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의 문학서재 §/◎ 에세이 서재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요양을 앞두고...2012. 4. 5.)

변산바람꽃 2012. 4. 5. 03:44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 강미 (변산바람꽃)-




작년 6월 18일 교통사고로 트라우마 상태를 처음 경험하면서 내게 다시는 이런 최악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했던 기억이 난다. 죽음의 순간을 어린 나이에서부터 유전된 체질 탓과 환경 탓으로 한 인간이 경험하기에는 참 많다 싶을 만큼 겪어온 탓에 내가 맞을 죽음의 순간에 대한 환상은 없었는데 최소한 그랬다. 설마 교통사고로 죽기야 하겠어 하고...


사고의 그 순간은 죽음이 까만 망토를 쓰고 내 입 안으로 연기처럼 스며든다거나 하는 만화적인 것은 아니지만 꼭 표현할 단어를 찾는다면 교통사고의 순간에 느낀 죽음의 모습은 '공포'였다. '어, 저 차가 왜 이리 빨리 다가오지' 한 생각이 미처 뇌리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나는 택시 뒷좌석에서 콩콩 튀고 택시는 빙그르 돌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나는 지금 죽는가라는 그 숱한 순간들에도 두렵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늘상 옆에 있는 그림자처럼 겪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중학생 때 부터 글을 통해서 그와 같은 앓아서 죽음에 이르는 것에 대한 사유를 흉내 내고 있었던 덕분에 두려움을 잊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그리고 어쩌면 하도 죽음의 순간을 물을 마시듯 자주 넘기다 보니 이제 오히려 나는 질기게 오래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낙관도 있었지 싶다. 그래도 어쨌든 내가 예상한 神이 마련한 내 죽음의 순간은 최소한 교통사고는 아니었다.


사고 후에 사고 당시의 상황을 꿈에서 반복해서 겪는 트라우마 상태를 경험하면서 나는 생전 처음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뜩이나 잘 자지 못하는 잠을 빼앗겨 버렸다. 꿈에서 조차 '공포'의 순간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아서 사고로 온통 뒤틀어진 장기가 콕콕 외부로 쑤셔오도록 잠을 안자는 것으로 망가진 몸을 뼛속까지 긴장시켰다. 교통사고로 인한 공포는 내게 정말 생소한 것이었다. 안기부에 끌려가서...경찰에 끌려가서 겪어야 했던 운동권 시절의 공포는 내 신념에 대한 스스로의 배신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견딜 수 있었다.


절대부방비 상태에서의 홀로 버려진 감각...교통사고로 인한 공포는 나로부터 내가 떠나는 절대적인 고독이었다. 살면서 매 순간이 고독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는데 공포로 인한 내가 내게 분리되는 고독은 공포에 기인했기에 뼛속까지 시렸다. 어떻게든 그 절대적 공포의 순간을 잊어야 다시 살 것 같았다. 병원에 입원한 내내 나는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사고의 순간을 잊기 위해 글쓰기로 해결하려고 했다. 죽어라 썼다. 심한 두통 때문에 침대에 누우면 침대가 빙글빙글 도는 현상으로 인해 똑바로 눕지도 못하면서 오로지 노트북을 웬수 마냥 끼고 활자에 눈을 박으며 어지러움을 붙잡고 쓰고 또 쓰며 기억 속에 저장된 온갖 지식노트를 다 펼쳐내며 어휘를 뒤지고 문장을 찾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그렇게 6개월에 할 강의노트를 다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마치 내 머리는 다친 적이 없는 듯...교통사고로 인해 다친 머리에 아무 이상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문병으로 찾아온 가족, 선배, 후배들에게 여전히 씩씩하게 견디는 것처럼 위로가 주는 부담을 벗어나 글쓰기에만 몰입했다. 그렇게 반복되는 사고 순간의 공포를 잊으려고 했다. 그렇게 차츰 담당주치의가 연계한 정신과 처방의 수면제 없이 잠을 잘 수 있게 될 때까지 내 의식에 담아있는 온갖 지식들을 생애 가장 많이 글로 쏟아내었다. 그래서 견디어 내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아마 그 순간처럼 글을 많이 쓰는 일을 없으리라...


퇴원 후 물리치료와 침치료를 병행하면서 나는 입시 시즌을 치루어야 해서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사고 두 달 후...

왼쪽 머리 머리카락 뿌리가 있는 피부 밑에 피하지방 출혈이 길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보통 사람은 다치고 두 달 정도의 기간이면 혈액순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흡수된다는데 또 내 체질 때문에 나는 그에 흡수되지 않고 머리카락 뿌리에 응고되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 후로 부터 시작된 지리한 부분마취에 의한 레이저수술을 통해 응고된 혈액을 제거하는 수술을 지난 2월까지 7차례나 받아야 했다. 심장질환을 앓고 있고, 유전된 체질로 인해 이전부터 내 몸에 맞는 마취약은 한 종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마취 시간이 길면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의 위험 때문에 부분마취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서 시술의 횟수가 늘어난 것이다. 그렇게 지리하게 계속된 교통사고 후 치료과정 중에도 나는 수업을 계속했고, 간혹 막걸리도 마시고, 간혹 노래도 부르고, 간혹 밤새도록 글도 쓰고, 간혹 음악을 들으며, 간혹 죽어라 하루 내내 잠만 자기도 하다가, 지난겨울은 내내 선배의 선거일을 도우면서 마치 나는 내게 사용할 에너지가 여전히 흠뻑 내 몸 안에 저장되어 있는 줄 착각하며 지냈다. 그렇게 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었다. 봄이 되어도 일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겪어져 갈만 하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다.


잘 나가던 일상의 끈이 마치 고무줄 중간이 툭 끊어지듯이 끊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때론 감정의 끈일 수도 있고 감성의 끈일 수도 있고 사유의 순간에서 단절된 순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어떤 단절의 순간은 거기에 맞는 계기가 있을 때 찾아온다. 그렇다는 것을 처음 경험하지는 않지만 완전하게 무기력한 상태에 몸이 빠져드는 것 같은 몸과 몸의 단절감은 이번에 처음 겪게 되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 몸은 교통사고 후에 느낀 공포로 인한 몸과 의식의 분리처럼 느닷없이 찾아왔다. 나는 그때까지 내가 잘 견디는 줄 알았다. 나 참 용하구나 했다.


선배의 선거가 끝나고 느낀 우리나라에서의 희망 없음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희망 없음이 어제 오늘의 느낌도 아니니까...) 해단식에서의 선거 경선 패배가 준 상실감을 같이 공유하게 된 캠프원들과의 뒷풀이가 새벽까지 이어지고 그 다음날...아마도 수요일이었을 것이다. 딸내미가 학교에 혼자 간 것도 모르고 자고 일어났는데 어두침침한 방안에서 순간 내가 어디에 있나 하는 낯설음으로 깨어나서 머리맡에 있는 휴대폰의 시간을 보았다. 오후 5시가 지나 있었다. 꼬박 12시간을 잔 것이다. 그런데...목이 말라서 일어나야겠다 싶었는데 내 몸이 내 의식을 거부하는 것처럼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머리만 들어 올려졌을 뿐 몸뚱이는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내게 분리되어서 저만치 놓여있는 것처럼 일으켜지지 않았다. 왜 그러지 느낀 순간도 잠시 의식이 내 정신에서 떠나려고 한다는 것...어떤 형태의 느낌이 스멀거리며 다가오고 나는 의식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손가락이 스마트폰으로 119를 감각적으로 누르고 있었을 만큼의 의식은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내 몸에서 생기가 덜어나간 것처럼 탈진상태로 병원에 입원해서 쉬어야 했고 그리고 지금까지 쉬고 있다. 아니 주말에는 수업을 하고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하다 하루 해를 넘기고 잠이 들었다 깨면 어김없이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진단은 병원마다 똑 같았다. 쉬어주어라...치료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심장에서 뇌로 가는 산소호흡량이 매일 불규칙적으로 반복해서 떨어지기 때문에 탈진상태가 반복된단다. 또 면역력이 현저하게 낮아지면서 척추 4,5번 사이의 연골의 수분이 말라가고 있다했다. 그러니 무조건 섭생하고 쉬라 한다. 몸이 스스로의 생기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료만 받으면서 쉬라 한다. 그런데도 나는 나를 믿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 몸의 바닥에 남아있을 생에 대한 에너지를 믿었다.


그저께 새벽에 다시 탈진상태로 스스로 콜택시를 부르고 택시기사 아저씨를 집으로 올라오라 해서 그 택시기사가 마치 생명줄인양 매달려서 병원으로 가면서 교통사고에서 기인한 공포가 주는 절대적 고독감이 남은 의식 속으로 비지고 들어온다.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나를 향해 울고 있었다. 아..너 참 많이 힘들구나..내가 나에게 속삭이는 소리도 들리는 듯 했다. 철저하게 홀로인 내가 비로소 나를 긴장으로 부터 놓아주면서 함께 울고 있었다. 귓속으로는 내가 타고 가는 택시기사가 내 정신을 확인하는 목소리가 들리면서 다시 나는 아마도 의식을 잃었나 보다. 그 착한 택시기사는 내가 응급실에서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옆에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남이 내 의식이 돌아오는 순간에 내게 있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이제 가족들을 부르기에도 너무 미안한 시간을 앓고 있는지라 아프면 혼자 해결하려고 해서인지 무의식에서도 나는 가족을 찾지 않게 된 것이 언제인지 모른다. 간혹 딸내미가 정신을 잃는 엄마를 구하기도 하지만...아이 아빠도 아이의 친할머니도 친정 가족도 항상 내가 회복된 후에 내게 닥친 위기를 알게 되니까 난 참 오랜 시간을 반복해서 앓아온 턱을 스스로 치루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렇게 나는 탈진상태이다. 내일 아침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들지 못하는 새벽을 보내는 악순환을 계속하면서...


어제 응급실에서 돌아와 누어서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잠시 잊으려고 했으나 내내 이렇게 반복되는 탈진상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한다는 절박감...공포와는 다르나 홀로 새롭게 생긴 두려움과 정면으로 마주보아야 했다. 이제 인정하자. 정말 내 몸은 쉬기를 원한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래 인정하자.


참 희한한 겨울을 보냈는데 다시 맞는 봄도 이전과 다른 느낌으로 맞고 있다. 아직 내 몸의 체감온도는 겨울인데 가슴으로는 마치 다른 차원의 계절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낯선 내 몸을 내 의식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생경한 경험을 하고 있다. 이전에도 죽음에 이를 만큼 앓는 일이 반복되었으나 이처럼 두려움을 몸으로 느끼지는 않았었다는 것이 이상하다. 자 어떻게 내가 나를 쉴 수 있도록 할까...상황이 참 여의치 않다. 내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환경인데 강의를 쉬면 그만큼 경제력을 잃고 지금 닥친 학원가의 위기 순간에 도태되어 그야말로 지금도 힘든데 더 힘들 수 있는 빚더미에 앉게 될 터인데...그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학원이 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각오로 과연 나는 온전하게 체력회복과 치료가 동시에 가능할 만큼 휴식하는 여유를 만들 수 있을까...이제 스스로 무한하게 에너지가 생기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자만은 하지 않는다.

 

오늘 새벽 다섯 시에 목이 마르다는 것 때문에 눈을 떠서 일어났다가 어제 응급실에서 돌아온 후 누워서 멀뚱하게 있는 것보다 좋지 싶어서 잠시 읽다만 프랑스 작가 피에르 뒤셴의 논픽션 소설 '사랑을 위해 죽다'를 다시 읽었다. 정확하게 92년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손에 잡은 것인데...해가 밝아 올 무렵 책 커버를 덮으면서 문득 눈가가 젖여있는 것을 알았다. 참 오랜만에 가슴으로 다가오는 사랑이야기가 지친 몸을 아리게 했다. 생에 대한 가치관이 송두리채 바뀌어 버리는 경험들이 어디 죽음에 이를 육신의 병에서만 있겠는가... 사람에 대한 사랑을 잃어도 죽음에 이를 만큼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잊고 있었나 보다.

 

‘사랑을 위해 죽다’는 우리 사회가 외면하려 하는 금지된 사랑을 하는 두 남녀에게 그들의 사회는 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 생애 전부의 사랑일 수 있음을 타부시하고, 보수적인 사회제도와 금기라는 틀 속에서 어떻게 단죄하는지 그리고 주인공들은 그런 상황을 또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내용이다. 새벽에 깨어나 읽은 책에서 나는 사랑의 위대함이라던가 시대의 고정관념의 벽에 부딪쳐 상처받고 방황하면서도 그토록 치열하고 일관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이라던가 그런 것 때문에 눈물지었던 것은 아니었다. 교사와 학생이라는 도저히 용납될 것 같지 않는 두 사람이 얼마나 함께 하는 생에 대해 절실하게 동경하고 지키려고 싸우려고 하는 지...막상 그와 같은 위기가 나 자신에게 생긴다면 감히 견디어 내지 못할 것이면서도 그들의 그 생에 대한 정직한 갈망이 절실하게 내게 옮겨와 있었던 것이다. 사랑은 가장 탈진한 생의 기운에 다시 사는 동기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지켜야 할 것에 대한 가치가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일깨우기도 한다. 그런 사랑이 깨달아졌고 그리웠다.


새벽에 '사랑을 위해 죽다' 책장을 덮으면서 내 생의 버거움은 지켜야 할 사랑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에 기인함을 아픔으로 느끼면서 깨어났다. 내 몸의 탈진상태는 내 생의 에너지를 낭비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생에 대한 동기의 사라짐이고, 내 몸에서 수분이 빠지듯 늘 산소가 부족한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사랑한 사람들을 잃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자각에서 가슴이 울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죽어라 수업으로 자본을 벌어들이고 있던 순간에 나는 내가 그 자본을 적으로 싸웠던 청년시절과 화해하기 위해 갈등해야 했었다. 나만은 다르게 자본을 소유하리라 그리고 그 자본을 내 꿈에 접근하기 위해 사용하리라 했던 그 다짐의 허망함에서 오늘 새벽에는 쉬어야 한다는 것의 두려움의 깊이를 더 체감해야 했다. 어느새 자본은 경제력이 되어 내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게 하는 그 어떤 가치보다 더 큰 자리를 내 안에 또아리 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새벽에 사랑을 위해 서로를 죽임으로서 영원히 사는 선택을 한 그 주인공의 선택이 눈물겨웠던 것이다. 어찌 눈물겹지 않은 인생이 있겠는가...누구나 자기의 생은 자신에게 절실한 것인데...그럼에도 쉽게 관계에 길들어가고 또한 그 길들어짐에 익숙해져서 '사랑'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내가 더 사랑할 사람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자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에 낯설어지고 사랑에 고독해지지 않기 위해... 그래서 작은 아픔에 조차 쉽게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혹은 교통사고처럼 공포가 심장을 조여 오는 순간에 조차 살아야 하는 가치를 내면에서 찾기 위해서 나에 대한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일이다. 내 자식을 전심으로 내 가족을 전심으로...내 학생들을 전심으로...내 연인을 전심으로 사랑할 일이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사랑에 낯설어지고 분석하고 인색해졌는가...스스로에 대한 진정한 사랑조차 잊었기에 내 몸을 이리 탈진되도록 방치하고 과신한 것 아닌가...


나로 부터 내게 먼저 향해서 내 심장을 돌아서 너에게로..우주를 돌아서 숨쉬는 공기를 호흡하면서 다시 내게 생기로 돌아오는 것이 사랑 아닌가...오늘은 잠시 잠들었다 새삼 새벽에 깨어나 만난 사랑에 대한 자각으로 서늘하게 아침을 맞았다. 그리고 온갖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내 몸을 메마르게 하는 모든 인위적인 관계와 조건으로 부터 나를 자유롭게 할 치유의 시간을 어떻게든 만들어야 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본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다른 날의 새벽으로 가는 시간...


교통사고 이후의 내게 생긴 변화의 과정을 나를 전혀 모를 이도 볼 수 있는 페이스북 노트에 올리면서 나는 나를 그저께 응급실로 실고 가고 깨어날 때까지 옆에 있어주었던 낯선 택시기사 아저씨에게서 생기를 찾기 위한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을 보았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그리고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그 사랑을 내가 이제 다시 찾으려 한다는 것을 그래서 다시 내 몸에 생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약속처럼 다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친구여...그대도 오늘 자신을 통과한 사랑을 잃었는지 들여다보시길...왜냐하면...내일 내가 다시 또 어떤 형태로 절망에 이를지라도 다시 그 절망에서 몸을 일으킬 것을 믿기에...왜냐하면...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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