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쓴 글 2.]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다시 라인홀드 니부어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떠올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날부터 사흘 동안 난 사실 공항상태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어제 봉하 마을을 다녀올 때쯤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아침 10시부터 수업이기에 잠을 자서는 안 될 것 같았지만 온 몸이 마치 무언가 보이지 않는 기운에 이끌린 것처럼 바닥으로 주저앉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잠깐 누었던 것이 잠이 들었을까요...퍼뜩 잠이 깬 것은 맹꽁이 소리와 개구리가 우는 소리에 놀라서였습니다. 그러나 방 안 어디에도 맹꽁이도 개구리도 없었습니다.
어제 아..이제는 그저께나 되겠네요...딸내미 손을 잡고 마을 어귀에서부터 빈소가 있는 마을회관까지 걸어가는 길 양 쪽 시냇물과 물 고인 논두렁에서 어둠을 깨우려는 듯 한없이 울던 그 맹꽁이와 개구리 울음소리...아무래도 오랫동안 그 울음소리가 내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싶습니다.
노무현...내가 다 이해 못하고 내가 다 기다리지 못하고 내가 그리 외롭게 홀로
죽음을 선택하게 했던 우리의 전 대통령의 소리 없이 흘렸을 눈물이 내 가슴에도
흐르는 동안에는...
그리고 오늘 하루 종일 수업 중에 짬이 나면 계속 올라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된 글들을 지치지 않고 읽고 있었습니다. 다른 무엇도 읽을 수 없을 만큼 난 마치 사명처럼 그렇게 우리가... 내가 홀로 죽음의 길로 보내버린 전직 대통령의 죽음 뒤에 난무하는 이야기들을 주어 담았습니다.
내가 앞서 올린 글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를 다녀와서... ’ 에 대한 네티즌들의 댓글을 통해 우리 사회의 엄연히 존재하는 이분법적인 적대감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가를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사이에 이러한 나와 다르다는 것에서 오는 적대감은 누구로부터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를 고민하며, 또 다른 절망감으로 가슴으로 차오르는 분노를 느껴야 했습니다.
난 논술을 가르칩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주로 대상이고 당연히 그들에게
입시에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 책을 읽고 토론을 하거나 논술문을 가르치고
분석해주고 첨삭을 하면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 때론 사회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품고 대학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그들과 꿈과 이상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간혹 내 세대가 해결하지 못한 80년대의 그 길고 암울했던 시대를 꺼내서 젊은 그들에게 들려줍니다.
꼭 대학입시에 필요해서라기보다 우리 현대사의 가장 수치스럽고 고단하며 절망적이었던 순간에 어떻게 희망바라보기를 하며 그 긴 숨막히는 반민주적 터널을 지나왔는가를 들려줍니다. 그러노라면 어쩔 수 없이 독재적 권력을 이야기하게 되고 그 단단한 독재의 기운에 기생하여 자본을 축적하고 힘을 쌓아온 자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여전히 기득권층을 형성하며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지 말해 줍니다.
그리고 언론이 그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그 보호 덕분에 성장해 왔는지 말해 줍니다. 왜 언론이 청산되어야 할 과거사에 모두 해당되어있는 지를 전해 주고자 합니다. 대학 입시에서 필수적으로 다루는 문제인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그 시대를 통과해 온 개인으로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자로서 가능하면 감정적인 분석이 되지 않도록 균형 있는 감각을 유지하며 전하려고 노력하면서... 단어를 고르며 그렇게 학생들에게 내 세대가 겪은 아픔을 전해보려고 했습니다.
다시는 꿈이 빼앗기거나 다시는 희망을 암울하게 기다려야 하는 아픔이 내 학생들
세대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면 해서입니다. 다시는 푸르러야 할 청년시절이 ‘나’라는 개인적인 존재와 국가로서 사회와 충돌했을 때 그 관계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개인의 한계를 내 학생들은 겪지 않았으면 해서입니다.
나는 절망보다 희망을 먼저 꿈꾸는 학생들이 이 세상을 보다 가치 있게 받아들일
것이리라 믿기에 암울했던 반민주적 현대사를 관통하고 살아 온 내 세대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전해 주려고 해왔습니다. 그럴 때면 마지막으로 언급하는 책이 미국의 신학적 사회주의를 꿈꾸었던 라인홀드 니부어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입니다. 환경에서 만들어졌거나 교육에 의해 키워졌을 혹은 인식적인 자각에 의해 깨달았을 개인의 도덕성은 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를 도덕적 인간이라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분명 이러한 도덕적 양심대로 살아내려는 인간이 존재합니다. 날마다 배달되는 일간지의 한 귀퉁이에서 사회 미담으로 소개되는 선행과 그 선행의 결과가 이웃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를 발견합니다. 또는 연말연시나 불의적인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한 개인의 선행이 미치는 또 다른 선행으로의 이행이 얼마나 우리를 흐뭇하게 하는 지는 가끔 발견하게 됩니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독재정권에 의해 무자비하게 개인의 행동이 감시되고 통제되던 시절에 우리는 수없이 많은 민주열사들의 희생과 죽음을 지켜보아 왔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죽음은 권력에 복종하면 피할 수 있는 것이었음에도 저항하며 숨을 죽이지 않고 맞서왔던 용기로 인해 그들이 우리의 비겁함을 대신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개인의 용기가 그의 도덕적 양심에 의한 선택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토록 억압된 사회에서 어디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싶을 만큼 우리는 수없이 많은 민주적 인재들의 희생 덕분에 오늘날의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의 일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386세대들입니다. 최소한 그 시대 그 때, 그들은 사회적으로 안전한 일상보다는 자신의 도덕적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선택을 통해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그 반대편에 있는 이들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선택은 긴 독재의 터널을 벗어나는 하나의 물꼬가 되어주었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 변화의 중심에는 열악한 노동환경이나 생활환경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을 때 스스로 올바른 국가를 지향하며 산화한 노동자들도 있습니다. 그들 역시 힘에 기대어 살 수 있었을 것임에도 살 권리를 스스로 찾아 저항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바로 그들의 희생 위에 건설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도덕적인 개인의 선택은 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고 근거가 된다는 것을 경험해 온 국민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비도덕적인 거대 권력이 개인의 삶의 질을 어떻게 바꾸어 놓고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도 역시 경험해 왔습니다. 두 세대를 거치면서 공고하게 뿌리내려온 힘의 논리에 의해 우리 사회는 힘이 있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인식에 지배되고 있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인식은 자본을 무한소유의 동기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들은 권력에 기생하거나 그 권력의 중심에 들어가게 되면 가능하다는
것에서 누구나 힘이 있는 자가 되려고 타인의 소유를 빼앗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납니다. 비단 정치와 경제에서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공간에서도 이런 힘의
논리를 사용하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철새정치인들이 그들이고 뉴 라이트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극우적인 지식인들이 그들이며 우리나라 보수 계층을 극단적으로 대변하는 법조계에서 그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비도덕적인 조직...사회가 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근거가 되어서 종내는 도덕이 힘의 논리에 이용되는 상황을 초래합니다. 이 경우는 사회의 비도덕성이 개인의 비도덕성을 나타나게 한다는 측면에서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도덕적 양심은 비도덕적 사회 상황에 의해 실종되고 보편적인 가치보다는 힘의 논리에 의해 결정된 가치가 사회를 지배하게 되고 개인은 그 사회의 종속적 존재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제 그와 다른 이면에서 비도덕적인 사회가 개인을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인식을 자각시키고 잠재된 도덕적 양심을 찾게 되는 경우를 찾아보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이야기를 돌려 보겠습니다.
노무현...‘개천에서 용난다’는 우리 식의 속담에 가장 부합하는 인재였음은 분명할 것입니다.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순전히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변호사로서 나름 성공할 듯 보였던 그...변호사 노무현은 그렇게 성공적인 신분상승을 통해 우리 사회 기득권층에 편입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현실적인 상황을 떠나 그가 선택한 것은 인권변호사로서의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한 개인이 변화되는 것에는 계기가 있기 마련이고 변호사 노무현에게도 그런 계기가 있었습니다. ‘부림사태’였습니다. 아마도 변호사 노무현으로 다시 살아서 돌아가신다면 나는 분명하게 확신합니다. 노무현...우리의 전 대통령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가장 사회가 비도덕적인 순간에 한 개인 안에 잠재된 양심은 그 부조리를 깨치고
변화되는 선택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태생과 그
이후의 삶에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희망바라보기를 그만 두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나도 내가 살던 환경으로 보면 분명 개천에서 용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삶이 열악했지만 꿈을 키우고 이루려는 고단한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그 사회를 변화시키고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완전하지 않은 인간 노무현...그러나 분명 더 가지려고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나누려고 했던 이상적 현실주의자 노무현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때론 사회의 비도덕적 상황을 개인들의 희망 키우기가 멈춰지지 않는다면 변화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은 완전하게 자신의 소신을 성공적으로 이루지는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가 변화시키고자 했던 것에 위기를 느낀 기득권층이 정치적 자산이 그 자신 스스로인 대통령 노무현을 흔들어 대고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 즉 자신들에게 화살이 날아오기 전에 감히 오랜 세월 쌓아 온 그들의 둥지를 위협할 존재인 국가 최고통수권자에 대한 증오를 쏟아 부었습니다. 그것이 탄핵이었고, 그것이 끊임없는 흠집내기였으며, 그것이 온 가족과 측근까지 싹쓸이 잡아들여서 가장 도덕적인 인간이었던 전 대통령을 벼랑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자신 스스로에게 조차 투명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이 시대가 마지막 남겨둔 양심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언론, 정치, 경제, 법까지 똘똘뭉쳐 벼랑으로 밀어 넣은 것입니다.
가장 도덕적인 인간으로 인해 그들이 견고하게 쌓아놓은 벽이 허물어질까 두려웠던 것일까요...
우리 사회의 현실은 분명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벽은 절대로 허물어질 수 없다는 것을 빨리 받아들이는 자는 살아남고 통합이라는 꿈을 꾸는 자는 죽는 다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내 학생들에게 더 이상 꿈을 꾸라고 말 할 수 없을 것 같기에 두렵습니다. 이제 노력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을지 모른다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태양이 당연하게 있듯이 희망이 당연하게 키워져야 한다는 것을 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난 사흘 동안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었다.’는 우리의 전 대통령 노무현의 고통처럼 잠을 잘 수도 배가 고프지도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다만...글을 통해서라도 우리 사회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되새겨 보자. 최소한의 기록으로 남겨보자 싶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글을 씁니다. 이제 이렇게 쓴 글들을 내 학생들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말로는 차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변화를 철저히 거부하고 나와 다른 가치를 지닌 양심적인 개인을 소외시키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글 조차 쓸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런 현실의 벽을 대신 뛰어넘고자, 자신을 벼랑으로 밀어내는 세력들에게 스스로를 훌쩍 제물로 내어 주고 우리를 깨운 전 대통령 노무현...
그 님의 마지막 모습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최소한의 양심들이 아직 이 사회에 어디 구석에 있다면 그들이 깨어나길 기대하는 희망을 놓지 않기 위해서... 다시는 우리 사회에 최소한의 양심들이 실종되고 벼랑으로 밀리는 일이 없도록 우리가 계속 이 이야기를 전해야 합니다.
노무현...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이 선택한 최후의 모습에 대해서...
(변산바람꽃/강미)
'§ 강미의 문학서재 § > ◎ 칼럼 & 논술문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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