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자유로운 영혼
- 강미(변산바람꽃)-
화재가 났다는 모 시장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시커멓게 클로즈업되었을 때
문득 시장을 떠돌다 떠난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름도 알지 못하고 사라진 그녀의 모습이...
어느 봄날 장터에 홀연히 나타난 그녀는 하얀 얼굴에 백치 같은 미소를 지으며
시장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이름이 무언지 집은 어디인지 그녀 자신조차도 모르니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바보라 불렀고 지나가던 아이들은 거지라며 놀렸다.
시커먼 맨발에 엉덩이를 뒤로 빼고 뒤뚱대며 거리를 활보할 때면 영락없는
물오리 모양새였다. 입은 만날 헤벌쭉 벌어져 웃음을 흘렸지만 그녀의 얼굴
어디에서도 악의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법도 없었고, 잔일이라도 시킬 양이면 곧잘
해내었다. 그런 연유로 시장사람 누구도 그녀를 괄시하거나 쫓아버리려
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시장 사람들 속에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해 겨울 추위 속에서 한데 잠을 자는 그녀를 불쌍히 여긴 한 노인이 장터
가까운 자기 집 텃밭 한쪽에 구덩이를 파고 가마니를 깔아 겨울바람이나 막고
살라고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사람들이 가져다준 헌 담요로 움막 안에서나마
편안한 겨울을 날 수 있을 거라면서...
그런데 봄이 온 어느 날 시장 길에서 만난 그녀의 배가 남산만 해져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그녀의 배를 가리키며 누구의 자식이냐고 물으면 배시시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그치듯 다시 물으면 손가락을 입에 물고 수줍은 듯 고개를
외로 꼬았다. 모두 입을 모아 "쯧쯧 어떤 죽일 놈이 저 불쌍한 것을"하며 혀를 찼다.
그러던 그녀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나 했더니 어느 날 배가 홀쭉해져서
다시 시장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엔 웃음기가 가시고 아무 가게
앞이나 쪼그려 앉아 하염없이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앉아있거나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올려다보곤 했다. 그러다가도 아기 업은 여자가 저만치
지나가기만 하면 달려가 아이를 잡아당겼다.
"우리 아가 우리 아가" 하면서...
보건소에서 그녀를 데려다 해산을 시키고 아기는 영아원으로 보냈다고 하는데 보호
시설로 보내졌다던 그녀가 어떻게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게 됐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달이 두어 번 바뀔 때쯤 해서야 그녀는 웃음을 다시 찾고 시장골목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장골목의 청소부였다. 종이쪽지 하나라도 뜨이면 냉큼 집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시키는 일도 곧잘 하였다. 고추가게에서 꼭지 따기라든가 마늘가게에서 껍질 까기라든가,
혹은 지저분한 상가 앞을 말끔히 청소해 주기도 했다. 사람들이 "어이구 착하기도 하지" 하면
돌아다보고는 씩 웃었다. 그런 그녀도 여자였다.
예쁜 옷 입은 여자들만 보면 다가가 만져보고 쓰다듬고 하여 질색을 하게 하였다.
그녀는 어떤 것에도 구애돼지 않았고 거리낌도 없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세상의
너울을 벗어버리고 몸도 마음도 자유롭게 하였을까...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지만 가끔은 그녀가 부럽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눈앞에 주어진 일만 관심을 가지면서 고통 덜 느끼고 살고 있으니 갈등 또한 조금이겠구나...
그런 그녀가 어느 날부턴가 통 보이지를 않았다. 그녀의 오빠가 찾아와 어느 먼 시골병원에
격리입원을 시켜버렸다는 말이 돌았다. 그 후로 다시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가 없이 되었다.
그녀의 영혼이 지금은 어느 틀 속에 갇혀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걱정도 되었다.
삶의 벽에 부딪혀 힘들어질 때, 나를 속박하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질 때
나는 가끔 그녀를 떠올린다. 가질 것이 적으면 살아갈 삶의 무게 또한 가볍지 않을까
싶어질 때 그럴 때...지금 같을 때...그녀의 그 가벼움이 생각난다.
처음부터 많이 갖지 않아서 자유로운 그녀의 영혼이 어디에서든 평화롭기를 바라면서...
'§ 강미의 문학서재 § > ◎ 에세이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Jazz 에세이 (15) Jazz 거장들의 만남에서 다시 듣는 재즈 (2008. 2월호 연재) (0) | 2012.07.24 |
---|---|
[감자이야기 1.] 주말농장 감자밭에서 (0) | 2012.07.23 |
산다는 것과 사유하는 것 사이에서... (퇴원 후 2012. 5. 5.) (0) | 2012.05.05 |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요양을 앞두고...2012. 4. 5.) (0) | 2012.04.05 |
낯설어진 고향이 그리운 이유 / 강미 (0) | 2012.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