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의 문학서재 §/◎ 에세이 서재

(안양신문 9월 3주 만필) 가을 길목에서 느낀 短想 / 강미

변산바람꽃 2009. 10. 7. 02:54

 

가을 길목에서 느낀 短想

 

                                                                                                         강 미



  요즈음은 새로운 바람 냄새에 창 밖 세상이 더 그리운 나날이다. 가을빛이 만들어 낸 새로운 산빛을 보고 싶고 까치들의 경쾌한 노랫소리도 듣고 싶어 시리도록 눈부신 햇살에 빨려 유일한 쉼터인 약수터가 있는 자유공원 뒷산으로 향했다. 한 낮이라 낮 잠 자는 시간일까. 산비탈을 끼고 가파른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도 기대하던 까치 노랫소리는 들리지 않고 언덕배기에 앉은 허름한 집 쪽에서 개 짖는 소리만 아우성이다. 산이 울릴 듯 이방인을 경계하는 개 짖는 소리에 멈칫 겁이 나면서도 기분은 참 좋았다. 탁 트인 산야, 발걸음 소리를 줄여가며 내려가니 맑은 물이 조용히 흐르는 작은 골짝이 있었다. 뜻 밖에 만나 더 반가운 골짝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한 낮 햇살이 목욕하는 은빛 물속은 실핏줄까지 선명했다. 들여다볼수록 눈이 부신 골짝 물에 반쯤 잠긴 돌을 딛고 쪼그리고 앉았다. 먼지를 턴 손을 살며시 담가본다. 온기가 느껴지는 물속은 참 시원했다. 이름 모를 작은 나비들의 나풀거림을 의식하면서도 담근 손을 빼지 못하고 한 참을 살피며 기다려도 오질 않는다. 착각이었을까. 물 위를 걷는 물거미라도 보고 싶었는데 좀 아쉬웠다. 창 밖 세상의 미세한 흔적까지 소홀히 대해지지 않는 족쇄의 삶은 매사 그리움의 빛이라 궁핍한 일상에는 몇 시간만의 사색이라도 새로운 활력소다.

 

  실팍한 고추 포기를 안고 선 지지대에는 고추잠자리가 장악하고 있는 가을 한 낮, 앙증한 고추잠자리는 햇살이 뜨거운 듯 미동도 없다. 낮은 마음으로 살지는 고추가 가을볕에 뜸 들이는 넓은 고추밭을 끼고 조금 돌아가니 파 밭 고랑에서 연로하신 할머님이 수북한 대파를 다듬고 계셨다. 할머님 머리 빛깔 같은 파뿌리가 뭉뚝 잘려나간 굵은 대파 줄기는 우윳빛으로 먹음직스러웠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파가 어쩌면 이렇게 굵어요? 참 잘 키우셨어요. 이렇게 실팍하게 키우시기에 힘 많이 드셨지요?” 피식 웃으시며 “오늘 공일이라 손자 녀석이 차를 가져와서 보내려고...” 하시는 작은 체격의 할머님, 핏줄이 두드러진 손등에 세월의 테가 바위 꽃처럼 짙은 할머님, 처음 뵙는데도 이웃 같이 따뜻하게 대해 주시는 할머님, 무릎 가운데 얼굴을 묻고 앉은 모습이 너무도 나약해 보여 참 안쓰러웠다. 저 어르신께서도 젊으셨을 때는 초봄 죽순 돋아나듯 힘찬 패기였으련만, 늦가을 된서리 맞은 오이넝쿨 같은 모습에 세월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할머니에게서는 고단함보다는 평생 담아왔을 희망이 보여 졌던 것은 나만의 느낌이었는지...

 

  할머니를 뒤로 하고 산자락을 내려왔다. 한 낮의 짧은 여유라도 가질 수 있었음에 산을 올라갈 때 마음과 내려오면서 담은 마음이 달랐다. 매일 매일이 수업에 쫒기면서 새벽으로 가는 시간에 귀가하는 일상이 반복되면서 집은 삶을 나누는 공간이 아니라 하숙집이 된 지 이미 오래였는데...가을로 성큼 들어 선 바람이 넉넉해져 있어서일까...집으로 들어서는 골목길이 보이는데 예전처럼 갑갑하지 않다. 꽃과 나무, 시, 할머니, 햇살들...살아가면서 평생 두 눈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오늘 아침 짧은 산책에서 만났던 빛나는 풍경을 볼 수 있는 날은 얼마나 남았을까. 내일은 안경을 더 깨끗이 닦아 끼고 나서리라. 새로운 아침을 맞는 자의 자격이 오늘을 충실히 사는 것이라면 내게 주어진 이 하루를 어제 보다 더 알뜰하게 쓰리라. 그리하여 내일 아침에는 나도 하나의 풍경으로 서서 누군가를 기다려 보리라. 희망을 갖고 맞은 아침은 황금을 몰고 온다지 않은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