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azz 에세이 (9) Jazz, 책으로 만날 수 있다. 2회 / 재즈, 뮤지션들의 역사이다.
이제 제법 선선해졌습니다. 비가 개이고 나니 계절의 빛이 더 뚜렷해지는 것 같네요. 사실 이번 에세이를 다시 올리면서 망설였답니다.
명색이 재즈카페이면서도 최소한 음악을 공유하는 카페라면서 정작은 재즈를 듣거나 관심을 갖고 찾으시는 회원님들이 몇 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자괴감이 들었다랄까요...
나름대로 흐름을 유지하며 재즈와 관련된 글을 정리하여 올리는데 아마도 조회수가 별로 없고 대부분 그냥 지나친다는 것 때문이었으니 제게도 남에게 드러나고 싶은 속물 근성이 있지 싶습니다.
그러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재즈를 무작정 좋아해서 듣기 시작한지 25년 가까이 되었는데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남을 위해서 재즈를 소개해 본다거나 좋은 곡을 같이 듣기 위해 곡을 정리해본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제 만족이 우선이었다는 것을 알았지요...
음악이라는 특성이 원래 자신의 감성에 우선 닿아야 누군가와도 공유할 수 있지만 그 누군가와 공유하기 위한 비중이 얼마이냐는 것이겠지요...
다시 재즈에 대한 글을 연재할 생각으로 마음을 돌리면서 누군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딘가에서 찾아 온 누군가 한 명, 혹은 카페 재즈 메뉴를 통해 무심코 재즈를 들었을 누군가 그 단 한 명이라도 제가 올린 글과 재즈에 공감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족하지 않은가 하구요...
그 누군가 단 한 명을 위해 연재를 계속하겠습니다. 당신이십니까...^^변산바람꽃.
이번 연재의 주요 텍스트인 "ALL MUSIC GUIDE TO JAZZ" 라는 책의 에세이 부분을 여전히 참고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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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뉴올리언즈에서는 브라스 밴드가 많았다고 한다. 그게 뭐 직업적인 경우도 있었지만 가장 흔한 경우는 마을에서 누가 죽었을 때라고 한다. 장례식이라는 것은 원래 슬픈 것이어서 마을에서 관을 따라 사람들이 묘지로 향하게 된다. 이 때 제일 앞에는 마을에서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이 몰려나와 다들 슬픈 음악을 연주하며 묘지로 향했을 것이다. 기나긴 행렬이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유족들은 슬피 울고 마을 사람들도 슬픈 표정이었을 것이고...
내내 흥겨운 음악이 울려퍼지고... 당연할 것이다. 죽은 자는 떠났지만 살아남은 자는 그 슬픔에 압도되지 말고 삶의 희망과 기쁨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니까. 장례는 이별이라는 슬픈 공간이 되지만 또한 산자들이 삶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니다.
임권택의 '축제'라는 영화를 보자.이 때 그러니까 장례에서 돌아올 때 재즈의 원초적 형태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연주를 흥겹게 연주하다보면 그 멜로디에 곧 식상해질 것이고 그래서 변주들이 들어가는 되었을 것이다. 실력있는 연주자들은 그 변주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대중들에게 드러내 보일수도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고 그냥 귀로 들어서 익힌 음악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정확히 악보를 준수하며 연주한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이후의 전문적인 재즈연주자들 중에도 악보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음악의 속성, 코드진해의 규칙들을 몸으로 채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로부터 즉흥연주를 위주로 하는 재즈가 발생했다. 그 독특한 엇박자, 싱코페이션은 물론 아프리카로부터 내려온 음악적 바탕이 있었다. 연주되는 싸구려 음악이냐는 여전히 논쟁거리이다. 물론 감상용 음악으로 훌륭한 것이라는 뉴올리안즈에서 발생했다는 것이 정설이다)에서 행해지던 재즈의 원형은 기본적으로 싸구려 홍등가에서 행해지던 것이었다. 바로 스토리빌(이 지명을 기억해두자. 재즈가 시작된 곳이라는 의미도 있다. 뉴올리언즈의 유흥가, 홍등가이다)이라는 곳에서 행해졌다.
그리고 3,4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미국 영화를 보면 언제나 자욱한 담배연기가 가득하고 버릇없는 반사회적인 갱들이 설쳐대는 클럽에서 재즈는 울려퍼졌었다. 그것도 금주법 시대에 불법으로 행해지는 클럽에서. 그러니 재즈는 정말 싸구려 음악이라는 말도 아예 그른 것은 아니다.
그렇게 재즈는 예술이라는 영역으로 조금씩 들어왔다.
재즈에 있어서 영원히 해답을 내릴 수 없는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는 '재즈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이다. 최초의 재즈 레코딩은 1920년에 이루어졌지만, 그 전 20년 동안에도 재즈는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클래식, 행진곡, 흑인영가 노동요, 래그타임, 블루스, 그리고 당시의 대중음악 (the popular music ofthe period)에 영향받았지만, 재즈는 최초로 녹음될 당시에 이미 재즈만의 음악적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음악가들(unscooled musicions)에 의해 연주되었을 것이다. 최소한 1890년대에는 음악이 이미 뉴올리언즈에서는 삶의 일부분이었는데, 브라스 밴드는 퍼레이드, 장례식, 파티, 그리고 무도회 등에 고용되어 연주를 하곤 했다.
악보를 읽지 못하는 연주자들이 단순히 멜로디을 지속적으로 연주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연을 흥미롭게 이끌기 위해 변주를 행하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타당하다. 밴드를 결성했으므로, 우리는 그 해를 재즈의 상징적인 탄생일로 볼 수도 있다.
그 후 20년간, 녹음으로 기록되지 못한 재즈는 계속 진보했지만 트림없이 속도는 매우 느렸을 것이다. 악화되는 정신병으로 1906년 정신병원에 수용된 버디 볼든은 뉴올리언즈 최고의 코넷연주자라는 명성을 프레디 케파드에게 물려주었고, 다시 케파드는 킹 올리버에게 그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몇몇 뉴올리언즈 음악가들이 북상하기는 했지만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 재즈는 엄연히 지역적 음악으로 남아있었다. 남부를 일컫는 속칭이다. 또한 남북 전쟁 때 남부를 찬양한 노래를 일컫기도 볼 수 있다. 혹은 뉴올리언즈에서 행해지는 음악 즉 재즈의 형태를 지칭하기도 했다 ) 불린 백인그룹이 "Darktown Strutters' Ball"과 "Indiana"라는 곡을 콜롬비아 레코드 사에서 녹음했다.
그 시끄럽고 분방한 음악은, 당시에는 그대로 발매되기에는 너무 과격했기 때문에 2월 26일 ODJB는 Victor레코드로 옮겨 "Livery Stable Blues"와 "Original Dixieland Jazz Band One Step"을 녹음했다. 이 연주는 즉시 발매되었는데 (혼 악기로 동물 울음을 흉내낸) "Livery Stable Blues"는 큰 인기를 끌어서 재즈는 다소나마 새로이 발견되기에 이른다. 이 연주의 인기로 단기간에 걸쳐 다른 그룹들도 이와 유사한 합주 스타일(실재로 ODJB는 솔로 연주가 없었다)의 음악을 녹음했다.
재즈는 몇년간 큰 인기를 끌며 유행했고 (프로모터들은 이 새로운 음악으로 돈을 벌기 위해 몰려들었다) ODJB는 1919년 런던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그러나 흑인 뮤지션들이 녹음을 시작한 것은 몇년이 더 지나야 했는데(인종차별적인 이유에서), 그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은 재즈를 백인들이 만들어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 후의 그에 대한 반발로 흑인들만이 재즈를 연주할 수 있고 백인연주자들은 그저 형편없는 모방을 할 뿐이라는 편견이 생기기도 한다(예를 들어 백인은 죽었다 깨어도 스윙감을 가질수 없다는 편견). 그러나 분명히 이 두개의 믿음은 그 후 여러번에 걸쳐 잘못되었음이 증명되었다.
1920년 마미 스미스가 최초로 "Crazy Blues"라는 블루스 곡을 녹음하였고, 재즈 열풍은 곧 블루스 열풍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재즈는 계속 진보했고(짧은 솔로를 허용한 최초의 밴드들 중 하나인) The New Orleans Rythm Kings 는 1900년에 ODJB보다 10년이나 앞선 소리를 내고 있었다.
1923년은 재즈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해인데, 이 해에 King Olver's Creol Jazz Band (사이드 맨에 루이 암스트롱과 클라리넷 연주자 쟈니 도스가 포한된)와 블루스 가수 베시 스미스 그리고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Jelly Roll Morten이 모두 레코딩 데뷰를 한 해이기 때문이다. 킹 올리버 밴드는 명확한 합주 지향의 뉴올리언즈 그룹으로 인식되곤 하지만 곧 루이 암스트롱에 의해 재즈는 영원히 바뀌게 된다. 플레쳐 핸더슨의 빅밴드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 그는 악단의 연주자들이 기술적으로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블루스 필링이 없이 스타카토 필링을 가지고 연주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각 악절을 연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데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결국은 일어날 일이었지만 재즈의 강조점을 집단적 즉흥연주에서 개인의 솔로연주로 이동시킴으로써, 스윙시대의 전초를 마련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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