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민신문 2월3주 ‘만필’원고)
낯설어진 고향이 그리운 이유
- 강미(변산바람꽃)-
페이스북의 '고창군' 그룹에 들어올 때 마다 고향 분들이 올린 사진이나 글 속에서 고향에 있는 가족을 찾아갔다거나 아니면 고향에 현재 살면서 함께 살아가는 고향의 모습을 전하는 것을 볼 때 마다 같은 고장을 고향으로 두면서 마치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고창을 고향으로 두고 있으면서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께서 누워계신 선산으로 들어서는 논두렁길을 뚜렷이 기억하고 찾아가면서도 이제는 당숙들만 두 분 남아서 지키고 계시고 정작 대종손인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셔 일까...장남인 남동생은 미국으로 이민가고 고향을 아는 자식들로는 내가 유일한데 아버지 형제인 작은 아버지들 마저 산일이 있을 때를 빼고는 고향을 찾지 않고 사신다. 그렇게 아버지의 직계에서는 아무도 고향에 살고 있지를 않다.
나이 들면서 앞을 바라보기 보다는 뒤를 돌아보게 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아버지를 추억할 것을 찾게 되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 공유했던 고향에 대한 흔적들...머시마들 대장 노릇하며 하루 종일 산과 들로 싸돌아다니는 큰딸의 모습에 신기해하시던 아버지와 당숙네인 종조할아버지댁까지 합쳐서 아들만 주렁주렁 많은 집에서 태어난 큰솔녀를 며느리 품에 안길 기회를 주지 않으실 만큼 귀이해 주셨던 친할아버지...이상하다...이제는 친구들도 고향의 집터도 낯설어져 버린 세월만 뚜벅뚜벅 스쳐가건만 거꾸로 그 세월을 거슬러 기억을 찾아 마음이 먼저 고향 언저리를 서성이게 된다.
친할아버지 유물로 가지고 있는 오래된 사진 속에서 그때의 기억들을 들여다보다가 불쑥 성송면 무송리 갈매, 혹은 갈산부락이라고 불리던 고향집 뒷터의 쭉쭉 뻗은 대나무숲이 그대로 있는 고향집은 이제 일가의 집이 되어서 방문하기 조차 부담스러운 지금이 참 아쉽다. 그 고향집에 지금 누군가 아버지의 형제라도 살고 있다면 더 자주 찾아가게 되었을까?
최근에는 작업실을 둘 곳으로 낡은 시골주택을 찾으면서 할 수만 있다면 고향집 가까운 곳에 작업실이라도 두고 그 핑계로 가끔이라도 내려가면 좋을텐데 하고 머리속에서 계획만 오락가락 무성하다. 고향인데 마치 관광객처럼 요즘 가끔씩 다녀오는 길이 참 많이 허전한 탓이다. 아마도 고향도 함께 살았던 가족의 흔적과 기억이 함께 있어야 마치 심장에 이어진 줄처럼 온기가 느껴지기 때문일까...나를 전혀 모르는 혹은 잊었을 고향 사람들에게 다가가기에 낯설음을 느끼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고향집터를 근처까지 갔다가 그냥 둘러만 보고 돌아오길 몇 번 이다. 기억은 그대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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