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안에 있는 나를 바라본다.
-강미 (변산바람꽃)-
나는 유난히 높은 곳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 서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없고, 유리창으로 밖이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쪽에 기대서야 안심이 된다. 배를 타도 멀미가 너무 심해서 거의 초죽음이 되고, 배 위에서는 바다를 바로 내려다보지 못한다. 결혼 전에는 시댁 식구가 될 아이 아빠의 형제들과 에버랜드에 갔다가 성화에 떠밀려 탔던 바이킹이라는 놀이 기구 안에서는 비명을 지르다가 그만 기절을 하여 바이킹 역사상 처음으로 중간에 정지하고 구급차에 실려 가기도 했었다.
딸과 함께 갔던 서울 대공원에서는 덜 걷기 위해 탔던 리프트 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말짱한 딸 옆에서 심장 쇼크가 와 응급실에 실려가 대공원 직원들의 넋을 빼놓기도 했었다. 지금도 딸은 그 일로 나를 놀리곤 한다. 그런 내가 고층 아파트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하여 살면서 복도를 걸을 때는 벽에 착 붙어서 걷거나, 집안에서도 절대로 베란다에 가까이 서서 밖을 내다보지 못한다. 흔하게 창밖으로 이불 같은 것도 내밀고 털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정도이면 나의 고소공포증은 가히 병일 것이고 병이다. 지금도 육교를 건너가야 할 상황이면 나는 먼 길을 돌아서라도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을 찾아 건너가곤 한다. 아...나는 얼마나 세상 살아가기에 버거운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설날 이후 주말 수업을 어쩔 수 없이 하면서도 감기 몸살 뒤 끝에 찾아온 입술 주변의 단순포진으로 인해 오늘도 방콕하고 지내는데 모처럼 서울에서 선배님께서 몸보신 시켜주신다고 저녁을 학원가에서 사주러 오셨다. 몰골이 사람들 앞에 나설 상황이 아닌지라 시커먼 모자를 눌러쓰고 고개를 숙이고 학원가 거리를 가로 질러 선배와 만나 모처럼 만에 맛난 저녁을 먹었다.
항상 내게는 내가 인정하기 쉽지 않은 내 자아를 건드리고 노골적으로 지적하시면서 내가 스스로 만든 고정관념과 내 삶의 고소공포에서 내려오기를 자극하시는 내게는 멘토 같으신 선배님이시다. 선배님과 만날 때 마다 나는 하나씩 누구에게 하지 않는 내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그 많은 내 수다를 선배님은 다 들어주신다. 마치 빨랫줄에 널어진 빨래가 태양빛에 제 모습으로 찾아가듯이 나는 선배님한테 나를 꺼내 널어놓곤 한다. 이상하게 그 선배님한테는 내가 나를 꺼내어 바닥까지 뒤집어 놓아도 부끄럽지 않다. 그 선배님은 마치 카타리시스가 되는 것처럼 현실에서 내가 쌓아 놓은 욕망으로 입은 옷을 벗어서 스스로 빨아서 널어놓고, 내가 나를 들여다보게 하신다.
그렇게 그 선배님은 오늘도 내가 스스로 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가차 없이 내 허접한 일상과 버리지 못하고 끌어 않고 살아가는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모순을 아프게 끄집어내신다. 내가 마치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으니까 높은 곳은 올라갈 수 없노라고 올라가기 전에 먼저 무섭다고 나를 일반화 시키고 하루하루 쌓아간 내 허접한 욕망을 지식으로 변명하는 나를 내가 보게 만드셨다. 커피와 홍차를 연거푸 마시면서 내내 나는 커피와 함께 배가 부르도록 버려야 할 내 허접한 욕망을 찌꺼기를 확연하게 바라보며 삼키고 있었다.
그 선배님으로 인해 불러 일으켜진 나는... 정말 나약하고 뻔뻔하며 지식인으로 무장한 현실에의 외투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그저 그렇고 그런 인생 하나일 뿐이다. 어디 아늑하고 한적한 곳에서 몸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우아하게 살아가는 일상을 꿈꾸는 정도 밖에 내가 지금의 팍팍한 현실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으면서도 나는 여유로운 척 내가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내 중심으로 세상을 움직이게 만들려는 아집을 열정으로 착각하고 있는 나는 나만이 내 열정만이 옳은 것처럼 그렇게 착각의 하루를 오늘도 삼켰는데...기실은 내가 들여다 본 내 안의 나는 얼마나 왜소하고 허접하며 스스로에게 조차 낯선 존재인가...
내 안에 있을 내가 모를 나를 찾아보기 위한 시간을 많이 갖고자 하면서부터 나는 내 안의 내가 딛고 선 땅이 푸석푸석 메마르고, 한 여름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마냥 갈라져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내 살아 온 세월이 무에 그리 강팍했을까...나도 모르는 사이 만들어온 내 안의 내 모습에 절망스러운 공포감을 느껴야했다. 이런 날이면 곧 무너져 주저앉을 담벼락에 기대선 것 마냥 초조하고 답답하다. 어떻게 할까...이렇게 계속 허접한 욕망을 세상을 위한 최선의 방법인 것처럼 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처럼 나를 속이고 계속 유지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선 땅이 참 척박하다. 내 이상이 참 푸석하게 메마르다. 어떻게 해서라도 고소공포증이 있으니까 올라설 수 없다고 다시 스스로를 일반화 시키고 있는 곳으로부터 스스로를 내려놓을 것인가...아니면 엉덩이를 쭈욱 빼고라도 가까이 다가가 하릴없이 쌓아온 담에 가려 푸석하게 메마른 내 자아의 땅에 물을 주어야 할까...
아직도 내가 나를 들여다본다. 찰나의 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을 인생 하나, 겁먹어 두려운 얼굴로 도망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는 푹신한 풀밭으로 들어가지는 못할지라도, 공포감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더라도 여기서 한 걸음 디뎌보아야지...
아직 나를 보고 있다. 그런 내게 손 내밀어 기회를 주고 싶다. 살아있는 동안 살아갈 날을 위해 나를 추스를 시간을 찾아가고 싶다. 오로지 자유롭게 인식하는 존재로서 서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허접하게 덧입은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겠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아니라 남아 있을 시간을 넘어...내 곁에서 해바라기처럼 커가는 딸에게 제대로 살아내는 흔들리지 않는 엄마로 그냥 있어주기만이라도 할 수 있기 위해서...그 무엇보다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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