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등의 조화
+논술을 위한 辨
자유와 평등의 대립은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만큼 입시 논술을 앞 둔 수험생들도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만한 친숙한 주제다. 이 주제에 대하여 대부분은 자유와 평등의 대립이 경제적 영역에서 첨예하게 나타남을 지적하고, 그를 해소하는 유일한 방안으로 자유권의 평등을 제시하게 된다. 이는 자유와 평등의 관계에서 자유에 우선성을 부여하는 자유주의적인 사고를 대변한다.
논술고사에서는 이 주제의 논지를 자유주의의 틀 내에서 양자의 대립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통하여 관점을 비교하고, 자유주의의 틀 밖에서 양자를 조화하는 방안을 제시할 것을 기대한다. 따라서 논술이 성공적이기 위하여는 자유의 개념과 평등 개념의 대립 양상에 대한 정확한 파악, 저자의 논지에 대한 적절한 비판, 그 비판을 넘어서는 창의적인 개선책의 제시, 제시된 개선책의 장점에 대한 성공적인 논증이 요청된다.
자유와 평등의 권리에 대한 요구가 경제적 영역에까지 확대됨으로써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상호 대립적인 것이 되었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바로 자유권의 평등이며 이것은 법 앞의 평등과 권리의 평등이라는 두 가지 원리에 기초한다. ‘기본권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후자는 전자보다 더욱 적극적인 평등성을 함의한다.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두 축인 자유와 평등, 이 두 가치는 근대적 개념이다. 근대 이전의 자유는 제한적인 특정계급의 전유물이었고 평등 또한 계급의 위압 아래 짓눌려 있었다. 근대 자유주의의 확산은 그에 대한 대응적 가치로 평등을 산출했고,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간의 갈등에서 드러나듯 이 두 가치의 대립은 정치와 경제를 막론한다. 생활 전반에 드러나는 이러한 자유와 평등의 함수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시대별로 보여지는 정의관에 대한 이해가 성행되어야 할 것이다.
고대와 중세는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우리는 그러한 계급의식의 단면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관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정의는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 선언적 구호는 ‘각자의 몫’에 대한 내용적 접근의 다변성으로 말미암아 합의가 불가능하다. 주인이 생각하는 각자의 몫과 노예가 생각하는 각자의 몫은 다를 것이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관은 필연적으로 강자의 정의화 될 수밖에 없고 이는 자유의 편중과 불평등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강자의 논리에 지배되어 계급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것이 고대와 중세에 있어 자유와 평등의 개념을 사상시킨 요인이다.
근대에 들어 부르주아들의 활동으로 자유의 개념이 확산되면서 이는 빈부격차를 초래하고 노동자 계급은 평등의 가치를 역설한다. 여기서부터 자유와 평등의 상호 대립이 출발한다. 과거와 단절된 현재를 추구하는 근대성은 과거 정의관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정의관을 모색했다. 중세의 정의에 대한 내용적 차원의 접근으로는 합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로버트 노직'은 절차적 형식적 정의의 확립을 역설한다. 그는 경쟁의 과정이 정의롭다면 결과도 정의롭다고 주장한다. ‘법 앞의 평등’이 보장된다면 그 결과 또한 정의로운 것이며 따라서 모두가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것은 굉장히 제한적 의미에서의 자유와 평등의 조화다.
개념으로 정의하면, 최소 수혜자의 이익을 늘이지 않는 한 평등한 분배를 하라는 것이 '존 롤즈'의 정의론이다. 그런 점에서 평등주의다. 이에 비해 철저한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정의론을 전개한 이가 '로버트 노직'이다.
다음과 같은 예를 상정해 보자. 헤비급 복서와 라이트급 복서가 대결한다고 치자. 상식적 차원에서 이 시합의 결과는 헤비급 복서의 승리라는 것은 따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 경우, 노직은 심판의 판정이 공정했다면 이 시합의 결과는 정의로운 것이며 패자도 합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패자가 이 시합의 결과에 대해 깨끗이 승복할 수 있을까? 이것은 과연 합의할 수밖에 없는 완전무결한 정의의 실현일까? 그 대답은 ‘아니오’가 될 것이다.
'로버트 노직'은 중요한 것을 간과했다. 공정한 경쟁조건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순수한 형식적, 절차적 정의의 보장은 허구라는 점이다. 이러한 노직의 논리는 근대 자유주의자들의 생각과 상통한다. 그들 역시 시장에서의 경쟁의 원칙만 지켜진다면 그것은 정의로운 것이며 합의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는 극히 제한적인 의미의 평등의 보장밖에 찾아보기 힘들다.
바로 이러한 이론적 결함을 지적하고 그것을 보완한 것이 '존 롤즈'의 정의관이다. 그 역시 형식적, 절차적 정의, 즉, 합의될 수 있는 정의관의 확립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형식적, 절차적 정의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공평한 경쟁조건을 확보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주장한다. 즉, 라이트급 복서가 헤비급 복서와 맞붙어도 승리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보장되도록 제도적, 정책적인 지원과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제도적 보완은 다름 아닌 ‘최소 수혜자에 대한 최대 혜택의 원칙’으로 구현된다. 이러한 '존 롤즈'의 생각은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종전보다 적극적인 차원의 자유와 평등의 조화가 실현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러한 롤즈의 생각은 현대의 복지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나는 이러한 롤즈의 생각이 ‘법 앞의 평등’, 더 나아가 ‘권리의 평등’ 개념을 넘어서는 실질적 정의의 개념을 실현한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평등의 함수관계에서 자유라는 독립변수에 대한 종속 변수로 취급되던 과거의 평등에 대한 인식에 대해, 롤즈는 평등에게 걸맞는 당당한 독립변수로서의 위상을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롤즈의 생각이 사회주의적인 평등개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권의 평등이라는 개념에 있어 권리적, 조건적 평등성에 대한 보장을 극대화한 것이다. 그의 생각도 충분히 적극적이지만 이보다 더 적극적인 자유와 평등의 조화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론이 보완되기 위해서 ‘최대수혜자에 대한 최소혜택의 원칙’이라는 항목이 추가될 필요가 있다. 집중된 자유의 비대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최대수혜자에 대해 얼마간의 자유를 강제적으로 제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는 현대사회에 있어 누진세, 간접세 등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극심한 소득격차와 불평등성이 상존한다. 여전히 자유와 평등의 관계에 있어 자유의 보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방증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자유와 평등이 등가의 개념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측면 뿐 아니라 정치, 사회 전반에서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해야 할 사회의 모습은 ‘만인이 만인의 경험을 공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사회다. 최소 수혜자도 개인적 노력 여하에 따라라 얼마든지 최대수혜자가 될 수 있는 사회 의미한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부의 세습, 교육격차 등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많다. 이는 이제껏 말해온 자유와 평등의 등가관계를 위한 제도적 보완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의 모습은 모두가 동일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 사회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그 동안의 숱한 방법적 성토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상존하는 현대사회의 자유추구의 비대성을 단기간에 해소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이 완벽한 형평을 이루는 사회에 대한 조망은 현대 우리사회의 말단적 이기성에 대한 재고를 가능케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새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가치는 자유와 평등의 등가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논술의 주제로서 논지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자유의 개념과 평등의 개념에 대한 정의를 토대로 양자의 갈등이 일어나는 양상을 좀 더 상세히 기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롤즈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자신의 새로운 주장을 제시하는 과정이 논술문 작성에서는 필요하다. 롤스와 비교하면 위에서 제시한 '최대수혜자에 대한 최소혜택의 원칙' 은 '집중된 자유의 비대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최대수혜자에 대해 얼마간의 자유를 강제적으로 제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라고 주장한 것처럼 자유에 대한 강제적 제한이라는 것이 상당히 극단적인 주장처럼 보일 수 있으므로 그를 옹호하기 위한 논거가 역시 드러나야 한다.
또한 사회에서 생길 수 있는 집중된 자유의 비대화에 대해 집중된 자유의 비대화란 무엇을 의미하여, 그 사례는 무엇이고, 그것이 왜 부당한가? 정의로운 사회의 모델로 모든 사람이 최대수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를 제시하는데, 롤즈의 사회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한가? 이런 사회에 도달하기 위하여 '최대수혜자에 대한 최소혜택의 원칙'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를 논술문 작성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논술을 위한 팁
글쓰기에서 자신의 창의적인 입장을 제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수험생은 이 주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무엇인지 분명해야 하며, 그 입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수사 이상이 필요하다. 우리가 논리 논술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유와 평등, 논술의 영원한 고전이 된 주제이자 현재 우리들 삶을 결정짓는 민주적 가치로서 고민해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 좋은 논술을 위해 고민하지 말고, 자신의 논리적 근거로 고민한 논술을 위해 노력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강의를 마친다.
(참고 자료)
'노직의 소유권리론에 대하여' / 구영모(美 캘리포니아 대학교 철학과 ) '공정으로서의 정의' / 존 롤스(황경식 외, 서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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