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 에세이 (27) Jazz를 예찬하며... (2012년 1월 20일 17:22 기록) - 강미(변산바람꽃)-
수업하거나 다른 일을 하다가 잠시 짬을 내어 듣는 음악과 글을 쓰면서 음악만으로 보내는 날에 듣는 음악을 선택할 때 나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살아오면서 내 정서에 맞는 음악이나 뮤지션들이 이제 점점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클래식은 잠시의 짬을 내어 듣게 되지는 않는다. 클래식은 소품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대편성 위주로 클래식을 감상하는 편이라 더 그러하다. 마음과 몸의 여유가 있는 날...시간에 쫒기지 않을 때 연주에 몰입할 수 있을 때 나는 클래식을 듣는다. 마음으로 선호하는 클래식도 작곡가가 한정되어 있어서 편애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성음레코드에서 한정판으로 발매한 고전 클래식 음반을 세트로 구입하고는(세트 구입은 촌스러운 방법이지만 한 작곡가의 연주를 한 번의 녹음판으로 듣는다는 것에서 음질에 대한 신뢰도가 높기 때문에 간혹 선호한다.)거의 LP음반이지만 베토벤의 교향곡은 거의 전 세계를 뒤져서 초판본을 구했거나 아니면 라이센스라도 초판본을 찾아서 듣는 사치를 하고 있다. 베토벤의 소나타도 그런 편이다. 모짜르트나 라벨의 곡도 마찬가지로 주로 LP 음반으로 듣는다. 현재 있는 모짜르트 음반은 교사 첫 월급을 주고 일본 라이센스 장터에 나와 있다는 것을 동생을 통해 구입한 것이다. 이 정도이면 나는 클래식은 분명 사치스럽게 청음하는 것이다.
반면 재즈와 블루스는 언제든 듣는다. 수업 중 잠깐의 짬이 생겨도 듣고, 감정적으로 피곤한 상태일 때도 듣고 술에 취한 밤, 잠이 오지 않는 밤, 일상이 버거울 때, 작은 기쁨으로 모처럼 행복할 때도, 그리고 좋은 벗들과 와인바에서 혹은 재즈바에서도 재즈와 블루스는 자주 듣게 된다. 그 어떤 상황이라도 재즈와 블루스는 그 상황에 찾아지는 뮤지션이 있고 연주가 있고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재즈를 현장에서 직접 연주로나 노래도 듣는 것을 선호하고 집에서는 주로 낡고 오래된 알텍 스피커를 통해서 LP음반으로 들으나 그 외의 장소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다.
지난 번 여의도에서 FTA 시위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의식의 갈등과 혼돈 속에서 피로가 몸을 내리 누르고 있었다. 늦은 귀가를 서둘러 전철에 몸을 실었을 사람들 속에서 문득 그랬다. 내 젊은 날을 관통하여 스마트폰이 실시간 중계를 가능하게 하는 이 정보화 세대에 이르기 까지 어쩌면 그리 달라지지 않는 이 나라의 비민주적 문화와 의식화 되었다는 자칭 진보주의자들이 보이는 별 반 다를 것 없는 획일성과 자기합리화에 그날 집회 이후의 모임에서 정신적으로 지쳐버렸었다. 그런 피곤 속에서 Nina Simone의 재즈가 듣고 싶어졌다. 그녀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담긴 깊은 저항의 진솔한 음성이 듣고 싶었다. 아이패드에 담아가지고 있는 그녀의 노래 ‘Who am I?’를 듣는다. 그렇게 안양으로 오는 내내 Nina Simone 의 음성에서 피곤을 잊고 갈등을 잊고 올 수 있었다.
재즈가 그렇다. 어떻게 해석해도 인간의 보편적 정서와 변화에 적응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물론 재지적인 흐름을 전혀 모르는 어떤 이에게 재즈는 이해할 수 없는 흑인들의 흥얼거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재즈에 잠시 다른 생각 없이 몰입해 보라. 단 1분만이라도...
재즈의 연주가 색소폰이든 트럼펫이든 더블베이스이든 심지어 드럼이든 재즈의 흐름은 남다르다. 마치 우리 혈관이 감정에 따라 다르게 심장을 움직이듯이 재즈는 그렇게 우리의 감정과 감성에 호응하여 울린다. 그래서 나는 곧 재즈가 되고 재즈가 내 안에서 내 음성이 되어 내 삶에 관여하게 된다. 나는 거의 재즈 그리고 재즈를 담아내는 블루스와 Rock에 매료된 인생을 살고 있으니 그 이해가 남다를 수 있고 심지어는 재즈에 중독되어 있을 수 있다. 모두 같은 반응을 가질 수는 없으니까...내 말은 각 각의 음악에는 그 음악을 듣는 포지션이 자리 잡게 되고 그것이 선호하는 음악이 되는데 재즈는 모든 음악이 배출하는 감정을 다 아우르는 특징을 지녔다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재즈 예찬론이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장르의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음악을 소화하기 위한 취사선택이 까탈스럽기도 하지만 내 인생이 곁가지가 없었듯이 음악을 듣는 청음생활에서도 그다지 곁가지를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왜 이 음악을 듣는지의 이유가 스스로에게 분명한 편인 탓이다. 뭐 그러다 보니 사랑도 그러하다. 재즈처럼 대상의 전부를 사랑하고 재즈처럼 그 대상의 전부와 헤어진다. 그리고 새로운 재즈와 새로운 세상을 기다리듯이 그렇게 다시 만남을 기다린다. 아...이러고 보니 나는 재즈 예찬론자인 것이 틀림없구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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