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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에세이 (3) - 재즈는 정말 고급스런 음악일까요? (다시 수정하다.)

변산바람꽃 2012. 1. 19. 21:26


재즈 에세이 (3) - 재즈는 정말 고급스런 음악일까요?

(2007년 8월 5일 기록)



                                         - 강미/변산바람꽃-






~ 앞으로 여유가 생기면 재즈에 대한 에피소드나 뮤지션에

관련된 내용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꾸며보고자 합니다.

이 중에는 다른 재즈매니아의 글을 정리해서 옮기는 경우도 있을텐데요...

제가 인용했음을 밝히고 새롭게 내용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읽기에 좀 긴 내용의 글이 많겠지만 재즈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글을 보실지도 모를 단 한 분의 회원님을 위해서라도

소신껏 꾸며보겠습니다. 재즈를 위하여!~~





제가 재즈를 좋아하고 즐겨 듣는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의아하다는 표정이더군요. 얼마 전에도 그랬습니다. 한 선배를 만나서 저녁을 먹고 재즈바에 가서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음악에 몰두하는 저를 보고 선배가 물었습니다.



"넌 재즈가 왜 좋으냐? 재즈가 원래 좀 고급스럽고 그런 음악이냐...?"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재즈가 좀 범접하기 힘든, 난해하고 그러면서 조금은 고급스러운 음악으로 느껴지는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재즈를 듣는다고 그러면 대부분 선배처럼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많더군요.


"우와~, 정말? 그렇게 안생겼는데...

" ㅡㅡ'


재즈를 듣게 생긴 사람의 생김새는 도대체 어떤 모습인지 저도 한번 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전번엔 또 누군가 그런 말도 했습니다.


"재즈는, 아니 음악은 물질적 여유와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만 들을 수 있어요. 어쩌면 우리들은 지금 사치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그말에 솔직히 저는 할 말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고역인 이들에게, '이 곡 좀 들어봐요, 죽이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건 무지하게 배려가 부족한 행동에 속하는 것이니까요. 레코드샵을 돌며 시디를 여러 장 사고 라이브 클럽에 앉아 맥주를 들이키며, 색소폰에 취하는 행위는 물론 여유로운 자의 행복한 자기 도취에 불과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재즈란, 아니 음악이란 원래 그렇게 가진 자와 여유가 갖추어진 자만 들어야 되는 걸까요...


물론 아닙니다. 재즈는 노예들이 흥얼거리던 아프리카의 저 토속적인 민속음악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유럽의 고전음악적 기초와 만나 이루어진 음악입니다. 재즈의 탄생에는 크레올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하는데 creole이란 프랑스인과 흑인의 혼혈을 말합니다. 재즈의 발원지라고 알려진 뉴올리언즈는 프랑스 식민지였거든요.


이들은 유럽의 고전 음악적 기초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즉 서구 유럽 음악의 기초를 이용하여 흑인들의 음악적 정서를 표현하다보니 전혀 새로운 음악이 탄생되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게다가 흔히 재즈의 발생지라고 일컬어지는 뉴올리언즈에서는, 재즈는 그야말로 홍등가에서 울려 퍼졌고 '마칭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이었으며 댄스파티에 주로 불려다녔고 장례식에도 빠지지 않던 음악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거리에서 흔하게 넘쳐나던 음악이었던 겁니다. 물론 그때의 재즈가 지금의 재즈와 같은 것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요...


그럼 어찌하다 재즈는 이처럼 접근하기 힘들고 왠지 고급스러운 것처럼 느껴지며,

흔한 대중음악처럼은 흔하지 않게 된 것일까요?


사실 재즈의 발전 과정을 보면 어쩌면 이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1940년대 중반까지 재즈는 광범위한 대중의 것이었습니다. 흔히 재즈의 시대(the jazz age)라고 불려지던 1920년대와 스윙이 전 세계적으로 퍼졌던 1930년대는 라디오와 영화를 통해 재즈가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뉴올리언즈는 원래 이름난 군사 항구도시였습니다. 따라서 일찍부터 번성했고


외부의 출입이 많았으며 당연히 유흥가가 발달했고 거기서 재즈는 연주되었습니다. 재즈는 어디까지나 지방 음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900년대 초반 뉴올리언즈의 군사항구가 폐쇄됩니다. 갈 곳 없어진 재즈 뮤지션들은 미시시피강을 거슬러 증기선을 타고 캔자스시티와 시카고로 향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재즈의 메카가 되는 뉴욕을 향해 뮤지션들이 집중되는 현상이 생깁니다. 이것이 재즈가 점자 미국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지요.

또한 라디오의 발명으로 재즈는 전국적인 전파를 타고 대중의 귓가로 흘러듭니다. 그때는 댄스 연주곡이었으므로 누구나 다 흥겹게 발을 구를 수 있었을테고 또한 마땅히 다른 음악이 없었으므로 재즈는 곧 pop이었습니다.


그러다 1945년을 전후해서 비밥 혁명이 일어납니다. 단순한 스윙이 그야말로 정신을 집중해야만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대변신을 일으킨 것입니다. 지금은 비밥을 모던재즈라 부르고 1960년대의 프리재즈를 아방가르드라 부르지만 1940년대는 비밥이 곧 아방가르드였습니다.


비밥의 출현은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변주와 변형을 위주로 하는 재즈는 단순한 춤곡으로 쓰이기에는 그 한계가 너무 컸던 것입니다. 대규모 인원을 수용한 빅밴드를 통해 연주되던 스윙은 개성적이고 실력 있는 각각의 연주자들은 묶어두기에는 너무 몰개성적이었습니다. 또한 대중적 인기와 상업적 성공에 얽매여 새로운 기법의 개발과 개척에는 무관심했습니다.


비밥 운동은 실력있고 개성적인 연주자들을 해방시켰고 그럼으로써 급속한 재즈의 진보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콰르텟, 퀸텟이라고 부르는 포메이션이 바로 이때 정착됩니다. 10명에서 20명에 이르던 빅밴드가 단순히 수적으로 축소되었다고 말하기 보다는 빅밴드 형태의 축약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빅밴드의 리듬 파트는 그대로 유지되면서(피아노-베이스-드럼) 주로 2~3명씩 담당하던 색소폰과 트럼펫이 한명씩으로 줄어들었던 것입니다. 소규모 콤보(combo)에 의해 연주되는 비밥은 근본적으로 댄스음악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책을 읽어보니 찰리파커는 스윙 재즈의 빠르기보다 세 배 이상 빠르게 연주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보니 스윙의 리듬감에 맞춰진 사람들이 비밥에 몸을 흔들 수는 없을 겁니다. 트로트에 몸을 흔들던 우리들의 어머니가 HOT의 음악에 춤을 출 수 없는 것처럼...



이때부터 재즈 평론가라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평론가의 등장은 재즈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평론가란 무언가 어려운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사람일테니까요...


이러한 비밥 운동은 1950년대까지 지속되는데 재즈가 대중의 관심으로 더욱더 멀어지게 된 계기는 바로 50년대의 락큰롤의 등장이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로 대변되는 락큰롤은 이전까지 스윙이 담당하던 댄스음악을 단번에 대체합니다. 이제 라디오에서는 스윙이 아니라 락큰롤이 전파를 타고전국으로 퍼져나갑니다.


1960년대의 프리재즈의 등장은 그야말로 재즈에 있어서는 치명타였습니다. 프리재즈의 등장 또한 어찌보면 필연적이었습니다. 1960년대란 시기는 흑인들의 정치적 권리를 위해 투쟁하던 시기였으며, (마틴 루터 킹이 활동하던 시기가 바로 이때이며 곳곳에서 격렬한 흑인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월남전의 영향으로 반전 시위가 또한 거셌고, 자유를 추구하는 히피문화가 번성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1960년대는 그야말로 혁명의 시대였다고 볼 수 있는데 1968년을 전후해서는 프랑스에서 일본에서 남미에서 베트남에서 하여튼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운동으로 시끌벅적 할 때였습니다. 정치학에서는 68혁명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정치사상적 자유가 그대로 투영된 것이 바로 프리재즈였습니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재즈를 추구했었지요. 하지만 이러한 급진적 음악운동이란 언제나 대중들로부터 이해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듣기 좋고 아름다운 음악에 사람들은 마음을 주고 몸을 흔드는 법이니까요. 롤랜드 커크라는 연주자는 한번에 색소폰을 세 개나 입에 물고 연주를 하곤 했는데 어느 누가 이런 소리를 좋아하겠어요...


게다가 60년대엔 그 유명한 비틀즈의 미국 공습이 있었습니다. 알다시피 전세계는 난리가 났지요. 지미 핸드릭스니 제니스 조플린이니...락에 대해서는 요즘에 탐미하고 있는 저는 당시의 락이 대단한 위세를 떨치게 된 것을 또 다른 시대적 흐름이려니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재즈는 대중의 한복판에서 서서히 그러나 급격히 변두리로 밀려납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전자음을 이용한 퓨전 재즈(락적인 사운드를 구사했다고 해서 JAZZ-ROCK라고 부르기도 합니다)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퓨전이 재즈를 중심으로 돌려놓지는 못했지요. 이러한 전개 과정이 재즈의 역사에서 유추할 수 있는 재즈의 도태(?)과정입니다. 그럼 재즈 외적인 측면에서 재즈를 들여다보겠습니다.


20세기 문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1차적으로 직접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자본을 통해서 2차적으로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재즈를 흔히 접할 수 없는 이유에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자본은 이윤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윤이 남지 않는 문화, 즉 돈이 되지 않는 문화는 외면하고 심지어는 사장시킵니다. 자본이 유행을 빠르게 전파시키고 심지어 인위적인 유행을 만드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윤의 극대화에 있습니다. 재즈가 번성기였을 때 레코드 산업은 벌떼처럼 재즈 연주자들의 주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듣는 재즈의 대부분은 바로 이러한 전성기 때의 음반들입니다. 그러나 재즈를 대체할 새로운 유행이 등장하게 되자 음반 산업의 자본은 급속도록 빠져나갑니다. 더 이상 재즈는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장사가 아니었거든요. 그 시기가 바로 1960년대 중반 이후입니다.


1970년대부터는 쟁쟁한 재즈 레이블들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스러집니다. 대부분 인수합병의 형태로 대규모 자본으로 흡수됩니다. 1980년대 말이 되기까지 재즈는 그야말로 돈이 안 되는 장사였습니다. 음반 기술은 여전히 LP 기술에 머물러 있었고 오래되고 낡은 기술로 녹음된 오래된 재즈를 다시 발매할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지요.


--- 여기서 옆으로 새서 잠시 언급하자면, 음반은 SP ~ LP ~ CD로 발전해왔습니다. SP는 숏 플레이로 78회전반이라고도 하는데 1분에 78번 회전한다는 뜻으로 한 면에 3분밖에 녹음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음반에 들어갈 수 있는 곡이 앞 뒤로 해서 딱 두곡이었지요. LP는 40년대 말에서 50년대 초반에 걸쳐 개발된 기술인데 롱 플레이라는 뜻으로 36회전반이라고도 합니다. 이 기술은 혁신적인 것이었는데 이 LP로 인해 40분정도까지 녹음이 가능해서 음반산업이 폭발적 성장을 이룩하는 계기가 됩니다. CD 기술은 다 아실테니 설명은 않겠습니다.--


그러다 80년대 초중반에 개발된 CD가 LP를 대체할 보편적 음반 형태로 인식되면서 재즈의 양상은 변합니다. CD로 오래된 재즈를 복각해냄으로써 보다 선명하고 확실한 음색을 복원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규모 소비는 불가능하더라도 재즈의 생명은 죽은 것이 아니었으므로 자본은 그 가능성을 이용했던 것이지요.


지금 현재 가장 많이 팔리는 재즈 음반들은 재즈의 전성기에 명반이라고 취급되던 음반들 그러니까 블루노트 계열이나 리버사이드, 프레스티지, 버브, 콜럼비아 등 그야말로 재즈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군침을 흘릴 레이블의 음반들입니다. 또한 오래전에 녹음된 음악을 재생하는 것이므로 새로운 추가 비용은 기술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별달리 이렇다할 것이 없습니다.


서서히 돈 되는 장사로 재즈는 변모한 것입니다. 이제 재즈는, 아니 재즈 음반은 몇년 전보다는 훨씬 흔한 음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다 아실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재즈는 무언가 접근이 쉽지 않은 음악이라는 것을...


몇 년 전 그러니까 재즈가 유행처럼 번졌을 때를 여러분도 기억하실 겁니다. 천지사방에 재즈라는 단어가 돌아다녔지요. 수없이 생겨나던 재즈카페, 재즈바...그야말로 자본의 대규모 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흐른 후의 결과는 참담합니다. 재즈는 예전보다 더 한국의 대중들에게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음악만 틀어주는 FM 라디오에서는 고작 단 하나의 한 시간 짜리 재즈 전문 프로그램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황금시간대를 피한 자정에...간혹 가뭄에 콩나듯이 나오던 라이센스 음반은 이젠 구경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비싸게 수입된 음반만을 구입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자본은 돈을 따라 움직이지만 그 돈을 움직일 수 있는 건 바로 대중입니다. 우리들이 조금만 더 재즈에 열광하고 재즈 음반을 한 장이라도 더 구입하고, 재즈에 관련된 서적을 한권이라고 더 구입한다면 우리나라의 재즈 현실은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이 만약 그저 듣기 좋은 음악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잠깐이라도 정신을 기울여 재즈에 몰입한다면 재즈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귀를 기울이는 그 때부터 재즈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다가갈 겁니다. 익숙해진 댄스음악은 지겨워질지 몰라도 익숙해진 재즈는 물리지도 않고 언제나 듣기 편하거든요...


얼마 전에 레코드 가게에서 놀랄만한 컴필레이션 음반을 본적이 있습니다. 작년에 유행한 경향이겠지만 CD 한장 가격으로 다섯 장을 주는 음반이었는데, 그 다섯 장이 전부 다 재즈로 빽빽이 채워져 있더군요. 뭐, 그 곡 리스트를 보고는 그만 싱거워져버렸었지만 그나마 그러한 재즈 컴필레이션이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걸 보고는 흠.. 조만간 재즈가 다시 유행을 탈려나 보구나...라고 생각하며 조금쯤은 흐믓하기도 했습니다.


그때쯤 되면 각 방송사마다 재즈 프로그램이 생겨서 황금시간대를 차지하고, 버스 안에서도 재즈가 흘러나오고 오래된 재즈음반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온통 모든 카페가 재즈만 틀어주며 우리 선배도 나랑 같이 맥주를 마시며 발을 구르고, 생활의 여유가 없는 이웃들도 아, 재즈가 이런 거군...하고 머리를 끄떡일 수 있을까요...


그런 때가 정말 왔으면 좋겠는데요...


(강미/변산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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