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의 문학서재 §/◎ 詩 서재

구럼비 너럭바위에 눕다./ 강미

변산바람꽃 2012. 3. 26. 03:17

 

 

 

 

 

 구럼비 너럭바위에 눕다.

 

                            - 강 미 -

 

 

 

이 세상의 중간지대 어디쯤

말하자면 돌이었다가 물이었다가

달이 만들어 놓은 밀물과 썰물로

바다였다가 육지였다가

수시로 바뀐 얼굴 보여주었다가

늘 마음속까지 축축하게 젖어있어

생명이었다가 주검이었다가

햇빛과 그늘의 경계선에서

마르지 않는 바닷물을 머금은 몸이다.

 

몸 속 가득했던 물이 빠져나가면

오랜 항해에 지친 목숨줄 놓아버리고

편마암 같이 검게 드러누운 낡은 배처럼

생을 다한 물고기가

가시 같은 뼈를 보여주며

새들에게 적선하는 곳

삶과 죽음의 한 가운데 그 어디쯤

나를 닮은 물길이 있어서

내 안에 상처를 내고

진주 보석 품은 조개도 감추고

게의 은신처도 되어주면서

소금기에 푹 절어서 살아간다.

 

간혹 맨발로 미끌어져 들어오는 것들

허리까지 잡아채서

검은 화산재의 흔적 같은 문신을 새기고

바람처럼 벗어나지 못하게

발에 족쇄를 채우고

사랑했다가 미워했다가

죽였다가 살렸다가

억겁의 바닷물이 토해낸 생명같은

구럼비 너럭바위에 눕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