의심에서 비롯되는 거니까.

 

(강미/변산바람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