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의 문학서재 §/◎ 강미의 斷想

[페북 단상]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서 있다.

변산바람꽃 2015. 1. 28. 16:25
[ 하이쿠詩, 일본 無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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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나비는 허물을 벗고, 
나무는 새잎을 입고
화사한 봄맞이를 할 텐데
나는 무엇을 벗고, 
무엇을 입어야 하나?
지워지지 않는 때로 찌든 내 몸뚱이에.

(둘)
형체도 없이 
사계절을 안고 불어대는 바람
그 실체를 찾아 떠나고 싶지만
아직 내 발이 이 별에 빠져 있네.

(셋)
솔잎만 먹다 죽은 송충이처럼
나도 먼 여행 떠나는 날
내 몸과 영혼에서도
푸른 향이 나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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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쿠시란, 일본에서 파생된 5.7.5조의 짧은 시의 장르 중 하나이다. 그러나 한 줄 시로도 변형되어 쓰여지기도 하며, 하이쿠의 기본음률인 5.7.5조의 음률을 무시하기도 한다. 그동안 청소년들과 주부들에게 시창작 수업을 진행할 때 시어를 연상해사 찾아내는 경험을 하도록 이끌기 위해서 하이쿠 창작을 활용해 왔다. 그러면서 나도 가끔은, 너무 할 말이 많은데 토해내기도 버거워서 정신도 지친 날에는 이렇게 한 줄로 된 시를 쓰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저장한 분량도 족히 시집 두어권 분량은 될 듯...

류시화 시인의 하이쿠 관련 시집인 <한 줄도 너무 길다.>에서 감성적 도전도 받았었는데, 조금전 딸내미를 데리러 강남 보컬학원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류시화 시인의 하이쿠 계관집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 시를 읽다.>를 목적지에 도착 전에 다 읽었다. 

백만 광년의 고독...평촌에서 강남까지 전철 안에서 오는 시간 50여분...나는 백만 광년이라는 실감되지 않는 어디 깊은 몰입 속에서 호흡도 멈춘듯 내 자신의 실체감도 잊은 듯이 지나왔을까...바람 찬 강남거리로 나와서야 비로소 겨울이라는 우주 어느 한 별에 도착한 것처럼 생경스럽게 길에 서있었다. 어딘가..여기가...겨울 오후 침울한 햇살의 여운 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거리. 스쳐지나는 이들도 낯설고 희미한 비존재의 거리에 서 있었다. 

딸냄이 정시 가, 나군에서 예비번호만 받고 떨어진 후 긴장을 내려놓으면서 심장도 잠시 놓아던지 쓰러져서 응급실에서 깨어난 후, 정말 완전히 자유롭고 편안한 음성으로 이제 되었다며 자신의 실력으로 한 해만 더 준비하면 꿈 속에서도 원했던 대학 문을 열 수 있을 자신이 있다며 재수를 하겠단다. 남아있는 다른 대학은 포기하고 재수를 하겠다면서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편안해 한다. 쓰러졌다 깨어난 이제 갓 스무살이 된 딸냄은 큰소리로 웃는다. 자신이 가야할 길이 더 명확하게 보이고, 이제 정말 자신이 있단다. 그렇단다. 

그리고 그 에미는, 응급실에서 건져올린 딸냄이 제일 먼저 간 보컬학원으로 데리러 가기 위한 길이었는데 실은, 백만 광년의 이제는 내 안으로 들어와 체감되는 고독이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 익숙한 거리에서 낯 선 여행자처럼 서 있었다. ~