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의 문학서재 §/◎ 에세이 서재

Jazz 에세이 (4) Billie Holiday 의 오래된 시간 속으로...(다시 수정하다.)

변산바람꽃 2012. 1. 15. 07:45

 

 

Jazz 에세이 (4) Billie Holiday 의 오래된 시간 속으로...

(2007.07.31. 04:49 기록)

 

 

 

 

 

1.

 

 

혹시 이런 기억을 갖고 계십니까.

오래된 영화에서나 흘러나오는 듯한, 잡음이 많이 낀 오래된 레코드 판이

머리 속에서 힘겹게 돌아가며 아련한 음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듯이, 수많은 스크래치는 가냘픈 신경 사이를 배회하고

꿈결인 듯 오래된 시간이 그리워집니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의 저 먼 시간 속으로,

내가 겪어보지도 못한 그 아득한 경험 속으로, 나는 빠져들어 갑니다.

여러분은 혹시, 그런 경험을 갖고 계십니까...

 

참 오래전 기억입니다. 그때 저는 늦은 나이에 막 결혼을 하고, 늦은 나이에

목숨 같은 의미로 다가 온 딸도 낳았지만, 사랑이 얼마나 얄팍하고 가벼우며

그리고 그 사랑에의 지속성에 대한 약속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너무 늦은

나이에 알게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우울해 하던 삼십대 후반의 아기 엄마이고

세상을 바꿀 힘은 아직도 여전히 나를 중심으로 생길 수 있다고 믿었던

운동가의 삶을 살고 있기도 했습니다...

경기도 안산에서 살 때의 기억이지 싶습니다.

사랑이 내 의지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즈음...

1998년 어느 날...

 

 

--------------------------------------------------------------------------

 

2.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신문지상과 방송에는 게릴라 성 호우라는, 듣도 보도 못한 용어들이 아침저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경기도 일원을 비롯한 수도권에는 깊은 밤 무의식의 저편을 기습 공격하듯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심하게 내리는 날이면 언제나, 창문턱을 넘어 홍수가 밀려들지만 아직도 가난한 동네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또 짐을 챙길 사이도 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좀 더 가까운 교회로 혹은 차가운 나무바닥이 있는 동네의 국민학교로 피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커먼 진흙의 물 위를 돼지가 떠다니고 냉장고가 흐르고 해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의 허망함이 물과 함께 섞여들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더라고 나를 둘러싼 조그마한 공간 밖에 둘러볼 줄 모르는 나는, 오직 내 몸뚱이 하나밖에 가리지 못하는, 참으로 이기적인 우산을 받쳐 들고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빗속에서 갈 곳을 몰라 허둥대고 있었습니다.

 

까닭 없이 우울했고l 무조건 슬펐으며l 근거 없이 외로웠고l 건방지게도 삶이 싫어지고 있었습니다. 위태롭게 지속된 사랑은 이제 곧 나를 떠나려 하고 있었고 나는 그 막바지에 다다른 사랑을 어찌하지 못하고 가슴 저리고 있었습니다.

 

삶이란 것이 빗물처럼, 형체 없는 물처럼, 투명한 그 물빛처럼 그러하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빗속에서 우산이 젖고 바지단이 젖고 마음이 젖어들어 갔습니다.

 

 

그러다 어디 학교 앞 서점에 들어갔습니다. 무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내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나를 어딘가로 데려다줄 통로, 날 갑갑하게 옥죄고 있는 사랑으로부터 날 구해줄 무언가를 나는 찾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듣는다"

김갑수의 책입니다. 서점에는 그 책이 다소곳이 놓여있었습니다.

 

글쎄...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삶이 과연 남들보다 더 괴로운 것이고 남들보다 더 할 이야기가 많으며 남들보다 더 아파해야 할 것인지를...

 

 

하지만 그 비 많던 유월의 어느 날 그 책은, 아니 그 책의 제목은 제 가슴으로 파고들어 내 삶이 그 어느 누구보다 심각하게 괴로운 것이라는 최면을 걸어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책을 집어 들었고 그리고...음악을, 아니 한 동안 멀리했던 재즈를 다시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 즈음 나는 내내 빌리 홀리데이의 재즈를 듣고 있었습니다.

잠으로의 여행을 시작하는 깊은 밤이거나 책을 읽을 때조차 나는 빌리의 음성이 내 귓가를 채우도록 만들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성은 빌리의 그것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있었고, 그즈음의 내 자신에 대한 방황이 오래전부터 붙들어 왔던 재즈라는 음악을 먼 나라의 이방의 언어처럼 낯설게 했었습니다. 하지만 빌리가 근 한 달이나 내 귓가에서 노래를 하도록 내버려두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새된 목소리, 터무니 없이 작고 터무니 없이 힘 빠진 듯한 목소리에 나는 적응이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순간에 나는 김갑수의 그 책을 만났고, 사랑이 날 흔들리게 하고 있었고, 그리고...그리고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나는 재즈로 향한 새로운 통로를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다시 재즈에 옥죄어 있습니다. 이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의 사랑만큼은 날 힘들게 하지는 않는 것 같으니 그나마 참 다행입니다. 나는 그렇게 새로운 의미로 재즈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

 

 

3.

 

 

그리고 다시 책꽂이에서 그 오래전에 사랑이 나를 떠난다고 할 때의

"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듣는다" 는 김갑수의 책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글쎄...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삶이 과연 남들보다

더 괴로운 것이고 남들보다 더 할 이야기가 많으며 남들보다 더 아파해야

할 것인지를...

오래된 시간...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오래된 시간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녀의 생애는 57년까지였으니 우리가 듣는 그녀의 음악은 당연히 오래된

음반입니다. 더구나 그녀의 전성기는 3, 40년대 였으므로 우리가 듣는 그녀의

음성에는 지금의 완벽한 음향 사운드 시대에서 볼 때 형편없는 빈약함과

터무니없는 허약함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음악에는 지금의 기계 빛 음악이 줄 수 없는 어떤 아련한

추억과 쓸쓸함과 허무 혹은 낭만이 전해져 옵니다.

 

 

디지털 시대의 복원 기술로도 다 해결할 수 없는 스크래지와 잡음과 음향의

빈약함은 채워질 수 없음으로 인해 더더욱 우리를 가슴 저리게 합니다.

 

 

오래된 시간...

여러분은 그런 경험을 갖고 계십니까.

머리속에서는 오래된, 잡음 많은 레코드 판이 돌아가고 어딘지도 모를

과거 속으로 돌아가고 싶은 복귀의 감정을 느껴보신 적이 있습니까...

 

빌리의 음성을 들으며 그 오래된 시간 속으로 들어가본 적이 여러분에게는

있습니까. 빌리와 함께 잡음 많고 비가 내리는 그 오래된 과거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4.

 

 

빌리의 음반을 하나 소개합니다. 제목은

Billie Holiday-Strange Fruit : 1935-1944 New York ~ Los Angeles

 

요사이 재즈 음반을 사기 위해 레코드 가게를 드나들어 보신 분은 아마도

이 음반을 아실 겁니다. 두 장짜리 음반에 싼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지요.

아마 12000원 정도면 구입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굿(good)'이라는 음반사에서 나왔습니다. 가격이나 기획에 비해 음반의

내용은 참으로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의 전성기는 3, 40년대인데

이 음반에는 그 시대의 대표곡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습니다.

 

사실 나는 재즈를 알던 초기부터 빌리 홀리데이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1998년 나를 재즈로 이끈 시발점으로서 혹은 그녀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알 수 없는 향수로서 그리고 그녀의 인생에 대한 애도로서 이 음반을

구입했습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내게 가져다준 재즈를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낡은 음악이 내게로 가져다주는

오래된 시간까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녀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 Billie Holiday(Eleanora Harris)의 삶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5.

 

 

1915. 4. 7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1959. 7. 17 뉴욕에서 이 세상을 등져버렸던 빌리 홀리데이는 그녀의 사후 40년 동안에도 여전히 가장 유명한 재즈 싱어로 남아 있습니다. "Lady Day"(레스터 영이 붙여준 별칭이다)는 작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스캣도 하지 않았지만, 비트를 뛰어 넘는 숨겨져 있는 그녀의 혁신적인 프레이징(her innovative behind-the-beat phrasing)은 그녀만의 것이었습니다. 노랫말 속에 그녀가 담았던 감정적인 강열함(특히 후기에)은 매우 특기할 만하고 전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녀는 때로 자신이 부른 노랫말과 같은 삶을 실재로 살기도 했던 것으로 가슴에 남는 재즈 디바입니다.

 

 

그녀의 본명과 출생지는 오래도록 잘못 알려져 있었지만 Donald Clarke의 정확한 빌리 홀리데이 자서전인 "Wishing on The Moon" 덕택에 올바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홀리데이의 초기 삶은, 그녀의 공상적인 대작(代作) 자서전인 "Lady Sings The Blues"

때문에(due to her fanciful ghostwritten autobiography), 전설과 소문 속에 가려져 있지만 그녀가 평탄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녀의 아버지 클라렌스 홀리데이(그녀의 어머니와 결혼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다)는 Fletcher Henderson과 함께 기타를 연주했으며, 일찍부터 가족을 포기한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그녀의 어머니도 그리 훌륭한 역할 모델(role model)이 되어주지도 못했습니다.

 

 

빌리는 애정결핍을 느끼며 그리고 일생동안 지속된, 개인적 삶에 있어 커다란 위험을 감당하도록 이끌고 자기 파괴적이 되게 했던, 열등감 콤플렉스를 얻게 되면서 혼자 성장했습니다. 그녀의 삶은 할렘의 클럽에서 노래하고 있던 존 해먼드에 의해 발견되면서 좀 더 명확해집니다. 그는 1933년에 베니 굿맨과 몇 곡의 타이틀을 녹음하도록 그녀를 주선해 주었고, 그 곡들은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은 경력의 시작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2년 후 그녀는 테디 윌슨에 의해 주도된 픽업 밴드에서 팀을 이루고 성공하게 됩니다(she was teamed with pickup band led by Teddy Wilson and the combination clicked).

 

 

1935-42년 동안 그녀는 스윙시대의 중요인물들과 함께 재즈 지향적인 연주 공연을 통해 생애 가장 뛰어난 녹음들을 남기게 됩니다. 홀리데이는 루이 암스트롱의 스윙과 카운트 베이시의 사운드를 함께 조화시키려 했습니다. 결과는 그녀만의 신선한 접근법이었습니다. 1937년 레스터 영과 벅 클래이톤은 빌리와의 레코딩을 시작했고 셋 사이의 인터플레이는 영원한 명곡이 되었습니다.

 

 

레이디 데이는 1937년의 대부분을 카운트 베이시와 함께 했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레코드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둘이 함께 한 공연은 오로지 라디오로 방송된 세 곡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1938년 한 때 Artie shaw 오케스트라와 일했지만 같은 문제가 있었고, (오직 한 곡의 녹음만이 존재한다) 또한 그녀는, 남부 공연 투어에서 뿐만 아니라 뉴욕에서도 역시, 인종차별 문제를 다루어야 했습니다.

 

 

1939년 그녀는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인기 있는 스타가 되어 좀 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 해에 그녀는 영원한 레파토리가 된,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력한 반 인종차별의 가사를 담은 "Strange Fruite"을 녹음함으로써 역사를 만들게 됩니다. 1940-42년의 녹음에서는 사이드 맨들이 솔로 연주를 하는 경우가 드물어지면서 과거보다 훨씬 더 지원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연주인들의 비중이 줄어들고 빌리 자신의 역할이 커지는 경향으로 녹음했다는 뜻입니다) 비록 그 구성은 여전보다 덜 재즈적이었지만(less jazz-oriented) 빌리 홀리데이의 목소리는 사실상 데카 레코드 시절(1944-1949)이 가장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Fine and Mellow",(1939)와 "God Bless the Child"를 발표한 상태였지만 최고의 히트곡인 "Lover Man"과 "Don't Explain", "Goodmornig Heartache",  "Ain't Nobody's Bizness If I Do", "Them There Eyes", "Crazy He Calls Me"를  최초로 녹음한 것은 바로 데카 시절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녀가 헤로인 중독에 빠진 것은 바로 이 시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1947년의 대부분은 감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대중적 인기로 인해 그녀는 악명 높은 유명인사가 되었고, 그녀를 좋아하는 청중은 갑작스레 증가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레이디 데이는 영화도 찍을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1946년 "New Orleans") 하녀 역을 맡게 되어있다는 사실에 혐오를 느꼈지만 일찍부터의 우상인 루이 암스트롱과 출연하게 됩니다.

 

 

1950년부터의 빌리 홀리데이 이야기는 점차적인 내리막길이 됩니다. 1952년에 시작된 노만 그란츠를 위한 녹음은 그녀를 다시 한번 올스타 재즈 밴드와 공연할 수 있도록 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급격히 퇴락하고 있었습니다. 헤로인 사용과 과도한 음주로 초래된 불행한 관계는 그녀의 삶을 괴롭혔습니다.

 

 

1956년에 그녀는 이미 전성기를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1957년 말 the Sound of Jazz라는 방송에서 레스터 영(그는 감정적인 솔로 연주로 공연을 훔쳤다. -who stole the show with an emotional chorus- 즉 레스터 영은 과거 그녀와의 사랑을 추억하며 감상적이고 애절한 코러스를 연주했다는 말이 되겠지요...), 콜맨 호킨스, 제리 멀리건, 로이 엘드리지와 공연하며 "Fine and Mellow" 불렀을 때, 그녀는 마지막 영광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종말은 가까이 있었습니다.

 

홀리데이의 1958년 앨범 "Lady in Satin"을 들어보면 43살의 싱어가, 까마귀처럼 목쉰 73살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그녀는 죽었습니다. 슬픈 그녀 인생의 최후의 장은 그녀의 임종 순간에 헤로인 소지혐의로 체포되었다는 사실에서 절정을 맞게 됩니다.

 

 

6.

 

 

운이 좋게도 빌리 홀리데이의 녹음은 살아 있을 동안의 그녀보다 훨씬 더 나은

대접을 받아왔고, 사실상 그녀의 모든 녹음은 시디로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형식의 녹음을 통해 그녀, Billie Holiday의 오래된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치자꽃의 여인...스스로에게 조차 저항했던 재즈 디바...

오늘은 여러분도 제 오래된 기억의 시간에서 흘러나오는 빌리 홀리데이의

재즈를 들어보시길...그녀의 가고 없는 세월이 의미가 없더라도...

 

 

(강미/변산바람꽃)

 

 

 

 

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